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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bin Chang Mar 04. 2022

다이슨 청소기 가격은 바가지?

Price: 가격과 시장 침투 전략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고 있습니다.* 삐삐를 쓰던 세대, 피처폰을 쓰던 세대, 그리고 스마트 폰을 쓰던 세대는 모두 자기 세대만의 추억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간의 나이차는 20살도 채 안 되는, '세대'라고 부르기도 힘든 짧은 시간이지요. 이렇게 세대를 넘어 공유하는 추억이 적어진 현대 사회에서, 유선 청소기는 X세대부터 밀레니얼 세대까지 모두가 공유하는 몇 안 되는 교차점입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집안을 청소하며 끌고 다니시던 청소기 본체에 고양이처럼 올라타다가 크게 혼난 기억이나, 청소를 도우려 문틀에 걸린 청소기를 넘겨주고, 짧아진 코드를 다른 곳으로 옮기던 일은 20대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추억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소중한 유선 청소기의 추억도 곧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아재들만의 전유물이 될 날이 머지않았지요. ‘영국의 애플’로 불리는 다이슨의 무선 진공청소기가 곧 새 시대의 주역이 될 차례입니다.


다이슨 무선 청소기는 우리의 생활을 바꿔놓았습니다. 더 이상 무거운 본체를 질질 끌고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졌지요. 코끼리처럼 우락부락했던 유선 청소기들과는 달리, 21세기의 가전제품은 이래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날씬하고 세련된 형태와 강렬한 색깔도 인상적입니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지요. 다이슨의 대성공을 본 모든 가전 업계가 앞다투어 무선 청소기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다이슨의 첫 무선 청소기가 나온 지 이미 5년도 넘게 지난 지금, 무선 청소기는 삼성이나 엘지 등 모든 가전회사가 저마다의 장단점을 어필하며 경쟁하는 치열한 시장이 되었지요. 하지만 이렇게 혜성처럼 등장한 다이슨이 시장에 가져온 또 다른 혁신(?)이 있습니다. 바로 입이 떡 벌어지는 청소기 가격이지요. 사실 다이슨은 ‘영국의 애플’이라는 별명보다는 ‘청소기의 에르메스’라는 별명이 더 어울릴 정도의 가격을 자랑했습니다. 백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청소기 가격을 보면서, 이게 대체 제대로 된 가격표가 맞는지 눈을 비비던 고객들이 적지 않았지요. 다이슨의 헛웃음 밖에 안 나오는 가격은 청소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5만 원도 비싸다는 소리를 듣는 드라이어가 50만 원이 넘어가질 않나, 날개도 안 달린 선풍기가 에어컨보다 비싸질 않나, 말 그대로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보여준 가격표였지요. 대체 다이슨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어이없는 가격을 붙여둔 것일까요? 혹시 멋진 상품을 만들었다는 칭찬을 받기보다는 염치없는 가격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것을 즐기는 괴팍한 사람들이었던 것일까요?


눈 돌아가는 가격을 지불한 사람만이 청소기를 거실에 걸어 놓는 특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진: Yamazaki Co., Ltd www.yamajitsu.co.jp)


시장 침투 초기에 수익을 극대화하라

사실 다이슨이 구사한 가격 전략은 시장 침투 초기에 수익 극대화를 노리는 교과서적인 시장 침투 전략입니다. 스킴 프라이싱(Skim Pricing)이라고 불리는 이 전략은, 혁신적이고 새로운 상품을 선호하는 '최초의 소비자들(Innovator, Early Adaptor)'에게 프리미엄 가격을 받고 상품을 판매하여 수익 극대화를 노리는 것이 목표이지요. 이 ‘최초의 소비자들’은 남들보다 먼저 새롭고 혁신적인 상품을 사용하는 것에 큰 만족을 느끼는 소비자층입니다. 남들이 아직 갖지 못한 '힙한' 상품을 소유하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소비자들은 과도하다고 느끼는 가격도 개의치 않고 지불할 의사가 있지요. 상품이 혁신적일수록, 그리고 대중의 인기가 높을수록 이런 성향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기존 제품의 성능을 압도하는 혁신적인 기능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디자인을 가진 청소기와 드라이어. 다이슨의 상품들은 마치 지금까지 이것만을 기다려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최초의 소비자'들의 니즈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말 그대로 ‘취향 저격’ 상품이었지요. 높은 가격이 붙어 있어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물론 다이슨의 '최초의 소비자'를 노린 고가 전략은 어쩌다가 얻어걸린 성공이 아닌,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계획된 결과입니다. 사실 다이슨은 이러한 전략을 쓰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회사이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좋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삼성이나 엘지, 일렉트로눅스, 필립스, 파나소닉 등 기라성 같은 생활가전 대기업들과 경쟁하기에는 다이슨이 보유한 시장 지배력과 생산 능력은 턱없이 모자라지요. 제아무리 좋은 기술력을 가지고 뛰어난 상품을 개발해 낸다 하더라도, 이들 공룡기업이 순식간에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다이슨을 압도하는 생산력을 이용해서 저렴하게, 그리고 더욱 넓게 시장에 유통시키는 것은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간 시장의 흐름은 이와 같이 움직였지요. 때문에 다이슨의 입장으로서는 이러한 대기업들이 시장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파이를 빼앗아가기 전에 최대한 많은 수익을 올리고, 이를 기반으로 대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성장해야 했던 것입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했던 다이슨이 처음부터 '최초의 소비자'를 위한 높은 가격대의 매력적인 상품을 내놓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전략이었던 것이지요.


저렴한 가격으로 침투하여 시장을 장악하라

이러한 스킴 프라이싱과는 반대로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를 최대한 확보하는 ‘침투 가격 전략(Penetration Pricing)’을 구사하는 회사들도 있습니다. 스킴 프라이싱 전략은 높은 가격대로 승부하는 만큼 소비자 층이 얇아 시장 침투에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혹은 '최초의 소비자'들만의 인기 상품으로 끝나버려 시장 침투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침투 가격 전략의 목표는 현재 시장에 있는 일반적인 경쟁상품보다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침투하여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고객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용보다 낮은 가격을 감수하면서까지 시장의 지배력을 얻는 것을 우선시하는 전략이지요. 이 전략이 노리는 것은 명확하게도 ‘규모의 경제’입니다. 어느 정도 이상의 규모를 확보하면 단위 비용이 급감하며 이익률이 상승하는 사업의 경우 침투 가격 전략이 찰떡궁합이겠지요. 


로켓 배송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쿠팡이 구사하고 있는 전략이 바로 이 침투 가격 전략입니다. 시대를 앞서는 이커머스의 황태자이자 한국의 아마존이라고도 불리는 쿠팡의 비즈니스 모델은 사실 전형적인 물류회사에 가까운 구조입니다. 주요 거점에 물류창고를 세우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최단시간에 소비자에게 상품을 배달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성공을 좌우하는 열쇠인 것이지요. 빅데이터를 이용하여 소비자의 행동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최적의 재고량을 최적의 장소에 보관하며 물류의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물류창고가 없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류창고 하나가 커버하는 고객이 많으면 많을수록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요. 즉, 쿠팡은 최단시간에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적자를 무릅쓰고 소비자 규모를 늘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침투 가격 전략에도 단점은 존재합니다. 적자를 무릅쓰고 버틸 수 있는 자금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후에도 수익 정상화를 위해 가격을 올리기 힘들 수도 있지요. 소비자들이 우리를 선택한 이유가 단지 저렴한 가격 때문이라면 가격 인상은 더욱 큰 저항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게다가 저렴한 브랜드라는 낙인이라도 찍히면 수익구조를 개선하기는 더더욱 어렵지요.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 침투하는 단계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고객층을 확보하여 매출 기반을 만들고, 이 고객들이 저항감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조금씩 가격을 인상하는 박리다매 전략을 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쿠팡은 이러한 어려움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입니다. 와우 멤버십이라는 구독 서비스가 소비자 이탈을 방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매달 납부하는 와우 멤버십 가격이 조금 비싸지더라도 새로운 혜택들이 추가된다고 하니 귀찮게 해지하기보다는 그냥 계속 이용하는 편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고객들이 많은 것입니다.


월드컵도 볼 수 있다는데 귀찮게 탈퇴하고 다른 걸 찾느니 몇 천 원 정도 그냥 더 내는 것이 속편한 선택입니다. 


이처럼 시장에 성공적으로 침투하기 위해서는 상품만큼 가격 전략도 중요합니다. 다양한 상품들이 경쟁하듯 가격들도 각각의 전략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는 것이지요. 내 입장에서는 일견 이상해 보이고 얼토당토 하지 않은 가격이라 해도 다른 소비자에게는 타당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타겟으로 설정된 소비자가 아니라면 회사의 전략에 따라서는 상품의 가격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의 가격은 여러분이 노리고 있는 소비자에게 어떻게 느껴질까요?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 회사의 장점과 단점, 상품의 특성, 시장의 상황, 그리고 경쟁사들의 역량과 타겟 소비자를 모두 고려하여 세운 가격 전략. 이러한 노력이 우리의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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