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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딸 데이지

by 고들정희

끌어당김의 법칙에 관한 글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간절히 바라면, 우주의 모든 기운이 그 소망을 이루는 방향으로 이끌어준다고 한다. 그래서 함부로 아무거나 소망해서는 안 된다고. 그러니, 내가 장난 삼아 기린이라도 원했으면 어쩔 뻔했나! 다행히 내가 바란 건 귀여운 골든리트리버였다. 비전보드에도 선명하게 사진으로 붙여 놓았고, 내 머릿속 미래의 모습뿐 아니라 내가 쓴 글 속에도 늘 순한 골드리트리버가 한 마리 있었다. 노년의 나를 상상할 때도, 책을 읽는 테이블 아래엔 언제나 그 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이게 이렇게 이루어진다고?


7월 1일 캐나다데이. 우리 가족이 캠핑을 떠난 날이었다. 그날 북클럽 멤버 지윤 씨의 강아지 애니가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데이터가 잘 잡히지 않는 캠핑장에서 간신히 확인한 사진 속 새끼들은, 놀랍게도 골든리트리버였다. 푸들인 애니 배에서 나온 새끼들이라니 어떻게 된 거지? 알고 보니 애니는 푸들과 골든의 믹스견인 골든 두들이었고, 아빠가 순수 골든리트리버였기에 새끼들은 모두 골든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너무 예쁘잖아!'

한동안은 사진만 들여다보며, '아이고 귀여워라, 잘 크고 있겠지?'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한 달이 지나자 그새 어미젖도 떼고, 아장아장 걷는 퍼피가 되었지만, 나에게 올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먼 훗날의 이야기라고 여겼다.


그러던 8월 어느 날 아침. 늘 차고 다니는 목걸이에 있던 다이아몬드 펜던트가 빠져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착용하고 있는 거라 습관적으로 손으로 만지곤 하는데 뭔가 이상해서 확인해 보니 알이 빠져있었다. 한 달 전에는 다이아몬드 귀걸이 한쪽을 잃어버렸는데 이번엔 목걸이라니!! 그리 크진 않은 작은 보석이지만, 생일마다 귀금속 하나씩을 선물해 주고 싶어 하던 남편의 마음이 담긴 것이기에 허전함은 더 크게 다가왔다. 몸에 익숙하던 물건이 갑자기 사라지고 나니 마음이 괜히 불편했다.

허한 마음을 느끼고 있던 그 순간, 지윤 씨의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언니, 강아지 한 마리 안 데려가?"

"키우고는 싶은 마음은 크지만, 아직은 모르겠어. 고민이 되네. 그런데 말이야, 나 방금 목걸이 다이아몬드를 잃어버린 걸 알았는데, 이건 다이아몬드가 가고, 강아지가 오는 신의 계시인가?"

"그게 무슨 계시야~ 돈 나갈 계시? ㅋㅋ 그것보다는 언니의 dream dog을 위해!"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지하게 고민이 되었다.

그동안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집도 좁고, 비용 걱정도 되었고,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해 늘 망설였다. 아이들과 남편은 오래전부터 원했지만, 나는 늘 반대였다. 결국 내 일이 더 많아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골든리트리버는 귀엽지만 대형견이 될 텐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컸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제는 아이들도 다 컸고, 혼자가 아닌, 가족이 함께 해낼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 원하던 일이 아닌가. 기회가 왔는데 왜 미루려고 할까?

그렇게 그날 아침, 그냥 '오케이!'를 외쳤다. 가족 모두의 찬성 속에 남편과 나는 곧장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러 갔다.


애니가 낳은 새끼 강아지들이 아홉 마리나 펜스 안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중 내 눈에 들어온 건 데이지였다. 내가 좋아하는 라이트 골든, 크림색에 가까운 털빛에, 살짝 처진 순한 눈, 덤불 속으로 뛰어 들어갈 때 흔드는 작은 꼬리까지 너무나 예뻤다. 보석 같은 아이인 데이지를 품에 안으며, "골든이라는 이름도 결국 보석이니, 잃어버린 다이아몬드 대신 내게 골든리트리버가 온 건 아닐까?" 라며 꽤나 운명적인 만남 같다는 혼자만의 해석을 해보았다. 지윤 씨는 "이름도 정해졌네, '다이아 리'!"라며 농담했다.


남편은 내가 아들만 셋이니 강아지는 꼭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처럼 이제 귀여운 막내딸을 얻은 셈이었다. 데이지가 꽃 이름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어 그대로 쓰기로 했다. 언젠가 이 세상에 데이지가 없더라도, 데이지꽃을 보면 언제든 떠올릴 수 있을 테니까.


태어난 지 두 달도 안 된 데이지는 배변 훈련 중이다. 첫날은 펜스를 마련하지 못해 거실 여기저기 실수를 했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은 밥을 먹고 마당에서 뛰어놀며 밖에서 배변하는 훈련을 하고 있고, 이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것 같다. 마당에서 꼬물꼬물 걸어 다니는 생명체가 참 사랑스럽다.

내 아침루틴도 바뀌었다. 이제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내려가면 나를 반기는 아이가 생겼다. 함께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내가 내려오는 시간에 맞춰, 깨어나 앉아서 나를 기다린다. 잘 잤냐고 안아주면 내 얼굴을 정신없이 핥아준다. 그 순간이 제일 행복하다. 곧바로 마당에 나가 시원하게 소변을 누고 들어오면, 내가 도시락을 싸는 동안 얌전히 자기 자리에 앉아 나를 지켜보곤 한다. 내가 늘 서있는 주방 옆자리에 데이지 자리를 마련해두길 잘한 거 같다.

아침을 먹인 뒤 다시 배변 훈련을 한다. 변을 잘 보면, "Good Girl!" 하며 칭찬해 주고 발을 닦여주고, 다시 들어와 그제야 내 아침 독서가 시작된다. 밥 먹고 잘 뛰고 변도 보고 나니 데이지는 기분이 좋은지 내가 책을 읽는 동안 내 발밑에 엎드려 잠든다.


요즘 내 신경은 온통 데이지에게 쏠려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처럼 시간 맞춰 먹이고, 배변을 챙기고, 잘하면 품에 안아 칭찬한다. 애들 키울 때처럼 바닥에 위험한 게 없는지 바닥을 자꾸 닦아 내고, 잔디나 흙을 먹으려 하는 데이지를 따라다니며 "안돼~"를 외친다. 데이지가 온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미뤄지고, 몸은 천근만근 피곤함이 몰려든다. 육아를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머리에 꽃을 단 듯 정신없이 살고 있다

훈련이든, 다른 무엇이든, 데이지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아이 키울 때 육아서적을 뒤지고, 맘카페를 들락이던 시절처럼, 지금은 개엄마가 되어 궁금한걸 지인에게 묻고, 검색해 가며 배워간다. 대형견이니 커서 사람들에게 위험하지 않은, 아주 잘 훈련된 개가 되려면, 나 자신이 훈련사 정도의 정보가 있어야 하겠구나 싶어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든다.

강아지에게 필요한 물건들도 왜 이렇게 많은지, 아마존 박스들이 쌓여가는데도 또 검색을 하고 있는 나.


나는 원래 집안에서 지내길 좋아하는 집순이다. 웬만하면 마당에도 잘 나가지 않는 편인데, 이 녀석 덕분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마당에 나가 앉아 있게 된다. 덕분에 비타민D는 따로 챙겨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 집에 찾아온 작은 행복, 데이지. 그래, 결정하길 잘했어.


마당에서 데이지와 함께 놀던 막내 동욱이가 기쁜 목소리로 들어온다.


"어머니! 데이지가 똥눴어요!! Good girl!"


아이고 기특도 하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언젠가는 데이지와 내가 같은 나이로 만나는 날이 올 것이다.

훗날 나와 함께 늙어갈 막내딸, 데이지야. 건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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