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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Dec 02. 2024

가려지지 않을 비상등을 위해

저는 배움과 성장이 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인데,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승리를 계속 갈구하다 보면 어쩔 때는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잖아요. 근데 항상 승리를 하고 싶어 하면 저의 목표는 저 자신에 의해서 달성되는 게 아니라 그 승패라는 것은 사실 외부적인 요인도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상대가 얼마나 준비를 잘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보면 환경이나 운이 안 따라서 질 수도 있는데 그게 저는 외부에서 결정된다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저 스스로 내가 뭔가 항상 간직할 수 있는 그런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저는 그게 그냥 내가 생각했을 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됐으면 그건 성공이고 준비를 열심히 했으면 그건 성공이다라고 저는 항상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내적 동기가 저에게 있어서는 많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페이커(이상혁), 2024 외교부 글로벌 혁신을 위한 미래대화, https://youtu.be/YGAFaLEoK8M?t=695


존경하는 사람이 아직 살아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 사람이 새로운 자취를 남길 때마다 큰 영감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번 페이커 선수의 기조연설에서 위 문단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나도 고등학교 때 비슷한 고민에 침수했기 때문이다. 페이커 선수에게 불가항력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외부요인이었다면, 내게 불가항력은 바로 옆에 있는 친구들이었다. 그 친구는 펑펑 놀고 나는 뼈빠지게 노력해도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친구가 밤새워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게 학업의 가치가 점점 퇴색되고 있었다. 그러다 책에서 '남을 이김으로써 자신이 뛰어남을 인지하는 자는 옆에 문이 열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깨고 나가야 밖에 나갔음을 인지하는 파리와 같다.'라는 문구를 봤다. 그 뒤로 페이커 선수처럼, 어제의 나보다 더 성장하는 걸 목표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아직도 나는 배움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다만 요즘의 배움은 과거의 나보다 성장이라는 의미보다는, 미래의 나에게 다가간다는 의미가 크다. 며칠 전 짧게 제주도에 다녀오면서 방주 교회와 본태 미술관을 관람했다. 사실 그동안 예술 작품에 큰 인상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전시 관람이 재미없거나 아예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석파정 미술관에서 했던 요시다 유니의 개인전을 제외하면 글, 드라마, 영화 같은 작품들에 비해 다가오는 게 많지 않았다. 사실 이번에도 본태 미술관 내부 전시에는 큰 영감을 받지 못했다. 다만 건물은 달랐다. 유동룡 건축가의 방주 교회나 안도 다다오의 본태 미술관 건물에서 느껴지는, 자연과 자연을 상징하는 건축물과 인공 건축물의 조화는 그동안 받아보지 못했던 충격을 선사했다. 관람을 끝내고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와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정신이 멍했다. 그리고 나는 어쩔 수 없는 창작자였다. 충격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자마자 내가 짓고 싶은 주택의 모습과 담고 싶은 건축관이 마구 떠올랐다. 토요일 오후 내내 이와 관련해서 건축 영상을 찾아보다가 새벽 5시쯤에 잠들었다. 다음날 일요일 오후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내 건축관과 결이 맞을 것 같은 안도 다다오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철학에 대해 찾아보면서 내 건축에 대한 아이디어를 노션에 정리하다가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덕분에 오늘 회사에서 피로에 시달렸지만 그 와중에도 계속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원래는 수입 없이 칵테일바를 운영할 수 있는 돈만 모으면 은퇴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전원주택을 지을 돈까지 모아야 은퇴할 수 있게 됐다. 늘어난 시간만큼 공부할 것도 늘었다.


나는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 혹은 작품관으로 재해석하고 창작하는 내 모습이 좋고, 그런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좋다. 얼마 전 코엑스에서 열린 카페쇼에 갔다. 집에서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는 입장에서 카페쇼의 꽃은 온갖 카페와 브랜드의 원두를 맛보고 구매할 수 있는 커피 앨리다. 다만 7~80개 정도의 부스가 있는데 이를 모두 시음하기에는 시간도, 내 목과 위장도 버티지 못할 것이기에 실제로 시음할 부스를 고를 조건이 필요했다. 내 조건은 단순히 원산지 이름으로 원두를 전시해둔 곳이 아닌, 직접 이름 지은 원두가 있는 곳이었다. 물론 직접 이름을 짓는 것과 원두의 맛은 상관관계가 없지만, 단순히 정보성 명칭보다는 원두의 느낌을 해석해서 본인의 언어로 표현했다는 것 자체가 내겐 호감이었다.


겸손이라는 게 자기 자신을 낮추고 그런 의미의 겸손이 아니라 저는 어떤 의미냐면 스스로 내가 부족하다 남을 봤을 때 나는 분명히 제가 게임도 잘하고 지금까지 오랫동안 선수로서 성공한 건 사실이지만 제가 부족한 것이 분명히 있고 그런 좀 남들을 보면서 배우고 싶다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저는 겸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요즘에 좀 제가 봤을 때 뭔가 혐오나 그런 것들을 봤을 때 저는 좀 개인적으로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게 뭔가 본인이 가지고 있는 그런 가치관이나 그런 게 시대적으로 봤을 때 항상 옳을 수가 없는 건데 어떻게 그게 맞다고 단언하는지 그런 것들이 저는 조금 안타깝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가진 것들이 항상 옳지는 않고 항상 정답은 아니라는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할 것 같은데 최근에는 그런 갈등이나 혐오 같은 것들을 봤을 때 저는 그런 것들을 느꼈어요. 뭔가 본인들이 가진 것들이 항상 옳고 잘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것들이 좀 안타깝다고 생각해서 이런 겸손이라는 키워드도 저는 되게 지금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페이커(이상혁), 2024 외교부 글로벌 혁신을 위한 미래대화, https://youtu.be/YGAFaLEoK8M?t=763


최근에 푹 빠진 카페가 하나 있다. 낙성대역 쪽에 있는 안밀이라는 카페인데, 블랙 인테리어 마니아의 입장에서 사랑해 마지않을 수 없는 공간이다. 카페의 인테리어도, 철학과 분위기 모두 너무나 완벽했지만 내가 가장 감탄을 했던 부분은 입구 쪽 천장이었다.

보시다시피 이곳은 천장과 천장에 달린 에어컨까지도 모두 칠할 정도로 블랙 인테리어에 진심이었다. 그런 진심에서도 이 카페의 색으로 물들이지 않은 단 하나의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비상등이었다. 이름은 밝히지 않겠지만, 아래 사진은 전에 들렀던 다른 공간으로 이곳 또한 어둡고 차분한 분위기를 추구하는 공간이었다. 이곳은 공간의 철학을 위해 비상등을 검은 물체로 가려버렸다.

나는 스스로의 철학이나 가치관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못 나올 위험이 있다. 나는 그게 가장 두렵다. 과연 다른 것과 틀린 것을 잘 구분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내 색을 온전하게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내가 비상등을 가렸을 때 그걸 자각할 수 있을까. 혹은 누군가 이를 지적했을 때 수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어있을까. 가려지지 않을 비상등을 위해, 내가 나의 색으로 살면서 평생 해나가야 할 가장 긴 배움은 겸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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