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에 결혼했으니 올해로 결혼한 지 21년이 되었습니다. 2005년에 태어난 아들이 올해 완전한 성인이 되었으니 워킹맘이 된 지도 어언 20년 차네요. 워킹맘으로 20여 년간 회사를 다니면서 무사히 두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조건이 맞았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제가 다니는 회사가 외국계 기업인 덕분에 여성 친화적이어서 그러지 않았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외국계 기업이라 하더라도, 20년 전 모든 직원이 한국인이었던 한국에 있는 외국계 회사는 그리 유연한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여직원이 결혼을 하면 퇴사하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을 막 지나 결혼한 여직원이 회사를 다니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임신을 하면 퇴사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였습니다. 제가 이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은 전임자가 결혼을 해서 빈자리가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입사한 지 몇 달 뒤 임신을 한 옆 부서 여직원은 이미 출산 전 퇴사하기로 되어있었는데도 그 몇 달 동안 몇몇 남직원들이 왜 빨리 퇴사하지 않는 거냐는 수군거림을 들어야 했죠.
저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임신과 출산 후 복직한 최초의 여직원입니다. 첫째는 37주가 되어도 2킬로를 겨우 넘을까 말까 해서 의사 선생님이 더 키워서 낳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38주가 되어 퇴근 준비를 할 무렵 갑자기 양수가 새서 불안한 마음을 졸이며 혼자 운전해서 병원에 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렇게 출산 전날까지 출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당시에도 법적으로 보장되던 3개월의 출산휴가를 2개월만 쓰면 안 되냐는 이야기를 들었죠. 그 당시의 저를 생각하면 꼭 안아 토닥여 주고 싶습니다.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아이를 낳아 키우며 회사를 다니다 보니 주변에 조언을 구할만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조금은 어린 나이에 결혼과 출산을 했기에 부모님들도 사회생활 중이셔서 육아를 도와줄 형편이 되지 않았고, 첫째가 초등학교 갈 무렵 만해도 주변에 워킹맘은 거의 없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동네 친구들을 사귀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죠.
첫째가 성인이 되고 보니, 이렇게 오롯이 홀로 시작한 육아의 여정이 이제 마무리되어 가는 기분이 듭니다. 출산의 기쁨은 분명 큰 축복이었지만, 그 뒤에 숨겨진 현실의 그림자 또한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느낀 기쁨과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동시에 육아와 직장생활이라는 시소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끊임없는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었죠. 이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자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아!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았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을 키우며 열심히 살고 있는 모든 분들께도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괜찮게 살 수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