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문을 열지 않은 식당 뒤편에서 개들이 도로를 가로질러 온다. 들개는 아니지만 정해진 주인도 없는 변두리 동네의 느긋한 주민들이다. 다가오는 방향을 살짝 피해 계속 걷는다. 정오가 되기 전 태국 북부의 겨울 햇빛이 부드럽고 따스하다. 몇 시간쯤 지나면 뜨겁게 달구어져 뾰족하게 온몸을 찔러댈 테다. 몇 주 전만 해도 한국에서 두툼한 패딩 파카로 몸을 감싼 채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걷고 있었다. 지금은 치앙마이 변두리 동네의 한산한 도로 갓길을 따라 아침 커피 한 잔을 찾아 느릿느릿 걸어가는 중이고 세상에서 중요한 일은 그것뿐이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에는 얇고 흰 커튼을 한쪽으로 묶은 가로로 긴 창이 있다. 그 앞에 앉으면 길가에 자란 무성한 풀과 스쿠터를 타고 오가는 동네 사람들이 보인다. 커피 맛은 그저 그렇다. 늦은 오후의 더위를 피해 책을 펼쳐 놓은 채 앉아있기 좋은 곳이다. 이곳을 지나쳐 길가의 큼직한 잭프루트 열매가 잘 익고 있는지 살펴보고, 아침 일찍 문을 연 약초 가게 주인과 눈인사를 나눈다. 다시 길을 건너면 ‘솔트앤라이트’ 카페가 있다. 매일 들르며 어딘지 친숙한 이름이라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기억해 냈다.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배운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라’는 말. 어떤 말은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을 거쳐 힘을 잃었다가 한참 먼 길을 돌아 새롭게 다가온다. 안으로 들어가 언제나 앉는 그 자리로 향한다. 잠시 후 가까운 고산 지대에서 자란 진하고 신선한 커피를 청록색 컵에 담아 온다. 점점 뜨거워지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커피를 마신다. 머릿속 안개가 걷히고 눈앞의 모든 것이 밝아진다. 여기서 몇 주 더 머물러도 좋지 않을까, 느긋하게 이 동네의 주민이 된 것처럼. 끝내 이란 비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지난여름에 시라즈 대학을 통해 이란으로 갈 학생 비자를 신청했던 게 문제였다. 겨울에 열릴 초급 페르시아어 과정을 한 달 반 정도 수강할 생각이었다. 식당에서 메뉴를 읽으면서 맛있는 음식을 주문하고, 터미널에서 복잡한 버스 시간표를 살펴본 후 표를 예매하고, 여행하다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감사를 표할 정도의 간단한 페르시아어와 숫자를 배우고 싶었다. 빠르면 한 달 늦어도 두 달 정도면 비자가 나올 테고 과정이 끝나면 이 주 정도 다른 도시를 여행하고 돌아갈 예정이었다. ‘잔, 젠데기, 아자디’ 시위가 일어나기 몇 주 전의 일이다. 2022년 9월 16일에 22살의 마흐사 지나 아미니가 이란 여성들에게 강제된 히잡을 ‘부적절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이란의 도덕 경찰에 연행되어 의문사했다. 이후 시위는 시작되어 대도시의 대학가에서 이란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잔(여성)’, ‘젠데기(생명)’, ‘아자디(자유)’라는 각각의 아름다운 단어는 서로를 감싸며 이어져 이란 사람들의 가슴에 불꽃을 일으키는 위험한 구호가 되었다.
아무래도 학생 비자가 나오기는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삼 년간 그리던 곳에 꼭 가고 싶었기에 나는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이란을 여행하기로 했다. 매번 함께했던 이란 여행사의 아나에게 이메일을 썼다. 외국인의 이란 입국이 현재 가능한지, 어디로 가는 게 모두에게 안전할지 물었다. 한국 외교부의 여행안전 지도에는 이란 대부분의 지역이 남아메리카, 북아프리카와 함께 여행자제 지역을 뜻하는 노란색이고 페르시아만과 파키스탄에 인접한 일부 지역은 출국권고 지역인 빨간색이다. 한참 의논한 끝에 이란의 남쪽 섬에서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삼 년 전 팬데믹으로 취소했던 여행의 출발점이다. 그곳에서 해안을 따라 동쪽 끝까지 가서 사막을 지나 테헤란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란의 국내 사정에 따라 경로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지난 몇 년간의 이란행을 세어보니 모두 다섯 번이다. 왜 그렇게 자주 갔는지 묻는다면 그때그때 생각나는 몇 가지를 꺼내서 답하거나 ‘그냥’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 마음이 언제 시작된 건지 잘 모르겠다. 사람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구조물로 둘러싸인 이스파한의 낙쉐자한 광장을 바라보며 벅차오르는 감동에 눈을 감았던 순간일까. 보름달이 뜬 자그로스 산에서 모닥불 앞에 앉아 유목민의 오래된 노래에 귀 기울이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겨울 방목지로 향하며 양을 몰고 가파른 산길을 나는 듯 뛰어다니던 유목민 소녀를 만났던 그때였거나, 멀리서 온 손님을 위해 그 자리에서 목을 잘라 피를 빼고 털을 뽑아 요리한 딱딱한 닭고기를 입에 넣고 심각하게 씹던 순간일 수도 있겠다. 진흙 벽돌에 쐐기문자가 새겨진 슈슈타르의 초가잔빌 지구라트에서 바스라진 오랜 시간의 질감에 사로잡혔던 짧은 순간일 수도 있다. 테헤란의 길거리에서 검은 차도르를 걷고 빵을 꺼내 건네주던 여자를 만났을 때, 아니면 현대미술관 앞에서 프리허그 캠페인을 하던 여학생과 마주 보며 웃던 그때였는지도 모른다.
치앙마이의 아침은 날마다 부드럽게 빛나며 느긋해지고, 방콕에서 테헤란으로 가기로 한 날은 일주일 전에 지났다. 이란 여행사에서 학생 비자와 중복되어 거부당한 관광 비자를 다시 받으려 애쓰는 중이다. 나는 숙소로 돌아가 지난여름의 비자 신청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보려 시라즈 대학의 담당자에게 매일 이메일을 쓴다. 이란의 유명한 시인 하페즈와 사디가 태어난 도시에서 페르시아어 과정의 담당자인 닥터 파라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친절한 답장을 꼬박꼬박 보내줬다. 여러 질문과 답이 치앙마이와 시라즈를 오가고 몇 달 전부터 진척 없는 학생 비자 신청을 취소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시인의 도시 시라즈에서 느긋한 사람들을 여럿 거치는 동안 그 약속은 어딘가에서 사라졌나 보다. 결국 여행사 대표가 테헤란의 비자 발급 담당자와 만나 전산망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학생 비자 신청을 취소해야 했다. 며칠 후 아나로부터 관광 비자가 새로 나왔다는 소식이 왔다.
테헤란에서부터는 다시 겨울이다. 출발이 한 주 정도 미뤄진 것에 맞춰 귀국 일정을 조정하고 치앙마이, 방콕, 테헤란을 잇는 비행기표를 급하게 구했다. 떠나기 전에 소금과 빛 카페에 들러 금방 볶은 커피 원두를 한 봉지 사서 겨울옷을 눌러 담은 가방 안에 밀어 넣었다. 따뜻하고 평온한 날들을 남겨두고 떠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