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랜 Feb 07. 2024

괴물

1029참사를 기억하는 법_20240131

조카가 태어나고서 난생 처음 경험했던 감정이 있다. 이 녀석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 수도 있겠구나. 조그맣게 태어나 세상의 빛을 보며 꼬물꼬물 움직이는 그 작은 생명을 보며 나는 그런 감정을 느꼈다. 커나가는 조카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 감정이 절로 되새겨졌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영화가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다.


"괴물에게 잡혀간 소녀를 구하려는 할아버지, 아버지, 고모, 삼촌의 분투기"


사실 20대 초반 극장에서 처음 볼 당시에는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당시 워낙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보도들이 많았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이가 들어 고모가 되고 보니 조카를 구하려는 그들의 마음이 더 잘 알 것도 같았다.


최근 영화를 다시 보았다. 정말 몰입했던 것 같다. 영화 중반 이후부터 나는 눈물 범벅이었다. (눈물은 아마 맥주를 마셔서인지도)


그러다 문득 서울 한복판 거리에서 자식을 잃은 분들이 떠올랐다.

한강에 괴물이 나타난 것도 아닌데, 거리에서 죽은 이들 또한 떠올랐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26355.html?utm_source=copy&utm_medium=copy&utm_campaign=btn_share&utm_content=20240131


얼마 전 이태원 참가 유가족이 오체투지를 이어가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 대통령실이 거부권을 사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벌어진 투쟁이다. 그들은 이태원 특별법 공포를 촉구한다고 했다. 기사를 열어서 찬찬히 읽어 보았다. 추운 겨울 맨바닥에 엎드린 사진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서늘한 기운이 뼛속까지 밀려드는 듯했다.


희생자 김현수씨 어머니 김화숙(63)씨는 “아이들이 살려달라고 96번 신고했는데 11번으로 조작했다. 그렇게 살려달라고 외쳤을 때 국가는 어디 있었느냐”며 “삭발하고 오체투지를 하는 게 마치 보상이나 지원책 때문인 것처럼 말하는 게 너무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유씨도 “유가족들을 한 번만 만나보면 거부권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언론 플레이만 하는 게 너무 힘들고 분노스럽다”고 했다.(출처 : 한겨레)


보상과 지원책. 또 똑같은 프레임. 세월호 이후 사회가 나아지지 않았음을 다시 실감했다. 이태원 참사 났던 당시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수 있는 것을 하리라던 다짐도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책했다.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원책 같은 것을 발표했다고 한다.

국가는 유가족을 돈으로 모욕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특별법 재정에 관하여 “자칫 명분도 실익도 없이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의 분열과 불신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라고 했다고 한다. 

국가는 유가족을, 희생자들을 세치 혀로... 모욕했다.


해마다 있어왔던 행사였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날은 늘 있었던 조치들이 없었다. 국가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는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충분히 소명되었는가?


희생 이후 여러가지 조치에도 의문점은 남아 있다.  의문점에 대한 답을 했는가? 무엇보다 모든 것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태원 참사 책임자 처벌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았다.

'참사 9개월 책임자 처벌 0명'

불과 몇달 전 기사다. 그 사이 얼마나 진행되었을까.

기사의 내용을 차분히 읽어보면 기대감이 사라진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01599.html?utm_source=copy&utm_medium=copy&utm_campaign=btn_share&utm_content=20240207


이런 현실이다.





영화 <괴물>에서 괴물에게 잡혀간 소녀 현서의 아버지 강두는 마침내 자신의 딸을 찾게 되었다. 괴물의 아가리에서 삐져나온 현서의 손을 알아본 그는 그것을 잡아당겨 딸의 주검을 마주했다. 죽은 조카를 삼촌은 괴물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고, 고모는 불화살을 쏘았다. 마지막으로 괴물의 아가리에 철근을 박아 찔러 넣는 것은 강두였다. 불화살을 맞아 활활 타며 몸부림치는 괴물의 아가리에 마지막으로 가한 일격인 것이다. 이윽고 괴물은 비명을 질러댔다.


'이 시대의 괴물은 누구인가?'


2006년 개봉한 영화 <괴물>이 2024년의 시대를 향해 던지는 질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글쓰기를 멀리 밀어 놓아보았건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