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딸한테 화를 내고 말았다. 고등학교 1학년인 딸은 여전히 사춘기다. 공부보다는 친구가 좋고, 예쁜 얼굴에 더 관심이 많다.
요즘은 내 방 화장대를 자기 것처럼 쓰고 있다. 나는 딸의 뒤쪽 사선으로 보이는 책상에서 새벽마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내 꿈이 자라는 자리인데, 고개를 들면 딸이 음악을 틀어놓고 여유롭게 화장을 하고 있다.
학교가 바로 코앞인데도 몇 번 지각을 했다. 등교 시간이 8시 30분인데, 학교 방침이 워낙 엄격하다 보니 딸은 벌써 두 번이나 지각했다. 딸이 화장을 하는 데 40분은 기본이고, 이제는 교복 위에 걸칠 옷을 골라 입겠다며 옷장을 뒤적거린다. 슬슬 속이 타들어 간다. “그만 도깨비 짓 좀 해라.” 어른들이 하던 말이 떠오른다.
사실 딸은 꿀 피부를 가진 예쁜 아이다. 화장을 안 해도 충분히 예쁜데, 자기 얼굴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안경 대신 컬러 렌즈를 끼고, 눈 화장에 공을 들인다.
물론 화장을 하면 좀 더 예뻐 보이긴 한다. 그러니 포기 못 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런데 부모 마음에는 이 모든 게 그냥 답답할 뿐이다. 곧 기말고사인데, 공부보다는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더 많으니 말이다.
‘엄마가 책 읽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도 따라 한다’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 딸한테는 전혀 효과가 없다. 딸은 책보다는 영상을 더 좋아한다.
물론 내가 책을 읽는 게 딸을 위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모습이 아무런 영향도 못 준다는 생각에 속상하다. ‘딸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언젠가 딸에게 내가 책 읽던 모습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딸도 책을 좋아하게 되면 좋겠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나는 딸에게 끊임없이 시간을 알린다. “지금 30분 남았어. 20분 남았어. 빨리 옷 입어. 10분 남았다니까! 지금 안 나가면 지각이야!” 목소리가 점점 날카로워진다. 옆에서 남편은 슬쩍 옷을 챙겨 입는다. 여차하면 차로 데려다줄 생각인 것 같다. 그런데도 딸은 대꾸하기를, “알겠어! 알아서 한다고!” 오히려 짜증을 낸다.
‘그만하자. 딸 인생인데 내가 이러는 건 너무 간섭일 수도 있잖아.’ 스스로 다짐해 보지만 쉽지 않다. 남편은 이미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고, 딸은 여전히 거울 앞에서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느라 바쁘다. 결국 내 속이 폭발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안 나가면 지각이야! 출결 중요한 거 모르니?” 숨을 몰아쉬면서 다시 퍼붓는다. “너 연예인 아니야! 2년, 아니 1년 반이면 대학이 결정돼.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라고!”
딸은 여전히 짜증으로 맞받아친다. 우리는 서로 MBTI가 다르게 생겼나 보다. 나는 숨이 턱 막히는데, 딸은 그저 짜증만 낸다. 짧은 시간이지만 딸과의 관계에 빨간 불이 켜지는 순간이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고, 결국 남편 차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다행히 지각은 면했다. 매일 아침 우리 집은 이토록 부산스럽다. 오늘도 딸이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고, 학원공부도 잘 따라가기를 바란다. 나의 기도가 더욱 간절해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