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로 딱 6학년이 되었다. 요즘 평균 수명이 길어져 곧 백세시대가 열린다고 하니, 내 나이를 축구에 비유한다면 후반전이 시작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열심히 골을 차고 있는 셈이다. 지나온 인생의 전반전을 돌아보면, 즐거웠던 추억도 남아있지만, 고3 때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힘든 시간들을 지내왔다. 갑자기 어른이 되어야 했지만 철없던 나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다. 살아계실 때는 어리광을 부리느라 제대로 효도 한번 못하고 보내드렸다.
그때 왜 그랬는지 후회해도 이제 다시 돌이킬 수는 없다. 부모님의 사랑이 아프고 힘들었던 마음만큼 부모님께 멋진 딸이 되어드리고 싶었다. 그동안 살아온 나의 모난 부분, 방황들조차 지금의 나를 성장시켜 왔기에 더 이상 자책하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 부모님을 만나는 그날, "저 잘했지요!!"라고 말하며 그 품에 꼭 안기고 싶다. 오늘도 내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며 하루를 시작한다.
대부분의 여성 직장인들이 그렇듯이 사회적인 의무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요즘 MZ 세대들은 이전 세대와 다르게 아내와 가사를 공동분배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여성이 엄마가 되는 순간 본능적으로 아이한테로 시선이 가버린다. 그만큼 감당해야 할 역할들이 많아진다. 부모가 된다는 것, 엄마라는 그 이름이 너무 좋다. 다만, 일과 병행하는데 여성이 좀 더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내 꿈보다는 남편과 자녀의 삶이 우선순위이긴 했다. 내게 주어진 의무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하지만, 정작 내 인생은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인생을 살아왔고, 한 직장에서 38년 넘게 일해왔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는 은퇴 후의 삶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우연히 김창옥 교수님이 '꿈'에 대해 말하는 숏츠를 보게 되었다.
"꿈을 이루지 못해도 내 인생의 시간은 소중하다는 거지.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일을 죽을 만큼 해봤는지 나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고, 그렇게 못했다면 내 삶에 조금 부끄러움이 있는 거고, 죽을 만큼 안 해 봤으니까. 그런데 죽을 만큼 해봤는데, '안 돼' 그러면 깨끗하게 인정하고, 몸에 '열심'이 산 습관이 남아 있을 테니, 그 습관으로 다른 장르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감동을 선사하는 사람이 됐다면, 바로 그게 내 꿈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죠."
맞다!! 내 인생의 시간은 소중하다는 것, 그리고 지금 죽을 만큼 열심히 했는지 질문하게 된다. 열심히 했는데도 안될 때는 깨끗하게 인정해야 한다. 사실 은퇴를 준비하면서 내 적성과 맞지도 않는 공인중개사나 요양보호사 자격증이라도 취득해 보려고 기웃거렸다. 자격증만 있으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그 당시 어떤 선배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고, 어떤 후배는 뒤늦게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직장이 있으나 없으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런 지속적인 불안감이 나 자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회사 일밖에 없어. 일을 그만둔 다음에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생의 살날만 길어진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존재에 대한 질문은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코로나 3년여 기간 동안 내가 택한 것은 ‘책 읽기’였다. 나는 다시 책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다. 읽다 보니 글도 쓰고 싶어졌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SNS에 소박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선배에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속마음을 얘기했더니 약간 기가 찬 듯 나를 보며 헛웃음을 내는 것이 아닌가? 착한 선배라 내게 직접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네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도 안 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헤밍웨이의 글쓰기]를 보면 글쓰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두 가지 요소는 '참된 진지함과 재능'이라고 했다. 유감스럽게도 내겐 그 재능이 없다. 그나마 인생에서 싫증 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이 책 읽고 영화 보는 것이다. 취미로만 살아도 될 일을 작가가 되겠다는 과한 욕심을 부리고 있지만 다만 한 가지는 알고 있다. 비록 재능은 없을지라도 더 늦기 전에 좋아하는 일을 해보는 것이다.
요즘 50~60대 늦은 나이에도 작가로 등단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자 긴 습작의 훈련을 지내오셨던 분들이었다. 짧은 시간에 작가로 성공하겠다는 생각은 섣부른 욕심이다. 나는 빠른 속도로 걷거나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목표지점이 어딘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지점을 향해 달리다 그만 거친 숨을 쉬며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일어난다. 역시 인내는 만고의 진리다.
소설을 쓰기 위해 달리기로 건강을 지켰던 하루키처럼 나도 오늘을 달려본다. 물론 나이가 드니 시력과 체력 난조로 책 읽고 쓰는 일이 버거워질 때도 있다. 그러나 한 편의 글이 완성하고 나면 하늘을 날아갈 것 같다. 거창하지 않을지라도 꾸준한 글쓰기 훈련을 통해 소박한 삶을 만들어 가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나를 작가로 부르기 시작했고, 2023년과 2024년에 나는 두 권의 책을 낼 수 있었다. 책을 냈다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주위에 나라는 존재감을 알릴 수 있었고, 나는 글 쓰는 일을 통해 자존감이 상승되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고 말하지만 이제야 글쓰기에 뜻을 두고 정진하려니 내 모습이 웃픈(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평생 작가로 사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부지런히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당신도 작가가 될 수 있다. 다만 시작하지 않았을 뿐이다. 백세시대에 못 할 것이 무엇인가? 적어도 20년은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같이 시작해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