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bbin Chang Apr 08. 2022

백화점들은 왜 정기 세일을 하나?

Promotion: 소비자 행동과 판촉 전략


만약 어떤 상점에서 ‘우리 가게는 다음 주부터 일주일 동안 모든 물건을 30% 싸게 판매하겠습니다라고 얘기한다면 어떨까요? 오늘 물건을 사러  손님들도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닌 이상, 사려던 물건을 내려놓고 웬만하면 다음 주에 다시 방문하는 길을 택할 것입니다. 가게 주인이 희한한 사람이라고 수군거리거나, ‘ 가게 혹시 다음 주에 망하는 건가?’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있을만 하지요.  푼이라도  비싸게 받아야 파는 사람이 유리할 것이 분명한데, 미리 언제부터 얼마나 싸게  것이라고 알려준다니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애써 찾아온 손님한테 지금 사지 말고 나중에 사라고 이야기하는 격이니, 장사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수가 없지요. 무슨 말도  되는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그림책에서나 나오는 착한 상인의 이야기도, 사실은 깊은 뜻이 숨어 있는 옛날이야기도 아닙니다. 바로 지금, 현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백화점 정기 세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제와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기 세일이라는 단어 자체도 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정기적으로 물건을 싸게 판다니, 그렇다면 그 ‘정기’가 아닌 때 물건을 사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요? 언제 싸게 팔 건지 알려주고 싸게 팔 바에야 그냥 속시원히 언제나 싸게 파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심지어 정기 세일은 자주도 있습니다. 송년 세일이 끝나자마자 신년 세일이 시작되지요. 잘 세어보면 최소 일 년의 3분의 1 정도는 정기 세일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게 세일을 자주 하고 있으니 재고 때문에 세일을 한다고 생각해보려 해도, 이 정도라면 차라리 생산량을 조절해서 재고를 줄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몇몇 상품들은 할인폭도 엄청나지요. 이렇게 팔면 남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격을 할인하고 있으니 정가로 사는 것이 마치 손해 보는 듯 느껴집니다. 오히려 할인가가 정가이고 정가는 바가지 같다는 생각까지 들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점 밖에 없는 백화점 정기세일이지만, 모든 백화점들이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시기에 세일을 하고 있으니 정말 희한한 노릇입니다. 대체 백화점들은 무슨 생각으로 세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연말 세일을 알리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사라지기 무섭게 신년 세일이 다시 시작됩니다. (사진: 조선일보)


최적화된 가격으로 매출을 최대한 끌어올려라

가격을 낮춰서 더 많이 파는 박리다매 전략, 그리고 앞서 말했듯 재고를 처리할 수 있는 운영상의 이점 등 일반적으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세일의 장점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백화점이 정기 세일을 하는 이면에는 조금 더 전략적인 속사정이 있지요. 백화점이 취급하는 상품들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대부분 의류나 신발 등 어패럴계 패션상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품들의 상품 수명 주기는 매우 짧습니다. 물건을 들여놓고 나서 고작 한철, 즉 3개월 안에 판매를 끝내지 않으면 ‘이월 상품’이 되어 버리지요. 즉 백화점, 정확히는 백화점에 입점한 많은 패션 브랜드들은 할인된 가격으로라도 재빨리 재고상품을 털어버리지 않는다면 남은 상품을 몽땅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애초부터 가격을 적절하게 설정하고 판매량을 높게 가져갈 것이지 왜 비싸게 가격을 붙이고 나중에야 급하게(?) 할인을 하는 것일까 궁금해집니다. 패션 상품들은 매출 규모에 비해 많은 SKU(Stock Keeping Unit)를 보유해야 하는 업계입니다. 같은 디자인의 신발이라도 모두 다른 사이즈를 구비해야 하지요. 게다가 아무리 인기 있는 브랜드라 하더라도 하나의 옷, 하나의 신발만을 판매할 수는 없습니다. 제 아무리 예쁘고 멋진 옷이어도 하더라도 스티브 잡스가 아닌 이상 같은 옷만 여러 벌 구매하는 손님은 없겠지요. 게다가 아무리 회심의 디자인이라해도 매장에 옷을 한두 벌만 덜렁 걸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때문에 다양한 사이즈와 다양한 디자인으로 구성된 수많은 SKU는 패션업계의 숙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디자인과 사이즈가 있으면 그중에 잘 팔리는 상품과 안 팔리는 상품이 있기 마련입니다. 결국, 패션 회사로서는 비싼 가격으로 인기리에 팔리는 상품을 먼저 판매한 후, 남겨진 상품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팔아 재고를 처리하는 것이 매출을 최대화하는 방법인 것이지요. 언뜻 이상해 보일지라도,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유행에 민감한 소비자와 할인된 가격이라면 구매할 의사가 있는 다수의 소비자를  한 시즌의 상품 라인업으로 동시에 만족시키는 훌륭한 전략인 것입니다.


지갑을 열 수 있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라

하지만 이렇게 옷이나 신발 등, 패션 상품들의 수명 주기를 고려해, 최적의 매출을 올리고자 세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계절이 정해져 있고 매출이 일어나는 시기도 비슷해서 결국 세일을 하는 기간이 다들 같아지는 것까지야 그렇다 하더라도, 그걸 미리 소비자들에게 알려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느 날 갑자기 세일을 해야 소비자들이 한 명이라도 더 정가에 상품을 구매할 텐데 말입니다. 마치 정가에 사지 말라고 애원이라도 하듯 정기세일을 언제 하겠다고 미리미리 광고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백화점에서 취급하는 대부분의 상품들은 생활필수품이 아닌 사치품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서 있으면 물론 좋겠지만, 없다고 하더라도 사는 데 딱히 지장이 있는 물건은 아니지요. 보통 이러한 상품들을 살 때 소비자들의 태도는 방어적입니다. 분명히 예쁜 청바지나 셔츠를 사러 왔음에도, 정말 마음에 드는지, 혹은 이것보다 아까 본 그 옷이 더 나은 것은 아닌지 고민을 거듭하지요. 몇 번 씩이나 입고 벗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딱 마음에 들지 않네’라며 구매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즉, 구매에 대한 소비자의 태도가 기본적으로 구매를 하지 않으려는 부정적인 기분에 가까운 것이지요. 소비자의 태도가 이렇게 방어적인 경우에는 구매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대단히 제한적인 구매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소비자들이 더욱 깐깐하게 상품에 대한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기세일은 이러한 소비자의 태도를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이렇게 저렴하게 세일도 하는데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사지 않으면 영원히 못 살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번 세일에는 못 샀던 물건을 반드시 사리라는 마음의 준비, 즉 소비에 대한 다짐이 시작되지요. 이렇게 소비자의 마음이 적극적이고 구매에 호의적으로 돌아서게 되면, 상품을 구매하는 기준이 너그러워집니다. 이 청바지가 좋은지 아까 그 청바지가 좋은지 아무래도 모르겠어서 구매를 포기했던 소비자가, 아무래도 모르겠으니 두 개를 다 사버리는 소비자로 변하는 것이지요. 세일도 해서 어차피 반값, 원래 하나만 살 것을 그냥 두 개 다 사버리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치품은 이렇게 너그러운 소비자들을 구매로 유혹하기에도 제격인 상품이지요. 좋은 청바지를 사고 보니 마네킨이 입고 있는 티셔츠도 눈에 들어옵니다. 티셔츠야 집에 많지만 하나 더 있다고 해서 나쁠 건 전혀 없지요. 하나 더 구매하면 추가 할인도 해준다고 하니, 이렇게 된 거 티셔츠 한 장 정도 더 산다고 딱히 문제 될 일은 없습니다. 한번 열린 지갑은 닫힐 줄 모르고, 소비자는 세일이 아니었으면 구매하지 않았을 상품까지 모두 구매하여, 실제 지출액은 세일 기간이 아닐 때보다도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지요. 어떻게 생각하면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들도 기분이 좋고, 보통 때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리게 된 판매자도 기분이 좋은 윈윈 전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일이 시작되면 평소에는 관심 없던 상품도 꼭 사야 할 상품으로 변신합니다.


이렇게 늘 하는 백화점 정기세일이지만, 그 안에는 매우 잘 고려된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전략을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소비자를 구매로 이끌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상황과 심리를 섬세하게 고려한 설계가 필요한 것이지요. 같은 프로모션을 하더라도 시장의 상황이나 경쟁사의 움직임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할인율을 높인다든가 할인 기간을 늘리는 것이 판촉 행사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지요. 오히려 제한적인 할인율만으로도 소비자의 기대를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 적은 투자로 성공적인 판매를 이끌어 낼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는 마치 연인과도 같습니다. 적절히 기다리게 하고, 준비할 시간을 주고, 때로는 좋은 놀라움을 선사하면서 기분 좋게 구매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소비자들의 기분을 더욱 섬세히 살피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적시에 만족시킬 수 있다면 소비자는 화끈한 소비로 우리의 기대에 보답할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엑설런트는 왜 한땀한땀 아이스크림을 포장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