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타이밍으로 황금 같은 주말 부부의 시기를 보내게 된 자
조금 생뚱맞긴 하지만 나는 곧 신혼 4개월 차를 맞이한다. 그럼에도 하루하루의 생활에 신혼이라는 자각이 없었던 건 어쩌면 이 시대상이 반영된 증후군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약 4개월간 내가 혼자 살았던 자그마한 투룸에서 계속 혼자 살았고, 그중 2달은 회사를 다녔으며, 이후 2달간은 퇴직하고 몸을 쉬는 중이다.
다음 주면 임시이긴 하지만 남편과 합가를 앞두고 있다. 서른 중반을 맞이하는 2021년이 내겐 굉장한 역동의 해가 되는 셈이다. 나는 역경의 시기에 직장인으로 결혼을 준비했고, 식을 올렸고, 주말부부가 되었다가 애매한 백수의 시기를 지나 가정주부의 구간을 살짝 맛보았다. 정말이지 엄청난 일이다.
결혼이라는 게 그냥 우리끼리 하는 커플 이벤트가 아니다 보니 타이밍이 중요했다.
나는 긴 연애기간 동안 한 번도 연인을 부모님에게 소개해준 적이 없었다. 많은 여성들이 그렇다. 그러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사위될 자가 인사하러 왔을 때 처음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식을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게다. 만약 인사 후 상견례까지의 기간, 그리고 상견례로부터 예식까지의 기간이 마음대로 컨트롤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냐고? 응, 이제 거기서부터 머리가 아파진다. 너무 짧으면 졸속처리가 되고 너무 길면 김이 샌다. '김이 샌다'는 것은 단순히 시기를 놓친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넓게 보면 재정적 지원이 줄어들거나 정서적인 기대감이 떨어지는 등 실질적인 부작용을 대동한다.
예를 들어 나의 사례를 보자. 나는 코로나라는 사상 최악의 인재 지변을 앞두고 있었지만 여동생의 충고를 듣고 바로 정신을 차렸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거야, 언니."
때는 바야흐로 휴직 기간. 내 파트너가 직접 본가에 짐을 실어다 주어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모님과 인사하는 자리가 이미 만들어진 참이었다. 물론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시기에 식을 올리는 건 손해다. 하지만 이 타이밍에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지지부진 1년, 2년이 흘러가고 우리는 처음과 같은 설렘도 그 과정에서의 추진력도 잃게 될 것이 뻔했다.
이는 당사자들에게만 한정되는 얘기가 아니다. 시간이 계속 길어지면 양가 부모들은 준비 얘기만 몇 년간 하다가 종국에는 결혼을 '우리가 실제로 치러야 하는 행사' 아니라 '매번 하던 얘기' 쯤으로 인식하게 된다. 결혼은 사람이 살고 죽는 얘기도 아니고 밥줄도 아니다. 그 어떤 생활의 부산물처럼 이끌어 가야 하는 것, 그게 결혼이다. 때문에 출발선에 이미 섰다면 예정대로 출발하는 게 가장 순조롭게 일을 이끌어 가는 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코로나 시대의 다른 많은 커플들처럼 한 차례 식을 연기했다. 거의 3개월 가까이 연기되다 보니 본식 제외 모든 걸 준비해 놓은 상황에서 손 놓고 기다리는 셈이었다. 신혼 3개월 차의 하이라이트라는 웨딩 앨범이 본식 전에 이미 완성되어 나왔다. 청첩장은 바뀐 계절감 때문에 다시 찍어야 했다. 나와 내 연인은 마음속에서 무언가 꺾인 것 같았다. 설렘이 반으로 줄었다. 여기저기에 찍어놓은, 연기되기 이전 결혼식 날짜를 볼 때마다 기대가 식었다. 그런 걸 느낄 때마다 나는 그래도 식을 강행했던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검증받는 것만 같았다. 물론 그래도 당연히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이제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이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집을 구해 미리 함께 사는 데엔 이유가 있다는 걸. 물론 입주일이 딱 맞는 경우가 적기 때문도 있지만 단순히 그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함께 식을 올릴 사람이 있어야 준비할 때 편하다. 나는 주말에만 연인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평범한 주말 데이트 시간을 할애하며 준비해야 했다. 정말이지 피로도 높은 작업이었다.
게다가 그 이름도 엄청난 '전세난'이 온 수도권을 휩쓰는 중이었다. 나는 단순히 결혼을 해두고 집이야 나중에 천천히 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인이 뜻밖에도 다른 포인트를 지적했다. 바이러스에도 불구하고 예식을 치르는 이유가 공식적인 시작점을 찍기 위함인데, 식 이후에도 이전 생활과 하나 변함이 없고 따로 떨어져 산다면 그게 신혼이라는 생각이 들까? 글쎄,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중요하지. 부부라는 건 긴장감이나 애정이나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인데 혼인 중이라는 자각도 신혼이라는 버프도 없다면 결혼생활의 '처음'이 제대로 와닿지 않을 테니까. 음, 일리 있는 말이다. 마음가짐은 중요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집값은 우리로 하여금 주말부부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 두 달간, 내 일상은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메인 토픽이었다.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별 변화가 없었다는 뜻이다. 단지 양쪽 부모님들이 우리 둘의 연애에 간섭할 명분이 생겼다는 것만이 달랐다. 연애. 나는 결혼생활이 연애와 비슷하기를 늘 바랐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이건 뭐 결혼을 커플 이벤트쯤으로 격하시키는 것이 아닌가.
긍정적인 효과를 보기 시작한 것은 회사를 그만두면서부터였다. 나는 주중이라는 시간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주중에 이곳(남편과 함께 있는 곳)과 저곳(나만 있는 곳) 중 고를 수 있는 선택권 또한 얻었다.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신혼이라는 것이 드디어 피부에 와닿았다. 동시에 나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혼자 산다는 것의 기쁨' 또한 누릴 수 있었다. 정말이지 달디달다. 세상의 모든 신혼자들이 이 기쁨을 누려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싸움은 방지하고 즐거움만 취한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결혼생활 아닌가!
주말 부부 생활은 고속버스 속의 여정과도 비슷했다. 버스 안은 안락하고 바깥 풍경은 멋지다. 나는 다리를 움직일 필요가 없고 잠시간 이 이동 시간을 누리며 온갖 취미생활을 즐긴다. 음악을 듣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이동은 언젠가 끝날 것이고 나는 도착지에 짐을 이끌고 내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도착이 있기 때문에 이동이 있는 법. 그러나 나는 이 즐거웠던 시간이 휴양지를 향해 출발하는 여정이었는지, 혹은 휴양을 끝내고 돌아오는 것이었는지 아직 아리송하다. 이제 곧 시작할 결혼생활이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있기 때문일까.
결혼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누리는 임시 생활은 이렇게 단내를 풍기며 이제 끝이 났다.
내가 혼자 지내던 자취방은 비워졌고, 나는 짐을 싸들고 남편이 있는 거처에 임시로 들어왔다. 아직 신혼집으로 옮겨가지 못한 터라 공간은 좁고 동선이 사사건건 겹친다. 짐이 그득그득 들어차 수납장은 터져나간다. 게다가 이 몸은 현재 백수가 아니던가. 약간의 눈치와 게으름을 혼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충돌을 피할 방법이야 많겠지만 모든 걸 피할 수 있다면 이혼 법원이 존재하지도 않았을 터다.
코로나와 부동산 대란이라는 거대한 시류를 탄 나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내가 탄 것은 튜브일까, 혹은 이순신함일까. 왜 하필 내가 신혼기를 보내야 할 타이밍에 이렇게도 재해들은 터져주는 것일까. 아무리 적응되었다 해도 오늘도 역시 차오르는 원망을 대충 갈무리해본다.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