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bbin Chang Mar 25. 2022

드라마 주인공이 홍삼을 먹으면 왜 화가 나나?

Communication: 커뮤니케이션과 소비자 공감


우리는 광고와 함께 살아가는 것에 매우 익숙합니다. TV를 보는데 중간에 광고가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이지요.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광고를 보는 동안 팝콘을 다 먹어 버릴 때도 있습니다. 토트넘 유니폼 한가운데 기업 로고가 없다면 어색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점점 발전하는 첨단 광고 영상기법은 더 많은 곳에서 광고를 접하게 해 주지요. 야구를 보다 보면 느닷없이 잔디밭에서 솟아오른 김성모 화백의 만화 주인공이 갑자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생략’합니다. 삼성동 코엑스 앞에 등장한 3D 영상 전광판은 광고를 넋놓고 바라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지요. 새롭게 유행하는 뉴미디어에서도 광고는 어김없이 따라옵니다. 인스타그램의 스토리에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신나게 구경하고 있으면 어느샌가 슬쩍 광고가 끼어들지요. 재미있게 즐기고 있던 유튜브가 갑자기 끊기고 광고가 나오기도 합니다. 네이버나 다음에서 무료 영상 콘텐츠를 보기 위해 반드시 광고를 봐야 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한시도 광고와 떨어지지 않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광고가 귀찮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개념도 이제는 익숙하지요. 광고를 보면서 광고를 한다고 화를 내거나 분위기에 맞지 않는 생뚱맞은 광고라며 분노하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광고에 익숙한 우리에게도 희한하게 광고를 보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드라마 주인공들이 갑자기 PPL(Product Placement) 광고를 시작할 때이지요. 그나마 자연스러운 PPL 광고라면 심기가 편하지는 않을지언정 그냥 참고 넘어갈 정도는 됩니다. 하지만 파병까지 나간 군인이 시도 때도 없이 홍삼을 먹거나 지리산 산골짜기에서 샌드위치를 꺼내기 시작하면 분노의 수준을 넘어 TV를 꺼버리는 소비자까지 나타나지요. 극의 상황을 무시하고 분위기를 깨며 핍진성을 해친다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합니다. 광고 한번 잘못했다가 ‘국민의 분노’를 한몸에 받는 무서운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러한 분노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드라마 전후로도 광고는 계속 나오고 유튜브에서는 중간에 영상을 끊으면서까지 광고를 하는 마당에 광고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습니다. 극에 몰입을 방해하고 분위기를 깬다고 하지만, 한참 긴장되는 승부의 순간에 갑자기 등장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는 만화 주인공 때문에 분노하는 야구팬은 찾아보기 힘들지요. 핍진성이 깨진다고 하지만 애초에 군대에서 연애하는 이야기가 더욱 말이 안 되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저 세계관에서는 건빵 대신 홍삼이 부식으로 나온다고 큰 문제가 될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따지면 화낼 일 하나 없는 PPL 광고에 우리는 대체 왜 분노를 느끼는 것일까요?


아무리 손에 땀을 쥐는 순간이라도 아랑곳 않고 설명을 생략하지만 분노가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사진: 비맥스 메타 정 광고 캡처)


소비자의 생활 속으로 침투하라

광고, 혹은 다른 모든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만들 때, 마케터가 넘어야 할 첫 번째 장벽은 바로 이 광고가 당신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과 관계가 먼 이야기에는 흥미를 갖지 않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은 물론이고, 우리와 가까운 나라인 일본, 중국, 대만 등에서 벌어지는 일도 우리나라와 관계가 적은 이야기라면 ‘이런 거 알아서 뭐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게 보통이지요. 인간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고, 때문에 자신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정보만을 선별하여 기억하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뇌의 본능입니다. 하물며 자신과 관계도 없는 광고 따위를 귀 기울여 들어줄 소비자가 있을 리 만무하지요. 그래서 마케터들은 내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이 상품이 바로 당신을 위한 상품이라는 것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표현해야 합니다. 고양이 사료 포장지에 고양이 그림이 들어가고, 아기 기저귀 포장지에 아기 그림이 들어가는 이유는 바로 소비자가 나와 관계있는 상품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알아차릴 수 있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고양이 사료나 아기 기저귀 같은 상품만 있다면 마케터의 일이 조금 편해지겠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상품들이 매우 많이 있습니다. 단순히 사진 한 장으로만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은 얼마든지 있지요. 피로할 때 먹는 피로회복제가 바로 당신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만약 이 피로회복제의 타겟 고객이 직장인이라면 광고에 나오는 모델들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있어야 하겠지요. 그래야 직장인 소비자가 자신을 위한 상품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을 위한 상품에 여성들이 모델로 기용되고 남성을 위한 상품에 남성들이 모델로 기용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장품 광고의 경우에는 상품의 타겟 고객에 따라 연령대까지 고려하여 모델을 선발하지요. 이 모든 것은 상품의 진짜 주인공인 고객이 커뮤니케이션 내의 주인공인 모델에게 최대한 동질감을 느끼고 공감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모델이 이야기하는 피부의 트러블이 바로 나의 문제로 느껴지고 모델이 이야기하는 상품이 바로 나의 해결책이라는 것을 느껴야만 상품을 구매하게 되는 것이지요.


고객과의 거리를 조절하라

우리가 PPL 광고에서 특히나 위화감을 느끼고 개연성을 따지며 광고를 비판하는 이유도 바로 이 동질감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극은 주인공과의 동질감을 전제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애초에 주인공에게 몰입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보고 있기도 힘든 것이 영화나 드라마이지요. 때문에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에게 시청자가 느끼는 동질감은 상상 속의 자신이라고 할 정도로 높습니다. 이렇게 몰입감이 깊은 상태에서 주인공이 자신이라면 하지 않을, 개연성 없는 행동을 하면 대단히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상상이 깨지며 급작스럽게 현실의 이야기가 극 안으로 뛰어드는 것에 엄청난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야구 중계화면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자신과 아무 관련도 없는 만화 주인공과는 차원이 다른 이질감인 것이지요. 


하지만 만약 이렇게 높은 동질감을 기반으로 소비자가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이게 되는 자연스러운 광고를 할 수 있다면, 일반적인 다른 광고 수단으로는 얻기 어려운 최고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아이언맨에서 백만장자이자 천재적인 테크니션인 토니 스타크가 몰고 다니는 자동차인 아우디 R8은 극 중에서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한 것만으로도 아우디는 훌륭한 엘리트들이 선택하는 고급 브랜드이자 고성능 자동차라는 이미지를 완벽하게 각인시켰지요. 예쁘긴 하지만 그렇다고 벤츠나 BMW 대신 구매할 정도로 매력적이진 않은, 어영부영한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제는 전설이라고 해도 될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서는 ‘포터리 반’이라는 가구 브랜드로 하나의 에피소드를 꾸미고, 심지어 주인공인 피비가 그 브랜드를 증오하기까지 했지만 방영 후 브랜드 인지도 상승은 물론 모던한 디자인의 고급 가구 브랜드라는 이미지도 성공적으로 전달하였습니다. 동질감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려준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다르게, 때에 따라서는 의도적으로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있습니다. 특히 이질감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경우에는 이러한 방법이 자주 사용되지요. 해외여행 상품이나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상품의 경우에는 오히려 외국인 모델이나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 등을 이용하여 이질감을 강조합니다. 소비자가 모델과 거리감을 느끼게 해 오히려 이끌리게 만드는 것이지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강조하거나 무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경우에도 이러한 거리두기 전략이 사용됩니다. 과거에는 속옷 광고 모델이 모두 외국인이었지요. 속옷을 입고 있는 모델을 최대한 ‘남’처럼 느끼게 하여 속옷만 입고 있는 모델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남사스러운 경험을 피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속옷을 패션 아이템으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지요. 모델과 동질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동양인 모델이 기용되는 것은 당연한 순리입니다.


아우디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지만 '아이언맨이 타는 멋진 차'를 사려는 고객들은 넘쳐납니다. (사진: 아이언맨)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고객이 느끼는 동질감, 즉 커뮤니케이션과 고객의 거리는 커뮤니케이션의 내용과 고객의 상황, 그리고 심리상태에 따라 전략적으로 조절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얼마나 효과적이고 훌륭하게 전달되는지는 말하고 있는 우리의 준비도 중요하지만 듣고 있는 고객의 상태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요. 듣는 사람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떠들어 댄다면, 그 이야기가 기억에 남을지언정, 듣는 사람에게는 매우 무례하고 불쾌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단시간에 인지도를 상승시키는 것이야 가능하겠지만,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 나가야 하는 브랜드 가치는 불쾌한 경험과 함께 땅에 떨어지게 되겠지요.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때로는 당장의 판매와 빠른 성장이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케터가 오늘의 판매를 위해 갈아 넣어야 할 것은 미래를 약속하는 브랜드의 가치나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후배의 고난이 아닌, 바로 자신이 한발 더 뛰려는 노력과 소비자를 생각하는 마음이어야 할 것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