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ankorwriter Sep 27. 2024

아이리스

수필산책로 (3)

아이리스 


아이리스(IRIS) 꽃에 대한 자료를 찾으려고 구글을 검색했더니 온통 KBS에서 방영한 드라마 “아이리스”에 관한 내용이 먼저 나온다. 아마 첫 방영일인 2009년 10월 14일 이전에 검색하였더라면 꽃에 관한 내용을 더 쉽게 찾을 뻔 했다. 

  

 밴쿠버에서 아내가 운영하는 꽃집 일을 도우면서 꽃말에 얽힌 아름답고 슬픈 사연들을 조사하여 글로 남기려고 시도한 이래 장미, 튜울립, 거베라 등이 수필로 밴쿠버 언론매체에 발표되었었다. 그리고 아이리스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다 한, 두 해가 가버렸다. 집필의도는 순전히 아내 때문이었다. 아내가 영어이름을 아이리스로 하고부터, 모두들 이름이 예쁘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으나 사실 아이리스 꽃은 한국에 있을 때는 눈 여겨 보지 않았고 또한 작고 연약하며 볼품이 없어서 모두가 익히 아는 꽃들에 대해서부터 먼저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늦추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게 한 것은 바로 드라마 “아이리스”를 보기 시작하면서였다. 첫 회부터 박진감과 스릴이 넘치는 장면이 연출되어 그만 중독되어버렸다. 줄거리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의 제2차 한국 전쟁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첩보원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드라마에서 아이리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세계전역에 거점을 두고 암약하면서 보이지 않는 어둠의 정부 역할을 하는 가상의 조직으로 설정되어 있다. 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구태여 관련성을 따진다면 아이리스의 꽃말이 ‘믿음, 권능, 승리, 정복’등이니 드라마 작가가 조직체의 지향점으로 비유 또는 설정하였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붓꽃과’의 ‘붓꽃속’으로 분류되는 이 꽃은 지구상에 약 200-300여종이 산재해 있다. 한국종으로는 대청부채, 꽃창포, 노랑붓꽃, 타래붓꽃, 제비붓꽃, 부채붓꽃, 각시붓꽃, 솔붓꽃, 난장이붓꽃 등 20여종이 있다. 한국에서는 눈 여겨 보지 않았으나 그저 붓꽃이라는 이름 정도 알고 있었다. 단색의 꽃이 아니었던가 희미하게 기억되었는데 밴쿠버에서 본 북미 산 붓꽃, 아니 아이리스는 청색, 자주색, 노란색, 은백색 꽃 등이 한 줄기에 피어 조화를 이루는 다면 색의 꽃이었다. 

 

  그러나 꽃가게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재미없는 꽃이다. 꽃다발을 만들 때는 다양한 색깔의 조화가 더할 수 없이 예쁘지만 꽃 냉장고에 보관하면 줄기가 약해서인지 얼마 가지 못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무지개의 신인 이리스로 부터 이름이 유래된 이 꽃이 지구상에서 강하고 오랫동안 살아남은 꽃 중의 하나라지만 대지에 뿌리를 두고 있을 때 일이다. 하기는 어떤 꽃인들 땅을 떠나 오래 살 수 있으랴마는.

 

  무지개의 신인 이리스는 무지개 건너 하늘과 땅을 오가며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죽은 처녀들의 영혼을 저 세상으로 인도하는 역할도 하였단다. 왜 하필이면 과부나 홀아비, 또는 총각이 아닌 처녀들의 영혼을 인도하였을까? 이 꽃은 또한 순결함(purity)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테는 신곡에서 연옥에 있는 24장로-그에게 천국을 약속해 준-들에게 아이리스로 만든 화관을 바친다. 또한 성처녀 마리아와 천사 가브리엘이 등장하는 수태고지 그림에 보면 백합과 함께 신의 어머니에 대한 순결함의 상징으로 아이리스가 등장한다. 

 

  아이리스는 잎이 검처럼 날카롭게 생겨 고대 그리스 시대로부터 릴리 검(sword lily)으로 불려졌다. 그러나 그 검은 재능의 검, 지혜의 검으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식하였다. 처녀의 순결함은 재능과 지혜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이건 순전히 필자의 상상이다.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시인 아나크레온은 이 꽃을 짝사랑(unrequited love)의 고통의 심벌로 표현하였다. 과연 그렇겠다. 순결한 처녀시절 겪는 짝사랑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사춘기 시절 좋아하는 오빠, 선생님, 친구가 나보다 다른 여자를 좋아할 때 그 가슴아픔이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처녀가 아니더라도, 딸이 없어도 느낄 수 있다. 짝사랑의 아픔은 남녀가 다름 없기 때문이다. 나도 짝사랑을 해 보았다. 고교시절이었던가. 이웃에 사는 초등학교 처녀 선생님이었는데 나보다 대여섯은 많은 나이었다. 아침 등굣길마다 만나면 제대로 얼굴 한번 쳐다보지 못했다. 문학청소년답게 익명으로 편지를 써서 보내곤 했는데 내 글을 읽어줄 처녀선생을 생각하며 행복했었다. 그러나 문 앞 쓰레기 통에서 개봉하지도 않은 내 편지들을 발견하고 얼마나 상심하였던지. 살아 있다면 7순이 다 되어 갈 텐데. 할머니가 되었으리라. 아름답던 자태는 풍진 세월 속에 시들어 가겠지.    

 

  아이리스의 뿌리에는 치유능력과 방향물질이 있다고 한다. 의성 히포크라테스는 뿌리에서 성적불만 치료제를 발견했다. 아이러니이다. 순결함으로 상징되는 꽃에서 성적불만 치료제가 발견되다니. 치통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성적불만이 되었던 치통이 되었던 아픔을 치료해 주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또한 방향물질은 향수제조에 오랫동안 사용된다. 서양에서 아이리스 뿌리가 그려진 부적은 악령과 마술사로부터 사람과 동물을 보호해 준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의 아이리스는 내게 “믿음과 권능”을 북돋우며 삶의 “승리와 정복”에 밑거름이 되어 왔다. 때로는 지혜와 재능의 검을 휘두르며 내 삶의 부정적인 요인들을 물리쳐 왔으며 나만을 사랑하는 순결함을 보여 주었다. 그뿐인가. 지금도 좌절과 패배, 고독과 시련의 악령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준다. 여러분들의 아이리스도 항상 그러하였다.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당신들이 삶의 전장 터에서 기력을 잃고 쓰러질 때 따뜻한 사랑으로 여러분들을 보듬어 왔다. 


아이리스. 아내가 지은 자신의 영어이름이 참 그녀에게 걸맞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그랜빌 섬 ② 에밀리와 어린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