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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 Jan 04. 2023

나는 왜 마녀가 되지 못했을까?

백설희·홍수민,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

캐릭캐릭 체인지 | 왓챠, 슈가 슈가 룬 3 | 교보문고

내 인생에 가장 큰 충격을 준 책은 『해리포터』 시리즈이다. 해리포터를 처음 접한 뒤 나는 닥치는대로 판타지 소설을 찾아 읽었다. 마법세계를 향한 나의 열망은 글자에만 머물지 않아서 당시 수입된 일본 애니메이션을 향했다. 「캐릭캐릭 체인지」나 「슈가 슈가 룬」처럼 '마법'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히나모리 아무, 쇼콜라 메이율은 내 인생의 멘토나 다름없다. 나는 헤르미온느를 따라 공부했고 아무처럼 팔방미인에 쇼콜라처럼 강한 인물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마녀가 되지 못했다.


그들마저 그렇다.


그들 중 일부는 성인 마녀가 아닌 마법소녀로 영원히 살아간다.




만화 안팎의 여성


이 책은 엘리자베스 샌키의 영화 「로맨틱 코미디」와 비슷하다. 비판하는 지점과 이를 풀어내는 방식 모두 이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엄청나게 깊이 있지는 않지만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읽어볼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이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주제는 '만화와 여성'이다. 디즈니나 일본의 여러 작품들을 곁들여 설명한 덕에 그들과 함께 성장한 나로서는 더욱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산업이 사회적 역할을 해낼 때 어떤 이익을 창출해냈는지가 인상깊었다. 그동안 나는 디즈니가 지나친 PC주의를 내세운다는 견해에 비판적이었는데, 디즈니 프린세스나 완구 회사의 변천사 등 관련 내용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어린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사회적 존재'가 되면 완구 회사의 이익이 줄어들 것이라는 가설은 이미 마텔의 사례를 통해 깨졌습니다. 장난감은 어린이와 사회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입니다. 완구 산업이 탄생하기 아주 오래전부터 필수품으로 존재하며 어린이들의 세상을 구성해온 물건이지요. 이 사실을 숙지하는 기업만이, 어린이와 자사 모두에게 결과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백설희·홍수민,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 들녘(2022), 52면


디즈니는 본질적으로 사회단체가 아니라 이익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이다. 디즈니가 PC주의를 내세운다면 그것은 PC주의가 옳기 때문이 아니라 PC주의가 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소수의 사랑으로는 인기를 얻을 수 없다. 디즈니가 택한 PC주의는 더 이상 소수의 지나친 사상이 아니다. 요즘의 디즈니 영화가 불편한가? 그건 세월이 흘러 당신의 생각이 비주류가 되었다는 뜻이다. 당신이 틀렸다는 얘기는 아니다. 디즈니 주가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손익만을 따진다. 당신이 틀렸음은 다른 방식으로 증명될 것이다.




케이팝: 진실 혹은 거짓


반면 '케이팝과 여성'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은 다소 실망스럽다. 근거가 빈약하다. 예를 들어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한국에도 여성주의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142면)'라는 말에는 근거자료가 없다. 사실 10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내린 정의가 성급하게 느껴진다. 이 외에도 저자는 앞부분과 달리 믿을만한 통계 및 수치 자료보다는 저자 본인 혹은 인용한 타인의 개인적 경험을 근거로 주장을 펼친다.


사실 저는 걸그룹을 좋아하는 소녀였습니다. 그랬기에 팬 커뮤니티 속에서도 겉돌았지요. 사람들은 대부분 걸그룹을 좋아하는 소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중략) 게다가 보이그룹을 좋아하는 소녀들이 걸그룹을 향해 행하는 여성혐오에도 시달려야 했습니다.

백설희·홍수민, 같은 책, 165면


나는 이런 교묘한 서술이 싫다. 저자는 '과거'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대부분 걸그룹을 좋아하는 소녀를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사실을 '현재형'으로 도출해낸다. 이는 틀린 사실이다. 2022년을 빛낸 가수를 살펴보면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많은 여성 가수들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 「2022년 올해를 빛낸 가수와 가요 - 최근 16년간 추이 포함」


'보이그룹을 좋아하는 소녀들이 걸그룹을 향해 행하는 여성혐오(백설희·홍수민, 같은 책, 165면)'? 저자여, 솔직해져라. 그대는 지금 보이그룹을 좋아하는 소녀를 향해 여성혐오를 행하고 있다.


더욱이, 애니메이션 및 장난감 산업을 다룰 때에는 제작자와 소비자 양측의 입장을 고루 서술한 반면, 케이팝 문화에는 제작자의 얘기가 거의 없다. 사회적 측면에서 문화산업의 흐름을 설명하려고 할 때 제작자를 빼놓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은 흐름을 타기도 흐름을 만들기도 하는 가장 주체적인 집단인데 말이다. 아이돌이 건강을 해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이어트한 모습을 좋아하는 이중성은 팬들만의 것이 아니다. 디즈니를 향한 앞선 비판은 아이돌 제작자에게도 유효하다.


우리 세대의 선두에 자리하는 어린 관객들에게 누구나 할 수 있는 '가벼운' 여성주의적 메시지만을 보여줄 뿐, 보다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서사를 내세워 적극적으로 변화의 선봉에 서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백설희·홍수민, 같은 책, 39-40면




나의 마법소녀를 위한 최후진술


마법소녀가 세상을 구하지 못한 건 그녀와 세계가 지닌 한계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법소녀를 사랑했다. 우리는 내 세상을 구해줄 것 같다는 이유로 마법소녀를 사랑한 적이 없다. 마법소녀를 사랑하기에 세상을 구하려는 그녀의 꿈을 응원했을 뿐. 나도, 마법소녀도 마녀가 되지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





참고 자료


「캐릭캐릭 체인지」| 왓챠 https://watcha.com/contents/tl9wOaR

「슈가 슈가 룬 3」 |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758368

한국갤럽조사연구소, 「2022년 올해를 빛낸 가수와 가요 - 최근 16년간 추이 포함」https://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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