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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Jul 19. 2024

독서가 취미가 되려면

혼자 독서여행 (자연 속 숙소에 가서 책 읽다 오는 여행)을 다니다가 어머님들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도 책을 좋아하게 할 수 있을까요 하는 질문을 받곤 한다. 모임에서 만난 분들께 평소에 책을 잘 안 읽는데 어떻게 하면 책하고 친해질 수 있는지 질문을 받기도 한다. 사실 나는 이런 질문을 받기에 적임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뚜렷한 기억이 있는 시점부터 이미 책에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생각을 해보는 것 자체는 재밌으니깐, 어떻게 하면 독서가 취미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일단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용이 좋은 책부터 읽으려고 하면 안 된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된 책을 못 읽겠냐고 하겠지만 글자만 안다고 해서 읽기가 쉬운 건 아니다. 가령 '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라는 문장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울타리가 아닌 자신을 포함한 집단의 대명사인 것이나 '왜'라는 단어가 일본을 낮잡아 부르는 게 아니라 이유를 물어본다는 것 등을 판단하려면 글의 문맥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혹은 위 문장에서 책 읽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해 봤을 때 사람마다 그려지는 모습이 다를 텐데, 그 뜻은 글을 읽고 각자의 방식으로 내용을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흔히들 문해력이라고 부르는 능력이 단순히 '심심한 사과'같은 어휘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처럼 글을 읽는 과정에서 글과 나의 생각, 경험, 지식을 결합시키고 재해석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능력은 개발하지 않으면 기본 수치가 생각보다 낮다. 다른 사람들을 얕잡아 보는 게 아니라, 위에서는 간단한 예시만 들었지만 어떤 글들은 읽다 보면 복잡하고 난해한 사고의 결합을 요구할 때가 있다. 나도 <소유냐 존재냐>같은 책을 볼 땐 며칠 동안 세 페이지도 못 넘기곤 했다.


사람의 생각은 글자가 생기기보다 수십만 년 전부터 있었기에 글자의 해상도로는 그 내용을 모두 담을 수 없다.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좋은 생각들은 훨씬 추상적일 때가 많다. 그래서 흔히들 명저라고 부르는 <사피엔스>, <총 균 쇠>,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일수록 높은 문해력을 요구한다. 이제 책과 친해지려는 사람들에게 이런 책을 권하는 것은 영어를 막 배우려는 사람에게 기왕이면 좋은 내용이 좋다면서 하버드 강의를 보여주려는 것과 같다. 아직 책과 친하지 않다면 내용이 좋은 책보단 그냥 재밌는 책부터 보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영어를 잘 하려면 학원을 다니는 것보다 그냥 미드를 많이 보는 게 더 좋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일단 재밌으니 꾸준히 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학습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꼭 명작이 아니어도 자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문해력은 올라간다. 나도 그랬다. 나는 중학생 때까지는 거의 수학/과학 관련 도서만 봤고, 중고등학교 땐 흔히 장르소설이라 부르는 무협이나 판타지 소설만 엄청나게 읽었다. 지금도 좋은 내용이 있을 것 같은 책보단 그냥 읽어보고 싶은 책을 고른다. 그래서 흔히들 세계 명작 100선이라 꼽는 작품들을 거의 안 봤다. 이 글을 쓰면서 궁금해져서 여러 군데의 100선 중 읽은 개수를 세어봤는데, 7~9개 정도밖에 안 됐다. 심지에 그중 <돈키호테>, <동물농장>, <로빈슨 크루소>, <걸리버 여행기>는 너무 어릴 때 봐서 내용도 거의 기억이 안 나고 <위대한 개츠비>는 이번 달, <노르웨이 숲>은 두 달 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는 네 달 전에 처음 봤다. 물론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기도 하고, 가끔씩은 생각이 갇히지 않도록 평소에 읽지 않던 책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건 이미 독서가 취미가 된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아무 책이나 봐도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영어 공부에 미드가 좋아도 slang만 난무하는 작품은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명작부터 봐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세상에는 읽으면 안 좋은 책과 명작으로 꼽히는 책 외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이 있다. 그중에 재밌는 걸 고르면 된다. 구체적인 해법으로는 내가 대학생 때 읽고 싶은 책 목록이 다 떨어지면 사용했던 방법을 추천한다. 바로 도서관 산책이다. 쉬는 날 동네 도서관에 가서 산책을 하는 것이다. 참고로 도서관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듯하다. 아무튼, 서가 사이사이를 산책하듯 걸어 다니면서 책 제목들을 훑어본다. 이때 중요한 건 읽을 책을 골라야 한다는 마음으로 유심히 살펴보는 게 아니다. 그냥 뒷짐 지고 어슬렁 다니면서 대충 흘려보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떤 단어나 제목이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러면 그 책을 빌려와서 읽으면 된다. 도서관에 들어오는 책은 웬만하면 이상한 건 없으니 안심하고 봐도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빌려온 책을 꼭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숙제도 아니고 누가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도서관에서 빌리는 건 돈이 들지도 않는다. 읽다가 재미없으면 실패한 게 아니라 내 취향을 더 자세히 알게 된 것이다. 요즘 유행처럼 럭키비키라고 하면서 원영적 사고를 해야 한다. 이는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사고방식이라 생각한다. 과거 인터넷 사용자들의 주 행동 양식은 탐색이었다. 그래서 네이버, 다음, 구글, 야후 같은 검색 포털 사이트들이 엄청나게 성장했다. 하지만 요즘은 유튜브 같은 추천의 시대다. 탐색과 추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선택의 실패에 대한 책임의 소재다. 내가 탐색해서 어떤 걸 찾아서 봤을 때 재미없었다면 내가 잘못 고른 탓이다. 하지만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게 재미없으면 알고리즘의 잘못이 된다. 그래서 추천에 익숙해진 요즘 시대에 점점 선택의 실패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양한 시도를 통해 나를 알아나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물론 좋은 책을 추천받아서 읽는 것도 좋지만, 아직 책과 친하지 않아 읽히는 책과 읽히지 않는 책이 명확히 구분되는 지금이 오히려 적극적인 탐색을 통해 내 취향과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건 광고를 하나 하고 싶어서였다. 쓰다 보니 길어져서 이제 일주일도 안 남았지만, 문학동네에서 7/24일까지 [070-8919-1203]로 전화를 걸면 시를 읽어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 이런 좋은 이벤트들이 많이 생겨서 글과 친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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