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울린다. 딸의 전화였다. 아직 수업 중일 텐데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어머님! 여기 00 고등학교인데요. 현진이가 배탈이 심해서 조퇴를 시켜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곧 딸을 바꿔준다.
"엄마! 학교에 나 데리러 올 수 있어"
다음 주부터 딸이 고등학교에 들어와 보는 첫 중간고사가 시작된다. 미리 조금씩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뒤늦게 공부를 하려니 딸은 새벽 3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든다. 누가 보면 기특한 딸이라고 칭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2~3시간도 못 자고 학교를 가다 보니 저녁 학원수업은 피곤해서 가지 못하곤 한다. 딸의 공부습관을 고치려고 여러 번 권면도 하고, 잠을 못 잤을 때 후유증에 대해서 얘기해 보지만 딸은 우리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잔소리로 생각하는지 딸은 짜증을 낸다.
"내가 알아서 한다고. 공부에 방해가 되니 나가줘."
딸도 대학에 가려면 고등학교 내신등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나름 긴장하고 있다. 그러니 자꾸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평소 생리통이 심했던 딸은 이번 달은 너무 힘들어해서 생리 결석계를 내고 쉬어야만 했다. 보다 못한 남편은 딸을 데리고 산부인과 병원에 가서 다시 진료를 받았다. 초음파까지 했지만 감사하게도 이상은 없었다. 생리통 증세가 괜찮아지자 딸은 다시 새벽까지 공부를 했다. 배탈이 나게 된 것도 밤늦게 몰래 매운 컵라면을 먹은 것이 원인이었다. 중요한 시기에 딸은 몸이 아파서 공부할 시간을 놓쳤다. 우리 부부의 한숨만 늘고 있지만, 끝까지 믿고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자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는 말이 있다. "과연 우리 부부는 딸에게 어떤 뒷모습을 보였을까? "남편은 TV 시청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평소 나는 책 읽고 글 쓰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다 좋은 구절을 만나면 딸에게 달려가 들려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딸이 기억하는 엄마의 뒷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모른다. 그래도 딸에게 요즘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다고 말하면, 딸은 대뜸 "엄마. 그걸 글로 써요"라고 말한다.
딸을 하나님 자녀로서 정체성을 가진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딸은 교회에서 하는 말씀 훈련을 할 수 있는 '어와나'훈련을 받았고, 주일은 예배를 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러나 코로나동안 집에서 예배를 드렸고, 그 무렵 사춘기와 맞물러 딸은 교회 가는 것을 예전처럼 즐거워하지 않는다. 그 원인 중에 늦게 잠자는 습관이 아침에 못 일어나게 되고 결국 현장예배에 가지 못한다.
처음에는 딸의 이런 모습에 심한 잔소리를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던지는 말들이 딸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딸과 거리만 멀어질 뿐이었다. 예배를 가지 못한다고 할 때는 기도만 해주고 혼자 교회로 향한다. 그렇다고 엄마이기에 딸에게 필요한 말이라면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딸이 싫어할지라도 미리 포기하듯 내려놓을 수는 없다. 그건 부모로서 직무유기이다. 딸과 약간의 거리는 두되 지혜롭게 딸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최근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이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난다)를 출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손웅정 감독은 1년에 200~300권 이상 읽는 다독가이다. 그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면 서점에 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공부의 기본은 독서이고, 미래를 여는 열쇠는 책에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번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손 감독이 했던 인터뷰를 살펴보았다. 사람들이 손흥민 선수가 '월드클래스'이냐는 질문엔 손 감독은 "아니다"라며 "월클은 공도 잘 차야 하지만 인품도 훌륭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식에게 친구 같은 부모가 되는 건 직무유기라고 봅니다.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끝끝내 말해줄 수 있는 건 부모뿐이니까요"
그의 말에 동의한다. 친구 같은 부모는 존재할 수 없다. 친구는 지적은 할 수 있어도 부모는 끝끝내 안된다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도 딸에게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녀가 커가면서 부모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닐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 딸이 힘들 때 언제든지 쉴 수 있는 부모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손 감독은 "가난만 대물림되는 게 아니라 부모의 게으름, 부지런함, 청소하는 습관도 대물림된다고 생각한다. 어디 가서 사람과 사람 간에 선을 넘지 않는 부모 모습을 보면서 자식들도 그런 태도를 배운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식에게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며 독서에 관한 진심도 자신의 방식으로 전했다. 손흥민 선수가 책 읽을 시간 없이 바쁘면 독서노트에 썼던 생각들을 책에 메모해 머리맡에 놔주는 식이었다.
손 감독은 간담회 도중 여러 번 '겸손'을 말했다. 손흥민 선수에게 어떤 책을 추천하겠냐는 물음에는 "책보다는 한 단어로 '겸손'을 말하고 싶다"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그는 자신이 읽은 수많은 책에서 뽑아낸 결정체는 지혜와 겸손으로 모아진다고 말했다.
그런 겸손은 인품으로 드러난다. 다만 겸손으로만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겸손을 유지하면서도 자존감을 확실히 지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손 감독은 아들을 어떻게 이러한 '월클'수준으로 키울지는 부모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손 감독은 "큰 부모는 작게 될 자식도 크게 키우고, 작은 부모는 크게 될 자식도 작게 키운다는 생각으로 자식들을 키웠다"라고 전했다.
그는 '자식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이 진짜 부모'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손 감독의 생각에 손흥민 선수는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나는 축구하는 게 가장 행복해.' 애는 그런 마음이고 '나는 너를 행복한 축구 선수로 만들 수 있어서 행복해.' 저는 그런 마음이었죠." 손 감독은 또 "우리 둘 다 돈을 목적으로 축구를 했다면 과연 묵묵히 견뎌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끊임없는 훈련에 손흥민이 짜증을 내지는 않았을까. "자신의 꿈이 있는 무슨 짜증을 내겠어요. 또 모르죠. 제가 무서워 순순히 따랐는지도요."
또한 그는 겸손함과 인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손 감독은 "책을 많이 읽으면 세상을 지식으로 사는 게 아니라 지혜로 살 수 있다"라며 "그런 지혜는 인품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서울경제 사람&이슈
핵가족이 해체되고, 점점 1인 가족이 늘어나는 핵개인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외로움 전성시대인 이때에 사람들은 기존 가족의 개념에서 벗어나 서로의 관심사에 따라 가족형태를 만들어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난 고3 때 엄마를 떠나보내고 가장 외로웠던 그 시절에 난 예수님을 만났다. 다행히 좋은 교회를 만나 행복한 신앙생활을 해왔다. 내 삶이 그랬듯이 딸에게도 영적 유산을 남겨주고 싶다. 기도의 유산, 말씀의 유산을 물려주고, 예배의 기쁨을 전하고 싶다.
어찌 보면 자식에게 가장 최고의 교육은 신앙교육이다. 세상 가치에 빠져 부쩍 남과 비교하며 외모에 관심이 많아진 딸은 폭풍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지만, 이 시간을 잘 지내고, 자신이 하나님 자녀라는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기대이상으로 쓰임 받는 딸로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손 감독처럼 부모는 자녀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계속 질문해야 한다. 자녀가 하고 싶은 것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과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멋지게 쓰임 받을 수 있을지 부모는 연결해 주고 끝까지 응원해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