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실린 그림들은 실제 사진이 아니라, 스케치로 표현된 것들이 많다. 왜 저자는 이런 방식을 선택했을까? 아마도 이 책이 단순한 명화 소개서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먼저 세상을 떠난 형의 영향이 컸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방황하던 그는, 이 미술관에서 일하며 마음의 공허함을 채워나갔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영향으로 미술을 가까이했던 경험, 형과의 특별한 우정… 그 모든 것이 쌓여 이 멋진 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책에서 소개된 명화를 하나씩 찾아보았다. 작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그림 속에는 이야기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예술가들은 사라져 가는 순간을 붙잡아, 시간이 멈춘 듯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시대를 넘어서는 아름다움, 진실, 장엄함, 슬픔, 기쁨을 느낀다.
그들이 남긴 기록들은 유화의 붓 터치로, 대리석의 조각으로, 퀼트의 바느질로 새겨져, 그 숨결과 의미를 우리에게 전한다.
때로는 그림이 너무도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안에서 깨닫게 된다. 우리는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고통 속에서도 용기는 아름답다는 것. 상실은 사랑과 그리움을 더욱 깊게 만든다는 것.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삶은 결코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작가 소개]
[목차]
[기억에 남는 문장]
많은 경우 위대한 예술품은 뻔한 사실을 우리에게 되새기게 하려는 듯하다. '이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하는 게 전부다. 나도 지금 이 순간에는 고통이 주는 실제적 두려움을 다디의 위대한 작품만큼이나 뚜렷하게 이해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내 그 사실을 잊고 만다. 점점 그 명확함을 잃어가는 것이다. 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보듯 우리는 그 현실을 다시 직면해야 한다.(62쪽)
비둘기가 구구거렸고, 세상은 빠르게 흘러갔다. 나와는 별개로, 담배를 피우는 몇 분 동안만큼은 나는 허클베리 핀이었다. 세상의 쳇바퀴에서 빠져나와 내가 가늠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넓고, 더 깊고, 내 의견 따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강을 지긋이 바라보는 허클베리 핀. 그러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는 걸 느꼈다.(120쪽)
만약 무언가가 웃기는지 알고 싶다면 그것이 우리를 웃게 만드는지 확인하면 된다. 어떤 그림이 아름다운지 알고 싶다면 그림을 바라볼 때 우리 안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면 된다. 웃음만큼 확실하지만 대부분은 좀 더 조용하고 주춤거리며 나오는 반응일 것이다.(146쪽)
'사랑에 빠진 사람' 유형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예술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뉴요커>에 큰 호평이 실린 전시회를 보기 위해 다른 도시에서부터 여행을 온 조용하게 몰입하고 있는 듯한 유형이다. 표정은 많이 변하지 않지만, 그녀의 마음은 토끼들 사이의 거북이처럼 전시실을 천천히 누비는 동안 격렬한 물결을 일으킨다.(182~183쪽)
그들은 어리고, 늙고, 청춘이고, 시들어가고, 모든 면에서 실존한다. 나는 눈을 관찰 도구로 삼기 위해 부릅뜬다. 눈이 연필이고 마음은 공책이다. 이런 일에 그다지 능숙하지 않다는 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198쪽)
나는 우물처럼 샘솟는 연민의 마음으로 동승자들을 둘러본다. 평범한 날이면 낯선 사람들을 힐끗 보며 그들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들이 나만큼이나 실존적이고 승리하고 또 고통받았으며 나처럼 힘들고 풍요롭고 짧은 살에 몰두해 있다는 사실을.(중략)
오늘 밤은 운이 좋다. 낯선 사람들의 피곤하거나 어떤 생각에 빠져 있는 얼굴들을 애정을 갖고 바라볼 수 있다.(199쪽)
그는 그 광활하게 펼쳐진 세상의 맨 앞자리를 이 성스러운 오합지졸들에게 내주었다. 가끔 나는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215쪽)
최고의 대화 요령은 질문, 그중에서도 기나긴 대답이 필요한 열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기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도록 만드는 건 아주 만족스러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받으면 처음에는 놀라지만 일단 대답하기 싫어하면 할 말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237쪽)
일상의 리듬은 다시 찾아왔고 그것은 꽤나 유혹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가 영원히 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만들어지는 운율을 깨닫는 것은 내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를 깨닫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삶에서 마주할 대부분의 커다란 도전들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도전들과 다르지 않다.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들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251쪽)
태양이 빛나고, 고층 아파트들이 은은한 빛을 발하고, 두왑 가수들이 동전을 모을 모자를 돌리고, 샛노란 옐로캡 택시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서 민들레를 문지른 자국처럼 보일 때면 5번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252쪽)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재킷 주머니에서 작은 공책을 하나 꺼내 들고 머리에 떠오르는 포부들을 몇 개의 문장으로 적는다. 과거에는 대부분 수동적인 태도로 메트와 메크의 소장품들을 일종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관찰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을 흡수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그러는 대신 예술과 씨름하고, 나의 다양한 측면을 모두 동원해서 그 예술이 던지는 질문에 부딪쳐보면 어떨까?(253쪽)
예술을 경험하기 위해 사고하는 두뇌를 잠시 멈춰뒀다면 다시 두뇌의 스위치를 켜고 자아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254쪽)
이븐 아라비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매우 다른 시각이 있다. 첫 번째는 현실을 인식하도록 세밀하게 조정된 의식의 일부로서 마음 한가운데 자리한 인지 능력이다. 이 거칠 것 없는 능력은 우리가 세상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깨달아 진실이 노골적이고 가깝게 느껴지도록 한다.(288쪽)
혼자 생각에 잠긴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처럼 세계적으로 장대한 곳에서 얻는 깨달음치고는 좀 우습긴 하지만, 바로 의미라는 것은 늘 지역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교훈까지 말이다. (396쪽)
다시 찾게 될 때 나는 방문객일 것이고, 여덟 시간에서 열두 시간 동안 한 곳에서 서성거리는 대신 언제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음 전시실로 옮겨갈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412쪽)
빈센트의 <붓꽃>을 보고 있자면 가난과 자신을 괴롭히는 상념들에서 벗어나 그 생기 넘치는 단순함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화가의 염원이 느껴진다. 그러나 몸을 돌려 우리 앞에 놓인 것을 직면해야 하는 시간은 오고야 만다. 빈센트의 이야기가 슬픈 것은 그가 삶을 살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보다 운이 좋다는 사실에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감사하다. 내 이야기는 행복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413쪽)
앞으로 나아가는 데 시금석이 되어줄 작품들. 옛 거장 전시관에서 내가 제일 필요로 하는 그림은 15세기 이탈리아 수사 프라 안젤리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라는 결론을 내린다. (중략) 옛 기독교 예술품과 거기에 깃든 빛을 발할 정도로 선명한 슬픔이 좋다. 너무도 고통스럽지만 이 그림이 톰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예수의 몸은 태풍에 요동치는 배의 돛대에 못 박힌 것처럼 보인다. 그를 중심으로 나머지 세상이 흔들리며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우아하면서도 부서진 몸은 뻔한 사실을 다시 상기시킨다.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 고통 속의 용기는 아름답다는 것, 상실은 사랑과 탄식을 자극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림의 이런 부분은 성스러운 기능을 수행해서 우리가 이미 밀접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불가해한 것에 가닿게 해 준다.(416~418쪽)
W.H.오든의 시「뮤제 데 보자르(미술관)」에도 나와 있듯 "끔찍한 순교"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창문을 열고, 별생각 없이 그 옆을 걸어간다." 나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가운데 부분이 혼란스러운 일상생활을 제대로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중략) 수동적인 구경꾼들과 달리 그들의 마음은 같은 방향, 즉 선행으로 향하고 있다. 그림의 이 마지막 부분은 따르고 싶은 모범이다. 내 앞의 펼쳐진 삶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필요한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419쪽)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다른 이들도 나를 위해 그렇게 해줄 것이라는 게 나의 희망이다.(중략) 이 그림이라면 확실히 내가 메트 바깥으로 품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420쪽)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모나리자>는 세상에 한 점밖에 없을지 모르지만 어디를 가나 바라볼 가치가 있는 얼굴들은 많이 있다. (422쪽)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와 다름없이 오류투성이인 다른 인간들이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메트입니다. 여러분은 예술이 제기하는 가장 거대한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피력할 자격이 있습니다.(4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