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에게 취미부자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나는 이것저것 하고 있는 일이 많다. 바이올린, 기타, 테니스, 러닝, 근력 운동 등등 아이들을 키우느라 하고 싶어도 못했던 운동과 악기를 배우고,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모임도 가지며 이제야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한때는 '취미'라는 것이 전혀 없던 시절이 있었다.
첫아이가 2006년에 태어나자마자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했다. 막내가 2012년에 태어났을 때 내 나이는 40살이었다. 2006년부터 이어진 육아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40대를 맞았고, 40대 역시 육아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시기다. 그나마 유일하게 내 시간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이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조용히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때의 몰입은 지금처럼 시간이 많을 때보다 더 강했다. 아이들이 깰까 봐 숨소리도 내지 않고 책장을 넘기던 기억이 난다. 그래봤자 읽었던 책은 주로 도서관에서 빌린 육아서적들이었는데, 자기 계발서가 그렇듯 육아서적도 결국 한 가지 메시지로 귀결된다. 핵심은 아이를 믿고, 욕심부리지 않으며,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그 마음이 내 내면의 기준이 되어 주었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니, 이제야 내 안에 숨어있던 욕구들이 한꺼번에 분출하는 느낌이다. 그동안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모임활동도 활발히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마음껏 몰입하는 중이다. 배우고 싶었던 테니스도, 올해 3월부터 시작했다. 재미를 느끼다 보니 저녁에는 남편과 함께 연습하고, 게임 소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또, 캘거리 한인 오케스트라 입단을 목표로 바이올린을 3년 넘게 배우고 있다. 어쩌다 보니 손을 쓰는 일이 더 많아졌다. 10년 넘게 육아를 위해 요리하고, 빵을 만들고, 청소를 하던 손이었는데, 이제는 나를 위한 일로 손을 쓰고 있는 셈이랄까.
서서히 재미를 느끼며 성취감도 느끼기 시작할 즈음, 하필이면 퇴행성 관절염이라는 녀석이 나에게 제동을 건다.
작년부터 아파온 왼손 관절염으로 주사를 세 번이나 맞았는데 낫질 않고 있는데, 최근에는 오른손에도 통증이 시작됐다. 오른손이 아프니 집안일뿐만 아니라 기본 활동조차도 어려움이 많다. 손글씨를 쓸 때도 엄지 손가락 통증으로 쓰기가 힘들다.
엄지손가락 퇴행성 관절염은 라켓을 쓰는 스포츠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 덤벨과 바벨 등의 반복적인 손 사용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하필이면 모두 내가 즐기고 있는 취미들이라 자꾸 억울한 마음이 든다. 이게 뭐람. 이제 겨우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왜 하필 이때 손이 말썽일까!
조금 더 몰입하면서 한 계단씩 성장하고 싶은데, 생각지도 못한 통증이 나를 막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포기하기는 너무 이르고, 아파도 조금 참고, 조금씩 시도하며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사실, 주사도 맞고 침도 맞아봤지만, 퇴행성 관절염은 완치가 어렵다는 말에 큰 희망은 없다.
그럼에도 내 삶의 즐거움까지 빼앗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더 아프기 전에 9월 캘거리 한인 오케스트라 오디션도 신청을 해 놓았다. 지금이 아니면 도전도 못해보고 포기해야 될 상황이 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지금도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간단한 손잡이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전해지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포기가 안된다.
이제는 아픈 손을 탓하기보다 어떤 활동에 에너지를 쏟을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것에 욕심내기보다 진짜 좋아하고 의미 있는 것에 집중하며 즐기는 것.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하되, 몸과 조화를 이루며 느리더라도 한 발씩 나아가는 것. 그 과정에서 오는 작은 기쁨과 성장, 그리고 즐거움이, 통증과 시련을 함께 견디게 해주는 힘이 된다고 믿는다.
시련과 행복은 늘 함께 오는 법이라 했다. 지금 키우는 강아지와 함께하는 시간도, 아픈 손과 함께하는 순간도..
행복은 거저 얻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