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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이 Oct 02. 2022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스스로 불행해지는 사람의 특징

눈도 채 뜨지 않은 아침, 어제의 일이 머리를 스친다.

같은 팀 후배와 업무분담 문제로

미묘하게 불편해졌던 순간과

 장님께 모처럼 제안한 저녁식사를

거절당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의 시작을 어제의 Worst2로 열었다.


원한 적 없는 나쁜 기억이 무시로 떠오르는 건

내게 익숙한 일이다.

운동을 하다가, 거울을 보며 양치를 하다가,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업무 관련 회의를 하다가도.

나쁜 한때가 찰나로 되살아나 마음을 가라앉히곤 한다.

문제는 그들의 출현에 아무런 맥락도,

별다른 트리거도 없다는 점이다.

그저 훅하고 나를 치고 가는 우울한 과거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추천되는 영상의 리스트는

 차라리 수긍할 수 있지만,

내 의식 속 끊임없이 재생되는 기분 나쁜 순간들의 반복은 납득이 어렵다.

나는 왜 이러는 걸까?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순간을 더 민감하게

각인시키는 편인지도 모르겠다.

어제의 경우도 그렇다.

 어제는 오랜만에 발견한 취향에 맞는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며 출근길 내내 감성 촉촉한 시간을 보냈다.

점심시간엔 직장 근처 새로 생긴 트렌디한 호텔에서

 공짜 점심을 먹을 기회도 가졌다.

 팀장님과 저녁식사는 못했지만

퇴근길, 남편을 기다리며 요즘 푹 빠진 마라탕을

원 없이여유롭게 먹었고,

후식으로 먹은 쿨라임도 만족스러웠다.


굳이 비율로 나눠보자면 어제 하루 기분 좋은 시간

(그저 그랬음 포함)과

기분 나쁜 순간은 8.5 대 1.5 쯤이 아니었을까.

 다음 날에  미친 영향력은 결국

 1.5 쪽의 압도적 승리였다는 점이 참담하지만.


흑백영화 속 컬러풀한 화면의 등장처럼

 기분 나쁜 순간은 유독 도드라지게 뒤끝을 남긴다.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기억을 찾아

소환하려 노력하다 보니,

좋았던 순간의 기억들은

의외로 생생하게 되살리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정말 좋았었지, 뭉뚱그릴 순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감각이었고,

어떤 장면에 감동했었는지

길게 생각을 이어나가기가 힘들었다.  


연쇄적으로 떠오르는 나쁜 기억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무수히 추락시키는 동안,

아이들과의 벅찬 첫 만남의 순간이나

 생애 처음 별똥별을 마주한 여행지에서의 설레는 밤이

나를 구원해 준 적은 없었다.


날카로운 무기를 벼르듯

불쾌했던 순간을 반복적으로 재생시키는 동안

거듭거듭 각인되며

어쩌면 실제보다 더 선명해진 과거의 파편이

때를 가리지 않고 나를 찌르도록

의식 깊숙이 프로그래밍화된 기분이다.  



당연히 좋지 않다.

내 기분 관리가 어려운 건

어떤 상황에서도 달갑지 않은 일이다.

하루의 기분이 곧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론

좋다-!라고 생각하는 순간을

찾고, 늘리는 일에 부지런을 떨어야겠다.

지금이 좋은 순간이다, 확실히 느껴질 땐

사진 찍듯 내 안에 오래 남기기에 최선을 다하고,

자꾸만 자꾸만 정성스레 되살려 곱씹어 버릇해야겠다.


생각하자.

잠들기 전 장난에 깔깔대던 아이의 웃음소리를.

자꾸자꾸 떠올리자.

베란다 창을 긋는 비를 보며 느낀 아늑함과 포근함을.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습관을 끊어내자.

자꾸만 써야 튼튼해지는 근육처럼

좋은 기억을 떠올리는 습관을 더더 강하게 키우자.  


나쁜 기억에게서 힘을 뺏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과거에 그대로 두자.

 그대로 놓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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