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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 May 05. 2024

고향집 근처에 버거*이 생겼다

매우 유감스러운 부분에 대해

어쩌다 백수가 되었고, 5월이기도 하고 해서 고향집에 왔다. 한 일주일 머물다 돌아갈 생각이다. 어머니와 외출할 일이 있어서 평소 잘 다니지 않는 길 쪽으로 지나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새로 생긴 가게들이 보였다. 그중 버거*이 눈에 띄었다.


원래 샤브샤브로 유명한 프랜차이즈가 있던 곳이다. 꽤 큰 단층 단독 주택에 큰 주차장도 달러 있다. 그 규모는 그대로 햄버거 프랜차이즈가 생긴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아마 근처에 오래된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 빌라 등이 있던 곳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수요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 같다.




이 동네의 햄버거 프랜차이즈의 역사는 꽤 길다. 프라이드 치킨으로 유명한 K**는 그 상가 건물이 오피스텔 건물로 바뀌면서 없어졌다. 그곳은 내가 그 알파벳을 읽을 줄 모를 때부터, 고향을 떠날 때까지도 계속 있었다. 콘 아이스크림이 300원하던 시절 맥도**가 잠깐 있었다. 한 유명 여배우가 광고를 찍으면서 500원으로 오를 때까지는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근래에 맘스**도 생겨 성업 중이다.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은 롯*리*이다. K**과 역사를 거의 함께하다가 혼자 살아남았다. 아주 어릴 때 그곳에서 파는 피자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아빠가 사주셨던 것인데 정작 나는 맛을 몰라 먹지 못하고 친척들이 거의 다 먹었다. 스무 살에 되었을 때 잠깐 아르바이트도 했던 곳이다.


이 동네에 버거*은 처음이다. 사실 내가 태어난 이 도시에 버거*이 흔해진 것이 오랜 일은 아닌 것으로 안다. 10여년 전 적어도 내가 그곳에 살 때까지는 흔히 볼 수는 없었다. 내가 자주 다니는 동선 안에서는 딱 두 개의 지점이 있었다. 시골이라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제 2의 도시라고 하는 부산이니까. 그래서 동네에 생긴 버거*에 약간 흥분이 되었다. 요즘 입맛이 없다는 부모님에게 새로운 맛을 소개해볼까, 생각했다. 별로 몸에 좋은 음식은 아니지만, 가끔 먹는 것이 입맛의 활력이 될 테니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주말 나는 우산을 쓰고 버거*으로 향했다. 손님이 듬성듬성 자리한 홀에서 머리가 희끗한 여성과 맞은 편에 젊은 남자가 마주 앉아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모자 관계로 보였다. 이 동네에 생긴 버거*을 보고 나와 같이 생각한 사람이 혼자는 아닌 것 같았다. 키오스크로 향하는데 옆 키오스트에서 주문 중이던 다른 젊은 남자에게 달려와 "엄마, 아빠는 콜라는 안 마신다."라고 말하는 여성이 보였다. 머리는 희끗하지 않으나 60대쯤 되어보였다. 역시 가족이 온 것 같았다.


나는 키오스크에서 익숙하게 주문을 마치고 자연스레 매장 안을 살펴보았다. 주방에 비해 좁은 홀. 생각보다 좌석은 많지 않았다. 사람을 대면하고 주문할 수 있는 계산대는 단 두 군데였다. 그나마 한 군데는 플랫폼 배달원들을 상대하기 위한 곳인듯 했다. 그곳을 제외하면 주문은 벽 쪽으로 늘어서 키오스트 서너개가 담당했다. 그러고 보면 키오스크 이외에 메뉴판도 없었다. 내 어머니 또래의 여성 세 분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들어와 키오스크 앞에서 서성이더니, 내부를 둘러보았다.

 "물어봐야겠네."

여성 분들은 계산대 앞으로 갔다. 키오스크를 통해서 들어온 주문서에 맞추어 음식을 내던 알바생에게 다가가 물었다.

 "커피는 어떤 게 있어요?"

 "저희는 아메리카노밖에 없어요."

알바생은 간명하게 답했다. 판매하는 커피의 종류를 알기 위해선 키오스크를 사용하거나, 알바생에게 물어야 한다. 키오스크가 낯선 세대에겐 주문부터가 장벽인 공간이 고향집 근처에 새로 생긴 버거*이다.





오래 전 롯*리*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고향집 근처였는지 다른 곳이었는지 정확하진 않다. 아마 혼자서 밥 먹을 일이 있어서 들렀을 것이다. 당시엔 키오스크가 없었지만, 카운터의 직원에게 직접 주문하고 직접 음식을 받아오는 시스템이었다. 주문한 음식을 한참 동안 먹고 있는데, 노인 남성 두 분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익숙한 듯 카운터로 가더니 자신들이 먹을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다음 단계라면 으레 카운터에서 주문하신 무엇과 무엇이 나왔습니다, 라고 알리면 그들이 가서 찾아오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이윽고 그들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그런데 주문 받은 직원보다 나이가 조금 있는, 유니폼으로 보아서는 매니저이거나 점장으로 보이는 노인 남성분들이 주문한 음식을 서빙해주는 것이 아닌가! 친척 어른이거나 최소한 지인일까 싶어서 유심히 보았는데, 그런 같지는 않았다. 이후로도 가끔씩 패스트푸드점에서 그런 광경을 보았다. 아마도 차마 부모님뻘의 어르신을 불러 음식을 가져가라 없는 동방예의지국의 풍습 때문일 것이다. 당시의 어린 내겐 그저 불공평으로 보였다. 그건 예의의 문제라기 보다 돈을 지불한 만큼의 서비스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키오스크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다르다. 사실 30대 후반인 나또한 낯선 키오스크를 마주할 때 버벅거린다. 원하는 메뉴를 찾기 위해서 카테고리 전부를 확인하고 그래도 찾지 못하면 이런저런 버튼을 물러 확인하기 바쁘다. 얼리어답터와는 거리가 멀지만 초등학생 때 도스가 있던 시절부터 컴퓨터를 했고, 당연히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이다. 이런 우리 세대도 가끔 버벅거리는데, 젊은 시절 컴퓨터로 업무를 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세대, 그래서 스마트폰에 메신저앱과 카메라앱, 더 능숙하다면 지도앱 정도를 다루는 세대는 오죽할까.


사람의 편리를 위해서 개발된 기술이 오히려 사람을 배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고향 동네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고는 하나, 전통적으로 노령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뭐 물론 통계를 확인한 적은 없다. 그냥 체감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그곳에 생긴 버거*이 노인들에게 불친절하다는 점이 의아하다는 것이다.


하긴 이 동네뿐이 아닐 것 같기도 하다. 노령 인구가 늘어난다는 사실이 이곳만의 특이점이 아니니까. 노인을 대상으로 장사를 접은 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기계를 쓰지 않아도 한눈에 있는 메뉴판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메뉴를 정하고 사람이 응대하는 몇 안되는 카운터에서 기다려서 주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하기엔, 세상이 너무 한순간에 변했다.





아마도 고향 동네에 새로 생긴 버거*은 우리 부모님의 입맛의 활력이 될 편안한 장소가 되진 못할 것 같다.




이미지 출처 :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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