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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 Apr 09. 2023

작별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한강 장편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리뷰


2023년 4월 3일. 4.3 희생자 추념일을 맞이한 제주 4.3사건 추념식이 있었다. 4.3봉기를 기점으로 해도 1948년, 그로부터 75년의 시간이 지났다. 많은 사람들의 용기와 노력 끝에 이젠 누구나 제주 4.3사건이 국가가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사건이라는 상식을 갖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좋지 않은 프레임을 씌우려는 움직임에, 대통령의 성의 없는 돌려막기식 추념사까지. 2023년 기나긴 4.3의 역사에 좋지 못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4월이 되면 어김없이 희생된 이들이 떠오른다. 얼어붙었던 것들이 녹고 꽃이 피어나는 시간이지만, 들뜨는 한편 차분히 가라앉는 마음을 어쩔수가 없다. 무엇으로 또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까, 혼자생각하다가 몇달전 읽은 이 소설의 리뷰를 써보기로 했다. 사실 읽고나서 엄두가 안나서 쓰지 못했던 리뷰다. 읽은지 한달 조금 넘게 지난 후라 다시 인상만 남아 있는 상태이지만, 그 인상 그대로의 리뷰를 쓰고자 한다. 매우 추상적인 리뷰임을 양해 바란다.


현실의 제주, 

48년 제주의 

완벽한 메타포가 되다


주인공은 다친 인선을 대신해서 새의 먹이를 주기 위해 제주로 갔다. 그러다 사고를 당해 눈 덮힌 제주 중산간을 헤매게 되고, 인선의 작업실에 고립된다. 새는 이미 죽었고, 휴대폰도 잃어 버렸다. 그곳에서 그녀는 완전히 고립된 채로 시간을 보낸다. 그녀는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제주의 시간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이 작품은 단순히 역사를 다룬 흔한 소설과는 결이 다르다. 처음엔 그저 자꾸 제주가 언급된다 싶다가, 마침내 무수한 상징들이 등장한다. 눈 덮힌 중산간의 제주, 피, 죽은 새의 영혼, 죽은 사람... 그것들이 완벽한 메타포가 되어서 제주 4.3의 시간과 오버랩된다. 중간중간 서술되는 제주 4.3사건에 관한 직접적 장면이나 역사적 사실 등이 현실과 과거의 간극을 메운다.


사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오랫동안 작가가 되기 위해서 글을 써왔다. 지금은 관두었지만. 거의 마지막 즈음 유일하게 인정 받고 그나마 내 이름 뒤에 작가라는 호칭을 붙여준 습작이 있다. 그 습작의 가장 첫번째 모티브가 제주 4.3사건이었다. 그러나 4.3이라는 방대한 사건을 내 작품이 잘 표현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해왔다. 내가 작가로서의 삶을 포기하기 직전까지도 그랬다.





"제가 잘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 신인이라... 그래도 계약이 되면 다른 기성작가들이 각색을 하니까요."


4.3사건에 관해서 서면 인터뷰를 해주셨던 분을 차후에 찾아뵈었을 때 내가 했던 말이다. 그분은 내 이야길 찬찬히 듣다가 혹시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냐고 물으셨다. 읽지 못했다고 했더니,  "한번 읽어봐요. 도움이 될 것 같네"라고 하셨다. 돌아오는길에 검색해보니 대번에 제주4.3을 다룬 소설이구나 했다.


처음엔 4.3의 역사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만를 중점으로 보았다. 그래서 4.3과 직접 관련된 것이 제대로 언급되지 않는 부분이 의아했다. 그러나 읽을수록 내가 하려는 말하기 방식을 쓰고 있지만 훨씬 탁월하다고 느꼈다. 현실의 제주가 과거의 메타포가 되는 방식을 쓰려고 시도한 것 또한 그랬다. 물론 장르의 차이 때문에 벌어진 부분이 크고 이야기의 톤과 스토리는 전혀 다르지만 비슷한 발상임에도 차원이 다른 수준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씁쓸했다.



<작별하지 않는다>가 현재 시점의 이야기라고 해서 과거의 사건을 허투루 쓴 것도 아니다. 한강 작가와 거의 같은 자료를 보았던 내 입장에선 늘 미궁이었던 어떤 이미지가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하면 거기까지 뚫고 들어갈 수 있을까?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은 다른 독자들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일 것이다. 이 짙은 열등감과 좌절감.




                                       불길이 번졌던 자리에 앉아 있구나, 나는 생각한다.

                                         들보가 무너지고 재가 솟구치던 자리에 앉아있다. 

                                                                                               - p244



시간이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제주 4.3의 상처


제주 4.3을 겪지는 않았지만 사건과 무관하게 살 수 없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인선이다. 가족과의 갈등 원인이 4.3이었고, 그녀가 이 사건을 파고드는 계기 또한 그것이었다. 그녀의 삶에 겪은 적도 없는 4.3의 시간이 모양을 달리해 깊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현실에서도 그럴지 모른다. 가족의 역사를 스치고 간 어떤 사건이 긴 시간 대물림되는 삶. 나의 외로움은 어머니의 결핍 때문이고 어머니의 결핍은 할머니의 상처 때문인 그런 시간. 너무나 신빙성이 있는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의 인선의 존재가 4.3을 깊이 증명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4.3사건을 알고나면 제주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거의 모든 곳이 4.3의 역사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감탄하다가도 언젠가 보았던 기록 사진과 그곳의 풍경이 오버랩된다. 여기서도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었을까? 여기서 또 어떤 억울한 죽음과 원통한 이별이 있었을까?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미군정기에 발생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여에 걸쳐 지속된,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출처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제주 4.3사건은 7년여의 시간동안 진행되었다. 그 시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당시 제주 도민들의 삶이 어떠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물론 모두가 목숨의 위협을 당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분명히 아는 상태로 공포속에 살아가는 삶이 그저 멀쩡하기만 했을까? 누군가는 영문도 모른 채 죽고, 끌려갔다. 그러다 다시 돌아온 불타 사라져버린 삶의 터전에서, 절망에 빠지지 않고 끝까지 살아낸 이들의 마음엔 어떤 것이 있었을까? 



그때 그곳에 없었다면 어느 누구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러니 함부로 모욕하지 말길 바란다. 그것이 희생자들과 그 시간을 버텨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우리들의 예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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