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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 May 19. 2024

사랑, 전쟁과 평화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2020.12.27. 독후감 재게시


『오만과 편견』을 이제서야 봤다. 그동안 BBC 드라마와 영화를 몇 번이고 돌려보면서 원작을 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많았지만, 변명하자면 어떤 번역이 가장 읽기 좋을지 고민하느라 늦었다. 왜 이 책을 골랐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초판본과 동일한 표지인 더스토리의 책을 읽었는데, 원문과 비교해보니 민음사의 것을 읽는 게 더 원문에 가까웠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스토리는 보다 자연스러운 번역을 위해서인지 문장이 많이 바뀌어서 제인 오스틴의 표현과 꽤 다르다. 아래 블로그에 번역을 비교해놓은 것이 있으니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좋을 듯하다. 민음사 번역을 갖고 싶기도 한데 이미 내용을 달달 외워버려서 다음번엔 차라리 원서를 읽어보려고 한다.


https://blog.naver.com/jsj6347/221300916216




다아시의 애정


『오만과 편견』에 등장하는 다아시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부유하고 능력 있는 남성이라고 한다. 그런 다아시가 얼마나 엘리자베스를 열렬히 사랑하는지는 소설 전반에 점점이 흩뿌려 있다. 거진 다아시의 사랑 고백 소설로 볼 수도 있다.


"이젠 그쪽에서 뭔가 말씀을 하셔야 할 차례일 것 같은데요. 제가 춤에 대해 얘기를 했으니까 다아시 씨도 방의 크기라든지 아니면 춤추는 커플의 숫자라든지 뭐 그런 얘기라도 하셔야죠."

그는 미소를 지으며 무엇이든 그녀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다.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더스토리(2019), 162-163면


다아시와 엘리자베스가 무도회에서 함게 춤을 추고 있을 때, 말을 잇기 어렵고 그가 어색했던 엘리자베스가 나름대로 노력을 하다가 위와 같이 말하자 다아시가 답변하는 장면이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의 미소를 전혀 다른 쪽으로 해석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그의 말과 행동이 오로지 다정한 진실만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한결같이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엘리자베스를 바라보았지만 그 눈길 속에 열렬한 흠모의 감정이 담겨 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가끔은 방심한 사람처럼 멍한 표정을 지을 때도 있었다.

제인 오스틴, 같은 책, 314-315면


엘리자베스는 정원을 산책하다가 몇 번이나 불쑥 다아시와 마주쳤다. 그녀는 아무도 오지 않던 이곳에서 하필이면 그를 만나게 되다니 정말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다시 그런 얄궂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엘리자베스는 처음 그와 마주쳤을 때 그 길은 자기가 무척 좋아하는 산책로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두 번째 그와 마주친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제인 오스틴, 같은 책, 316면


다아시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다아시는 그의 가족들, 친구들, 하인들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항상 판단력이 좋고 믿을만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이와 대조적으로 엘리자베스 앞에서만 어쩔 줄 몰라 하며 허둥대는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리고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보면 재미있어서 웃음이 나온다. 특히 316쪽 즈음에서 다아시는 엘리자베스가 그로부터 청혼 받기를 원한다고 착각하고 있었으니, 엘리자베스가 '자기가 무척 좋아하는 산책로'라고 말한 것은 다아시에게 여기서 자주 보았으면 한다는 말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엘리자베스를 향한 다아시의 구애를 보다 보면 과연 이런 사랑이 가능할지,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사랑하고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마음을 품는 게 가능한지 의심스러워진다. 특히 굴욕을 참고서도 위컴이 리디아와 함께 저지른 잘못을 해결하는 다아시를 보면 마음이 아플 지경이다.


네 이름을 입 밖에도 내지 않는 걸 보고 약간 음흉스럽다는 느낌도 들었어. 요즘은 음흉한 게 유행이긴 한가 보더라.

제인 오스틴, 같은 책, 548면


다아시는 참 진국이다. 이 모든 엉망진창이 된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엘리자베스의 외삼촌 부부에게 엘리자베스 때문에 자신이 개입했다는 말은커녕 그녀의 이름을 언급도 안 했다. 외숙모는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만 모르고 남들 눈에는 빤히 보이는 사실(다아시의 사랑)을 당연히 알고서 다아시가 약간 음흉하다고 편지에 써보낸다. 그다음 문장은 '요즘은 음흉한 게 유행이긴 한가 보더라.' 외숙모도 내심 다아시가 흡족한 게 분명하다. 아직까지 다아시가 사랑받는 것을 보면 그 유행이 200년을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제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려거든 엘리자베스 양 혼자서만 하십시오. 제가 그 일에 나서게 된 여러 가지 동기 중에 엘리자베스 양을 행복하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양의 가족들은 제게 빚진 게 없습니다. 그분들을 무척 존경하기는 하지만, 제가 생각한 사람은 오직 엘리자베스 양 한 사람뿐이었으니까요.

제인 오스틴, 같은 책, 616면


나중에 엘리자베스가 위컴과 리디아의 문제를 해결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자 다아시는 위처럼 답한다. 그는 남들 앞에서는 자신이 엘리자베스를 얼마나 깊이 은애하는지 화려하게 표현하지는 않지만 엘리자베스와 단둘이 있을 때에는 자신의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두 번의 청혼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결합 과정을 집중해서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다. 당대에는 남녀 간의 사랑의 결실은 곧 결혼이었다. 그런데 둘의 결합은 결코 평이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둘 사이에 벌어진 갈등의 원인은 외적인 것이 아니었다. 엘리자베스의 기우는 집안과 경박한 주변 사람들 때문에 둘의 연애가 어려웠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절대 주요 요인이 못된다. 둘의 연애가 어려웠던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다아시의 '오만'과 엘리자베스의 '편견'이다. 즉, 그들의 갈등은 내면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오만을 상징하는 다아시와 편견을 상징하는 엘리자베스. 오만의 세계와 편견의 세계는 한 번의 커다란 충돌을 겪고, 그 뒤로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섞여들어가 끈끈하게 묶인다. 이 두 과정은 다아시의 청혼과 그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답을 통해 드러난다.


"그건 엘리자베스 양이 하트퍼드셔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엘리자베스 양은 롱본을 조금만 벗어나도 멀게 느끼겠죠."

이 말을 할 때 다아시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비쳤다.

제인 오스틴, 같은 책, 311면


다아시는 자신의 오만함으로 인해 자신이 청혼을 하면 당연히 엘리자베스가 받아들일 것으로 착각한다. 그리고 청혼을 하기 전부터 엘리자베스에게 결혼을 염두에 둔 말을 슬쩍 흘리고 만다. (엘리자베스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전혀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만.) 다아시는 엘리자베스가 자신과 결혼하고 나면 그녀의 고향 롱본을 떠나야 하니 그녀에게 가까이 앉으며 '평생 롱본에서 살 수는 없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아시는 의자를 그녀에게로 약간 끌어당겨 앉으며 말했다.

"자기 고향에 그렇게 강한 집착을 가지시면 안 됩니다. 평생 롱본에서 살 수는 없으니까요."

제인 오스틴, 같은 책, 312면



반면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편견으로 인해 다아시의 성품과 인격을 실제보다 매우 낮게 평가하고 혐오한다. 이러한 두 세계가 각기 크기를 키워가며 긴장이 고조되다가 대격돌을 하는데 그게 바로 다아시가 처음으로 청혼을 한 때이다.


저도 묻고 싶네요. 저를 불쾌하게 하고 모욕감을 느끼게 할 걸 알면서도, 자신의 의지에 어긋나고, 이성에도 어긋나고, 심지어 자신의 인격에도 어긋나지만 어쩔 수 없어서 저를 좋아한다고 고백하시는 이유를 말이에요.

제인 오스틴, 같은 책, 330면


엘리자베스는 처음에 다아시의 청혼에 매우 놀라지만 그의 말을 들으며 생긴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에 어긋나고, 이성에도 어긋나고, 심지어 자신의 인격에도 어긋나지만 어쩔 수 없어서 나를 좋아한다는 말은 다아시의 오만함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의지, 이성, 인격을 매우 높이 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를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숨길 수 없는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낼 거라고 생각한다. 다아시에 대한 편견으로 똘똘 뭉쳐 있던 엘리자베스는 이러한 청혼을 무례하게 생각하고 화를 낸다.


그러나 비가 온 뒤 땅이 굳듯이, 두 세계는 커다란 갈등 뒤에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아시는 자신의 오만함을 깨닫고,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편견을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들이 자신의 오만과 편견을 내려놓고 진실된 눈으로 상대방을 다시 관찰하고, 이해하고, 마침내 사랑하도록 만든다.


평범하고 진부한 신데렐라 스토리라면 두 남녀의 결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한다. 여자가 남자의 청혼을 거절하는 이유 또한 지나친 신분 격차와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사랑 이야기는 이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 둘의 사랑이 순탄치 않은 것은 그들의 오만과 편견 때문이다. 처음 엘리자베스가 다아시를 거절한 것은 자신이 그를 사랑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외부의 장애물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내면의 장애물을 발견하고 없앰으로써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더욱 잘 이해하고 아끼게 되었기에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게 된 중요한 계기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왜 서로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은 서로가 그동안 어느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자기 자신의 오만함이나 편견을 발견하게 했다. 다아시는 엘리자베스를 통해 스스로 들여다보고 한 층 성장하였으며, 엘리자베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을 서로를 통해 내면의 성숙을 일궈낸 것이다. 다아시나 엘리자베스처럼 인품과 지성을 추구하는 젊은 남녀라면 배울 게 많은 상대방을 깊이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 멋지고 세련되다고 감탄한 점은, 서로 다른 두 세계의 결합이라고 흔히 생각할 수밖에 없는 '청혼'을 통해 두 세계의 갈등과 두 세계의 화해라는 전혀 다른 두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첫 번째 청혼에서 두 남녀의 갈등을 최대로 고조시킨 것부터 놀라운데, 이를 계기로 두 세계가 녹아든 점, 게다가 갈등을 일으켰던 청혼이 두 번째로 반복되었을 때에는 비로소 두 남녀가 진정한 결합을 이룬 점을 생각하면 몹시 짜릿하다. 그들이 충돌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화해한 것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당장 책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보고 엘리자베스는 적이 마음이 놓였다. 잠시 후 그는 엘리자베스가 키티와 함께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와서 뜨개질 솜씨를 칭찬하는 척하며 엘리자베스에게 귓속말을 했다.

"아버지께 가 보세요.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셔요."

제인 오스틴, 같은 책, 634면




19세기 영국 귀족의 삶


제인은 아버지가 안 계실 때 그의 편지를 뜯어 보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편지를 뜯어서 읽어 보았다.

제인 오스틴, 같은 책, 498면


이 작품은 당대의 모습을 아주 잘 보여주는 시대의 거울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예의범절과 점잖은 몸가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위컴과 도망친 리디아를 찾기 위해 런던에 간 베넷 씨 앞으로 편지가 왔을 때 그의 자녀들은 그저 그가 부재중이기에 그걸 읽은 게 아니다. '아버지가 안 계실 때 편지를 대신 뜯어 보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편지를 뜯은 거다.


두 커플(다아시-엘리자베스, 빙리-제인)의 사랑이 순탄치 않았던 것이 이러한 예절문화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은 쉽게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조차 짧은 몇 마디가 오고 간 것을 제외하고 '긴 대화'라고 할만한 것은 두 번의 청혼 때 말고는 딱히 생각나는 일이 없으니 말 다 했다. 엘리자베스는 당당하고 용감해서 그나마 형편이 낫지, 그녀의 언니 제인과 그녀의 남편 된 빙리는 그가 청혼하러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제대로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제인과 빙리는 약혼을 한 뒤에야 훨씬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


덧붙여 신분과 관련된 언급이 많은 것, 또한 하인이나 하녀는 거의 이름도 없이 문을 열거나 시중을 들 때에만 언급되고 만 것을 고려하면 당시 신분 질서가 매우 엄격한 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아시의 집안과 엘리자베스의 어머니의 집안의 신분 차이도 구별될 뿐더러, 이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신분을 가져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계급도 있었다.



이 소설의 핵심 소재는 '결혼'이다. 결혼을 통해 제인 오스틴은 진실된 사랑 문제를 다루기도 하고, 당대의 부조리함을 은근히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남자 형제가 없으면 재산이 거의 남에게 넘어가고 마는 '한정 상속'이 얼마나 불합리한 제도(엘리자베스의 가족)였는지, 당시 직업을 갖지 못하던 여성들이 왜 결혼을 '삶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적 수단'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는지(샬럿) 그 상세한 맥락을 설명한다. 또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여성들을 통해 변화하는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인의 조용하고 온순한 성격은 전통적인 여성상을 보는 듯하다. 그녀는 자신의 슬픔을 숨기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며 상대방을 함부로 비난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러나 진취적인 여성상을 대표하는 엘리자베스를 통해 19세기 영국의 여성상이 점차 어떤 식으로 변화하고 있었는지도 알 수 있다. 엘리자베스는 제인을 매우 착하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제인을 닮으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다른 사람의 비난받아 마땅한 일은 냉철하게 비판하고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하는 용기 있는 여성이다. 마지막으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결혼을 통해 어리고 젊은 여성인 조지애나(다아시의 여동생)가 깨달은 점을 통해 제인 오스틴을 포함한 젊은 여성들이 그렸던 다음 세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나이 순서대로 제인-엘리자베스-조지애나는 각각 전통적인 여성의 모습, 당대로서는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 (제인 오스틴이 상상한) 다음 세대의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지애나는 엘리자베스를 보면서 전에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엘리자베스를 통해 여자들도 남편을 스스럼없이 편안하게 대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제인 오스틴, 같은 책, 653면



나는 결말 부분보다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펨벌리에서 우연히 재회하는 장면을 가장 좋아하는데, 결말에서는 중간중간 어머니와 위컴 부부가 등장해서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펨벌리에서는 오로지 엘리자베스와 외삼촌 부부, 다아시만 있어서 두 사람 간 약간의 어색함과 상대방을 향한 애정이 만들어낸 긴장만 있을 뿐 평화롭다. 다아시는 외삼촌 부부와 잘 어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생각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결말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모두 무시하지 않고 결혼 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쓰인 것은 아쉽더라도 납득할 수밖에 없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기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면 여행을 기대하던 엘리자베스의 생각을 떠올리는 게 도움이 된다.


만일 모든 계획이 완벽했다면 틀림없이 실망할 일이 생겼을 거야. 하지만 언니와 함께 가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으니까 다른 즐거움은 모두 이루어지겠지. 모든 점에서 완벽한 계획이란 생각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거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조금은 있어야 실망하게 되는 상황을 미리 막을 수 있는 법이야.

제인 오스틴, 같은 책, 407-408면


로맨스면 로맨스, 시대상이면 시대상, 줄거리면 줄거리,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으니 강력 추천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드라마와 영화도 참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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