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에이 Aug 19. 2023

사과를 할 때는, 사과를 해요.

사과만 해요... 좀

남편의 사과는

약 10%의 인정 및 사과

그리고 나머지 90%의 다른 무언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헤아려보니 결국 오늘 내가 받은 건

 알량한 한 줌의 사과와

몇 배는 될법한 텁텁하고 미덥지근한

감정의 덩어리들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아주 가성비 좋은 사과를 한 셈이다.

 



어제저녁 외식 메뉴는 갈비였다.

완전히 익힌 상태의 고기가

커다란 접시에 담겨 제공되자

남편이 가위와 집게를 들었다.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의 앞접시에 차례로 올려준 남편은

뒤이어 고기 한 점을 집더니

(공용 그릇도 아닌)

자신의 앞접시에 고기를 잘라 담았다.

그러고는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나에게 가위와 집게를 넘겼다.


?


물론, 나는 양손을 불편함 없이 쓸 수 있는 성인 여성이므로

가위와 집게를 넘겨받아 내 몫의 고기를

스스로 잘라먹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혼란스러웠다.

나까지 챙길 잠시를 참을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허기가 지다 이건가

내가 평소에 특별히 선호하는,

남이 맞추기 애매한 고기 사이즈가 있었나

갈빗집에서 앞으로의 각자도생을 결심하게 할 일인가


곱씹을수록

남편은  '너 알아서 먹으라'

내게 행동으로 말한 것과 다름없었고,

사람의 본심은 아주 작은 행동에서

 드러나는 법이라 믿는 나는

가끔 보는 정 없는 직장동료에게도 하지 않을 법한

그의 태도가 감출 수 없이 서운했다.  


그 서운함이 내가 받아야 할 사과의 원인이었다.




다시 남편의 사과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쩔 수 없이 주관이 섞인 해석이겠지만,

최대한 그의 워딩을 살려 정리해 보면

그의 사과란  다음과 같았다.


1. (어쨌든 사과라 할만한 부분)

기분이 나빴다면 일단 사과한다. 미안하다.


2. (원인에 대한 부정)

그러나 이렇게 화를낼 일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가족 간에 편하게 할 수도 있지,

그럼 상사 대하듯 예를 갖춰 어렵게 대해야 하나

그냥 넘어갈 일도 예민하게 나오는

 일관성 없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3.(원인은 차치하고 화를 낸 사실 자체에 대한 비난)

아이들 앞에서 화난 걸 표현하는 건 좋지 않고,

 이런 식의 대응은 나도 화가 난다.


4.(과거소환)

나도 너 때문에 당황하고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건 언제~ 언제고 언제~ 언제다.

너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도 이러이러했던 일이 떠올랐다.   


5. (일반화) 누구나 언제나 행복하진 않다.

나도 평소에 이러이러한 점을 서운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그가 사과라며 건넨 것을 받아 들고도

조금도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


오히려

사과라는 포장 안에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욱여넣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속풀이라도 한듯한 그가

속이 후련하다면 더 후련하지 않을까?


사과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

이라는 뜻의 단어인데

내가 사과를 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마흔, 하와이에서 비키니를 입기로 결심했다-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