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첫 취향에 대해서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저는 펭귄과 포옹하지 않을 거예요. 한때는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펭귄들을 만나고, ‘체험’이라 불리는 프로그램에 등록해 펭귄과 함께 걷고, 포옹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단순히 품에 안고 싶은 마음 이상으로, 펭귄을 너무 사랑하고 아끼게 되어서 그 친구들이 아무런 방해와 고통 없이 그들의 공간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기만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펭귄과의 포옹은 아직도 꿈으로 갖고 있어요. 이루지 않겠다고 다짐한 꿈이지요. 그만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으니까요. 저는 타인을 무서워하는 인간이면서 비인간 동물도 곧잘 무서워합니다. 특히 조류에 대한 공포는 조금 더 크고요. 그런데 어쩌다 펭귄을 사랑하게 된 걸까요?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아무래도 어릴 적 보았던 애니메이션인 <핑구>의 영향이 아닐까 싶어요. 말 없는 클레이 펭귄 핑구와 핑구의 동생인 핑가의 모험 이야기를 질리도록 돌려보던 기억이 있습니다. 핑구와 핑가는 어린 저의 친구들 중 하나였어요. 그 친근감이 한구석에 남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게 분명해요. 그게 아니라면 (무서운) 조류를 향한 사랑의 원인을 찾을 곳이 없습니다.
핑구와 펭귄의 관계에 대한 발견을 시작으로, 어렸을 때 의식하지 못하고 좋아했던 것들이 지금까지도 저의 취향과 삶에 영향을 미친 것을 깨달았어요. 앞서 말했듯 펭귄 친구들과의 포옹을 버킷리스트에서 지웠고, 그저 눈이 녹아내리지 않아 진흙을 뒤집어쓸 일이 없기를, 오랫동안 먹이를 찾아 헤엄치지 않기만을 바라게 되었는데요. 그런 바람을 시작으로 기후 위기와 환경에 관한 관심이 더욱 커져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비건 지향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어릴 적 보던 애니메이션으로 시작된 펭귄 사랑은 저의 생활 방식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유년 시절의 취향이 지금까지도 남아 말 그대로 매일을 살아가는 일에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어요. 이처럼 취향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삶에 큰 흔적으로 자리하기도 합니다.
저는 일요일 아침에 <디즈니 만화 동산>을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어린이였답니다. 아마 지금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분도 계시겠죠? ‘핑구’ 외에도 저의 유년을 채운 중요한 취향은 ‘디즈니’ 예요. 핑구가 지금의 생활 방식에 영향을 준 취향이라면, 디즈니는 저의 취향 자체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디즈니 고전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해요. 싫어할 여지가 매우 많음에도 거부할 수 없어요. 싫다고 외치면서도 자꾸만 찾게 되는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입니다. 그저 너무 취향이에요.
디즈니는 저의 취향을 어떻게 개조, 아니 발전시켰을까요. 어릴 적 기억 속 디즈니 영화들을 꺼내 보았어요. 아무래도 <101마리 달마시안> 애니메이션 때문에 고양이보다 강아지를 더 친근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영화 속 아기 강아지들과 꼭 닮은 달마시안 인형을 매일 안고 자기도 했답니다. 그러고 보니 영화 속에 재즈라는 음악 장르도 숨어있네요. 빌런 캐릭터인 ‘크루엘라 드 빌’ 때문에 악몽을 꿀 정도였지만, '크루엘라 드 빌~ 크루엘라 드 빌~'하는 주제곡은 정말 좋아했어요. <101마리 달마시안>을 비롯해서 어릴 적 여러 번 보았던 <곰돌이 푸>, <미녀와 야수> 같은 디즈니 애니메이션들과 픽사의 <토이 스토리> 등은 저의 첫 ‘덕질’이었던 것 같아요. 덕후가 되고 보니 어릴 때 했던 '계속 돌려보기'가 덕질의 일환이었던 걸 깨달았어요. 그 첫 덕질은 지금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디즈니의 영화는 개봉을 기다리며 챙겨보고, 넷플릭스에서도 수십 년 전의 디즈니 고전을 보게 만들고 있습니다. 참 유구한 취향이지요. (지금은 넷플릭스에서 디즈니의 콘텐츠들을 서비스하고 있지 않답니다. 디즈니 플러스의 국내 론칭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아주 어릴 적 좋아하던 것들이 하나로 뭉쳐져 결국엔 같은 결을 공유하는 취향을 가지게 되었네요. 지금도 같은 결의 색과 음악을, 이야기를 좋아하고 있으니까요. 노란빛보다 푸른색을 더욱 포근하게 느끼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음악을 좋아하고, 일상에서 싹을 틔워낸 사람과 사랑 이야기에 마음이 갑니다.
그럼 이제, 취향 가이드로서 첫 질문을 드릴게요. 당신의 첫 취향은 무엇이었나요? 혹시 그 취향이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지는 않나요? 첫 취향을 회상하다 보면 무언가 그리운 마음이 들기도 할 거고, 반가운 재회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새삼스럽게 '내가 이런 것을 좋아했나?!' 할 수도 있구요. 현재를 알기 위해 과거를 들여다보듯이 우리의 취향이 과거에 남긴 발자국을 찾아봅시다. 그 흔적을 쫓아 취향을 발견해 나가보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