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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이 Nov 22. 2021

밤을 삶으며 사유하는 삶의 자세

보다 많이 '할 줄 아는' 나를 위해

오늘부로 나는 밤을 삶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혹은, 밤을 삶아 본적 있는 사람이.


밤 삶는 일이 뭐 대단하다고?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제' 그 생각에 동의한다.

정확히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냐면,


적당해 보이는 크기의 냄비를 꺼내, 그 안에 어머님이 일회용 비닐 봉투에 담아서 싸주신

생밤을 쏟아 붓고, 밤들이 살짝 잠길만큼의 물을 더해 레인지 위에 올려 놓은 순간부터다.



막상 해보니 별 것 아니더라는 말,

누구나 살면서 꽤 많이 해 봤거나,

 아니면 적어도 들어 봤을 말이다.

세상엔 해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이

정말이지 넘치게 많다.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오늘도 어제처럼 아무렇지않게 패스해버리고 마는 나의

무심한 게으름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이번에도 나는 어머님께 받은 밤들을

그대로 가까이 사시는 친정엄마에게 토스해

엄마가 맛있게 쪄서 가져다 준 밤 몇알 만을

홀랑 취할 요량으로 시기를 재고 있었다.


그러던 것을,

친정집이 가깝다곤 해도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서야 하는 번거로움과

살짝 허기가 도는 몸에 건강한 간식을 주고자 하는

 기특한 생각까지 지원군으로 나선 덕에

나는 드디어 스스로 밤을 삶기에 이른 것이다.


물이 졸아 냄비가 타지 않도록 주의하며,

30여분을 불위에 놓아 둔 밤들은

분주하게 끓어오르는 물거품을 견뎌내며

조개마냥 입을 터뜨려

뜨거운 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내가 삶은 뜨끈한 밤의 맛이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

익었는지 확인 차 집어든 한알에서 시작해

그대로 선채로 밤 대여섯개를 까먹어버렸다.

구수하고 달콤한 밤조각들을 연이어 입안에 털어넣으며, 나는 이깟 밤 삶는 일이 뭐가 그리 귀찮았을까

생각해 본다.



스스로 무언가 새롭게 배우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자부해 왔다.

숱하게 쓴 입사 지원용 자기소개서에서

누누히 강조한 나의 장점도 다름 아닌 그것이었다.


지적 허영을 위한 거창한 취미 말고,

듣기만 해도 누구나 흥미를 느낄만한

익사이팅한 액티비티 말고,

내가 진정 두려움(솔직히 말하자면 귀찮음에 더 가까운)없이, 해보고자 즐겨 시도해야 하는 일들은

이런 일상의 소소한 ,

'태어나서 한번도 안해 본 일들' 이 아닐까 싶다.


안해봤던 일이  

해본적 있는 일로 바뀌는 험은

그게 무엇이든간에,사람의 삶을

아주 조금일지언정 분명히 더 풍성하게

채워 준다. 그렇게 더해진 일상의 다채로움이 언젠가 생각지 못한 시기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삶의 기쁨으로 피어날

작은 씨앗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고작 밤 한번 삶으면서 깨달았다고 하기엔 너무 거창한가?

김장 정도는 시도해본 다음에 이야기 해야 할까?


어찌되었건 부단히 나의 귀찮음을 걷어 내고,

'한번 해보지 뭐' 라는 마음가짐으로

 일상에 임해 볼 일이다.

나 그거 해본 적 있어~, 할 줄 알고 말고~!

라고 이야기하는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지는 건 정신 건강에 아주 이로울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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