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도 사용 후기를 남길 수 있나요?
나는 테헤란로 어느 카페에 앉아 속눈썹을 길고 풍성하게 해 준다는 모 상품 광고에 빠져 한 달 사용 후기를 찾아보고 있었다. 요즘은 언박싱 순간에 대한 후기보다는 일정 기간 동안 사용해 본 '일주일 사용 후기' 같은 것이 더 유용하다. 그러던 중 문득, 일주일 전 퇴사한 내 옛 직장의 사용 후기를 남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사용 후기'라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개념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나는 회사에 다닌다는 행위를 회사라는 상품을 소비하는 것과 비슷하게 여겨왔는지도 모르겠다.
바삐 움직이던 엄지를 잠시 쉬게 두고 달력을 보니, 퇴사로부터 벌써 열흘이 지났다. 직장인의 '휴식'에 주말은 카운트하지 않는 법. 평일 오전과 오후를 내 마음대로 꾸미며 휴식을 취한 것이 오늘로 영업일 7일 차다. 그동안 무얼 했는지, 짧지 않았던 회사생활에 정확한 마침표를 찍어주긴 했는지 일순 돌이켜봤다. 앞으로도 일을 하며 직장인으로서 살아갈 테지만, 한 회사를 떠나고 또 다른 회사를 만나는 일련의 과정에는 늘 문단 띄우기가 필요하니까. 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머어엉하다. 그저 머어엉. 한창 업무를 할 적에는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무엇이 좋고 나빴는지 피드백하기 위해 프로젝트 리뷰를 진행하는 것이 당연했는데, '효율'과 '평가'라는 거대한 자본주의의 영역이 빠져나간 뒤 나의 몸뚱이에는 그 어떤 생각도 남지 않은 것만 같다. 이래선 좋을 것이 하나 없지. 나는 이례적으로 길게 잡아 둔 이 휴식기에 무언가 후기를 남겨야 한다는 목표의식을 느꼈다.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각자 숙고 끝에 골라 자의로, 혹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사용하는 커다란 패키지 상품, '직장'이라는 것의 사용 후기를.
지나간 시기를 아름답게 덧칠하고 향수를 느끼는 것은 인류의 종특이라 했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이게 나의 종특으로 인한 덧칠인지 자기 평가인지는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나는 중소기업에서 5년간 일하며 꽤 많은 개인적 성과를 냈다. 그리고 나의 성과물이 먼 미래에도 이 회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 그 확신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인수인계서를 작성할 정도였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 자의로 퇴사하는 것이지만 근무 마지막 주엔 왠지 모를 아쉬움에 사무실의 모든 구석구석에서 질척거렸다. 동료에게 질척거리고, 탕비실에서 미적거리고, 인수인계 시트에 요상한 메시지를 남기고, 사내 메신저에선 내 닉네임이 담긴 이모티콘을 뿌렸다.
나는 지금 조금 헛헛하고 심지어 우울하기도 하다. 이 무언지 모를 공허함은 아마도 힘들었던 회사 생활을 낭만화하려는 내면의 시도인지도 모른다. "정말 힘들었지, 그치만 꽤 잘 해쳐왔어."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조금 오글거린다.
하지만 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를 지탱하기 위해 나는 나의 어느 부분을 끊임없이 우상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시기는 열심히 일하다 어느 순간 점을 찍고 멈추기로 한 나의 결정을 보듬어줘야 할 시기니까. 이렇게 나의 5년은 조금 애달프면서도 한없이 낭만적인 직장인의 모습으로 점철되어간다.
어쩌면 기존의 '일'이 있던 자리에 무언가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내 방식대로 퇴사와 동시에 다른 곳으로 이직을 했다면 지금과는 많이 달랐으리라. 언젠가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하면 그때에서야 비로소 과거의 영광에 매달리고 싶은 충동은 많이 가라앉고 새 직장이 주는 새로운 자극을 껴안게 되겠지. 이 휴식기의 시작이 나는 조금 불안하다고 느낀다. 어쩌면 말 그대로 '일'이 주는 자극과 통증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잦은 야근과 스트레스는 건강을 많이 망쳐놓았다. 지금은 회복을 위해 매일매일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서 많은 위안을 얻고 있다. 나는 회사를 그리워할 때마다 가끔 생각한다. 그곳에서 나는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행복했지만, 내 몸과 마음은 삶을 살아냈다기보단 '버티기'를 한 것이 맞다는 것을. 지금 내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것은 조금 기묘하게 표현하자면 가해자를 사랑하게 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을 닮았다. 새벽까지 야근한 뒤 퇴근길에 찾아오는 이상한 하이텐션을 아는 이라면 공감하리라 믿는다.
이러니 정말 웃기는 노릇이다. 직장에 몸을 담는 것은 생존을 위한 일이며 자의로 이루어지지만 나는 직장 사용 후기를 남기겠다는 둥, 이를 선택에 의한 소비처럼 인지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그리움의 대상으로서 직장에 대해 낭만적인 인격화를 시도하지만 그 인격은 현실에서 내 신경줄을 잡고 폭력을 휘둘렀다. 문장으로 명료하게 정리할 수 없는 모순이 저 테헤란로 도처에 도사린다. 우산을 접고 걸어가는 회사원들, 바삐 움직이는 배민 라이더들, 카페의 점장들. 평생을 일해도 직장이란 것이 대체 내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어떤 후기를 남겨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조각조각 모으면 사혼의 구슬처럼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선 기록이라도 해두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머어엉한 머릿속에서 내린 답이다. 다들 열정적으로 휘몰아치던 하나의 시기가 지나면 약간의 여운이 남고, 조금 변했지만 평소와 비슷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안다. 사랑이건 미움이건 세상의 그 어떤 큰 이벤트도 이 과정을 건너뛰지 않는다.
평생을 일하며 살아가야 하는 내가 이 휴식기에 되찾아야 하는 일상은 무엇일까. 어쩌면 내가 박차고 나온 저 사무실이라는 장소에 내 일상이 있고, 이 시기의 나는 정말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어딘가에 있다. 그런 때면 나는 아주 잠시 머어엉해진다. 퇴근하는 길거리의 사람들을 쳐다보고, 이 순간에도 일하고 있을 동료와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들 중에는 직장에 몸을 담지 않은 이들도 많다. 세상엔 많은 일상이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하면서 마침내 머릿속이 평화로워지고, 아직 식지 않은 이 커피에 어울릴 와플이나 주문해야겠다는 생산적인 생각에 이른다.
조금 후면 여섯 시, 아직 여운에 젖어 있는 내 안의 무언가로부터 퇴근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