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내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살짝 가쁜 숨을 내쉬었다.
나는 세종국립도서관에서 하는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다. 오랜 독서와 글쓰기는 친근하면서도 여전히 어색하다. 이 수업을 신청한 이유도 수혈을 받고 싶어서였다.
박웅현은 ‘책은 도끼다’라고 했는데, 오늘 글쓰기 첫 강의서부터 내 머리에 도끼를 휘두르듯 경련이 일어났다. 그건 사다리였다. 꿈을 향해 올라가려면 사다리가 필요했다.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면 그곳에는 내가 원하는 세상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믿음이었다.
힘겹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내게 교수님이 손짓한다.
“아래로 내려와 보세요”
그 말에 무심히 아래를 내려다보니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반 정도 올라온 것 같은데, 그리 높지 않은 이곳에서 내려다보는데도 아찔했다. 벌써부터 손익계산 따지듯 걸리는 것이 많아서일까. 그동안의 시간을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일까.
내 안의 두 개의 자아가 격렬히 싸우고 있다.
오랜 직장생활동안 굳을 데로 굳어진 내 생각과 몸은 어느새 사회화가 되어 나긋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적당한 선에서 나를 드러내고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만 만났다. 그게 편했으니까.
코로나로 갇혀있던 시기에 독서와 글쓰기를 만났다. 이전에는 일기장에 썼던 글이 오히려 코로나 때 SNS에 다듬어져 올리기 시작했다. 지난 글들을 읽으면 부끄럽긴 하지만, 흑역사도 역사니까 쿨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그 당시 온라인 글쓰기 수업에 참여해 서로 글을 공유하고 퇴고를 거치면서 조금씩 성장했다. 글쓰기가 성장하려면 솔직한 내 이야기가 담겨있어야 한다. 나의 감정을 먼저 쏟아낸 후 여러 번 정제된 언어로 다듬어져 학우들에게 내 글을 보여주었을 때 그 순간 그 일은 내 문제가 아니었다. 아프지 않았다. 다만 많이 울었다. 그리고 더 이상 아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때 느꼈던 글쓰기의 첫 경험을 난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글쓰기의 맛을 알고 쓰기 시작하면서 함께 책도 냈지만, 그 느낌이 오래가지 못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이제는 알량한 글솜씨가 나의 발목을 잡았다. 내 글에 대한 자아반성이 지나쳐 어느새 새롭게 입은 겉옷이 다시 어색해졌다. 그리고 알았다. 아직도 더 벗겨내어야 할 내 안의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난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이었다. 순응된 직장 생활만큼 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쩌다 결혼이 늦어졌고, 어렵게 아이도 생겼다. 이제 행복만 있을 줄 알았는데 아이로 인한 부부간의 갈등이 심해졌다.
그때 달리던 차 안에서 서럽게 울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도 딸이 고열로 인해 밤을 꼬박 새운 날이었다. 남편은 밤새도록 왜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이 지경이 되었는지 나를 채근했다. 사실 이런 상황이 자주 생기다 보니 내 삶도 많이 지쳐 있었다. 눈에 핏줄이 생기고 내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을 때 내 앞을 빠르게 지나가는 차 때문인지 운전대를 잡은 채 분노에 차서 던진 말은 개 xx였다.
살면서 내가 던진 말에 내가 그렇게 무너진 날은 처음이었다. 나이 40이 넘도록 누군가에게 욕 한번 무심히 던진 적이 없었다. 이렇게 변한 내 모습에 꺼억거리며 서럽게 울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난 조금씩 숨통이 트였다. 그동안 터질 것만 같았던 머리가 풍선이 바람 빠지듯 피식피식 소리가 났다.
이제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나는 간혹 들릴 듯 말 듯 남편의 찐한 잔소리에 슬쩍 욕 한마디를 흘린다. 죄책감을 덜 느끼며….
자신은 소리를 질러도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 이상한 소리는 듣기 싫었나 보다. “당신, 지금 뭐라 그랬어?”남편은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내 마음속에는 형용 색깔의 다양한 마음의 색깔들이 꿈틀거린다. 사랑, 우정, 눈물, 슬픔, 답답함, 단단함 등 내가 발견하지 못한 조각들이 여전히 춤추고 있다. 그동안 내 모습이 각졌다면 좀 더 유연한 구름조각이 되어 하늘을 떠다니고 싶다.
글쓰기는 이런 나의 마음의 색깔을 찾아내 줄 것이다. 또한 나의 지팡이가 되어줄 것이다. 지팡이는 내 몸이 흔들릴 때마다 나를 붙잡아 줄 것이다. 좀 더 쉽게 내려갈 수 있도록.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라는 데미안의 글이 이번 글쓰기 수업에서 내가 온몸으로 받아들일 과제가 될 것이다. 변화하려는 도전은 늘 두렵고 떨리지만 또한 싱그럽다. 도망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