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인도사 Jul 29. 2021

무인도 생활기 연재_팔라완무인도4

밤의 기도

# 밤의 기도     

 

ᅠ밤은 아직 탄생하지 않은 얼굴로 시작해 최후의 얼굴로 내게 옵니다.ᅠ      


ᅠ달과 별이 다스리는 밤이 왔습니다. 하룻동안 반대편을 휩쓸고 내게로 왔습니다. 그들의 지배는 억압 그 자체로 순순히 수궁하는 것 밖에 살아갈 방법이 없네요. 빈틈없이 흡수해버립니다. 강한 어둠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습니다.ᅠ이 깜깜한 밤에 환히 전등을 켜는 것은 이치에 거스르는 일로 결국 불빛도 시한부인생이되어 죽음에 이릅니다. 적당한 내면만 보여주고 그 이상은 다시 천천히 어둠이어서 한발씩만 천천히 내딛을 수 있을 뿐입니다. 아예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보다 살짝 보여주다 결국은 무릎꿇게 만드는 것이 더 무서운 법이라지요. 밤은 결국 낮동안 피워둔 불을 꺼뜨리고 내게 긴 악몽을 선사했습니다.ᅠ      


ᅠ긴 밤이 또 오고 있습니다. 밤과 맞서싸우기 위해 나는 불붙은 장작과 화살촉을 다듬으며 이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여차하면 정글도로 후려칠 생각입니다. 잘게 조각내 밤의 파편들을 장작으로 쓸 생각입니다. 파편들이 바다에 떨어지지 않고 해변에 쌓이려면 바다로부터 오는 그 밤을 조금 더 기다렸다 역습해야 합니다. 무서워 도망치지 못하도록 스스로 해변에 누워 저를 묶습니다. 하늘을 보고 두 팔만 자유롭게 한 뒤 배수진을 치고 때를 기다립니다. 밤의 조각은 날카로울 수 있으니 긴 옷과 장갑을 준비해뒀습니다.ᅠ      



ᅠ어둠의 침입에 오늘 드디어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화살은 근접하지 못하고 내게로 떨어지고 정글도는 휘두를수록 무기력해집니다. 어둠이 선봉군으로 보낸 저녁 어스름의 한켠을 잡아 늘리니 툭툭 끊기지 않고 더 두터워집니다. 문득 엿가락같은 이 긴 밤을 끊는다 해도 결국 세상의 이치에 따라 태풍이나 싸이클론따위의 더 무서운 얼굴로 나타나리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가오는 암흑을 기다리는 것이 전진을 가장 늦추게 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긴 어둠은 세계를 휘감으며 올라옵니다. 단단하면서도 차근차근 해변에 누운 제 발끝을 타고 올라옵니다. 해변과 제 몸을 묶어둔 밧줄을 풀기엔 늦었습니다.ᅠ

      

 어둠이ᅠ해변에 안착했습니다. 혈관을 타고 위와 식도를 지나 턱밑까지 훑는 밤. 달빛도 별도 그 무엇도 아름답다 할 수 없이 나는 더 야위어져 갑니다. 차라리 밤이 계속 자라 끝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코코넛잎 위에서 잠시 쉬고 있는 어둠에게 내 두 눈을 바칩니다. 삶의 간격만 경계짓는 두 눈을 거둬가니 비로소 어둠이 보입니다. 이젠 눈을 감는 일은 없습니다. 눈을 감는 것은 세계를 부정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ᅠ그들이 세상을 덮는 소리와 자오선까지 내달릴 발없는 어둠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밤은 나와 같은 사람들의 눈을 아직도 밝은 것들에게,ᅠ아직 두려움을 모르는 오만한 이에게 선사합니다. 저처럼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이 스스로 바친 눈을 거둬가는 일을 어둠은 오랫동안 반복해왔습니다. 근심과 걱정에 밤을 붙잡고 흔들다 결국 어둠 속에서 답을 찾는 순간이 바로 어둠이 눈을 거둬갈 때입니다. 아직 경험이 없는 당신도 밤과 밤이 쌓이고 겹쳐질 때면 결국 그들에게 눈을 내어주고 싶게 될겁니다. 옅지만 무거운 밤의 어느 장막에 당신의 눈도 걸쳐있을겁니다. 밧줄은 여전히 단단하게 해변과 나를 고정시키고 있지만 편안하네요.      



ᅠ인간의 기도도 여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눈이 있되 보기를 거부하고 입이 있지만 말하지 않습니다. 불이 있되 어둠을 받아들여 빈 손으로 그들을 떠나보내지 않는 것. 낮동안 봐왔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과 부당함을 긴 밤에 얹힙니다. 고백하면 다시 공평한 밤으로 찾아올거라는 믿음. 밤은 눈을 헌납하고 기도하는 이에겐 그래서 늘 짧기만 합니다. 기술적인 문제만 없다면 오늘 밤도ᅠ어둠에서 더 짙은 어둠으로, 짙은 어둠에서 해안 절벽으로 내달릴 것입니다. 짙은 어둠의 시간까지 모았던 기도를 안고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밤.ᅠ   

   

ᅠ수평선 너머엔 그래서 아직 수장된 기도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모든 별은 이곳에서 피어오르고 달은 그래서 여기서 떠오릅니다. 우리가 밤에게 기대하는것에 대해 밤은 먼 곳에서 답을 내려뒀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 리가 없습니다. 수평선을 넘어 바닷 속에서 답을 찾는 것보다 제자리에서 답을 구하는 것이 쉬워 우린 낮동안 우리만의 해답을 찾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ᅠ 

ᅠ 

ᅠ새롭게 눈을 뜨자 저세상에서 또 오늘의 밤이 오고 있습니다. 나는 어제의 수순을 잊고 밤의 정체를 보기 위해 거울을 준비했습니다. 어둠의 얼굴을 보고 정면으로 부딪쳐 나의 기도에 대한 답을 배달받아야 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루를 잃을겁니다.      


ᅠ별이 박힌 거울을 깨져 해변에 나뒹굴고 나는 또 내 두눈의 존재를 확인하는 아침입니다. 


책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중


[윤승철]

주로 사람이 많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닌다.

키르키스스탄 대초원이나 사막, 아마존, 남극 같은 곳. 그리고 무인도까지.

대한민국 실크로드 탐험대 청년탐사대장으로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을 모두 횡단했고, 히말라야에 올랐으며

세계 최연소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대한민국인재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환경부장관상과 헌혈유공표창, 서울특별시장상, 경희대총장상, 박영석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무인도로 떠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무인도섬테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섬과 쓰레기가 많은 섬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섬마을봉사연합] 봉사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시를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달리는 청춘의 시](문광부우수도서),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공저), [마음을 만지는 만지도], [실크로드 길 위에서 길을 열다](공저) 등이 있다.

현재는 무인도체험 및 생태 프로그램 운영과 기관 및 방송 자문, 섬봉사단체 운영에 매진하고 있다. 


*무인도섬테마연구소 : www.islandlab.co.kr

**섬마을봉사연합 : www.with-ivu.com

***유튜브 채널 : 무인도사  


작가의 이전글 무인도 생활기 연재_팔라완무인도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