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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넬리몰리 Mar 04. 2023

기저질환자의 코로나 블루

사람들의 다양한 의학적 상태는 어쩌면 또 다른 계급이 아닐까

 일을 쉬었던 2021년 가을, 나는 이 코로나 시국에 마스크를 쓰고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 사이에 끼어 출퇴근을 하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출근하기 시작한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 그래도 일단 살아남았구나.’


 코로나가 시작되던 때에는 세상이 극적으로 바뀌는 줄만 알았다. 백신 미접종 직원을 파견처에서 받아들여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백신을 접종한 직원이 여러 일을 도맡고 있다던가 하는 이야기. 이미 오랫 동안 뒤로 밀려왔던 회식이 아예 취소되고 줌(zoom) 회식을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 저쪽 팀은 재택근무를 하던데 왜 우리 팀은 재택을 할 수 없냐는 불평. 화상회의를 할 때 왜 김 대리는 카메라 화면에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느냐는 불만. 코로나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직장 얘기였다.


 이런 변화는 내게 조금 더 개인적으로 다가왔다. 작년 초에 내가 새 회사에 출근했을 때, 나는 동료들에게 철저한 개인주의자 이미지였다. 왜? 백신을 안 맞아서 식당엘 함께 들어가지 못했으니까! 아직 공동체주의가 팽배한 우리나라 사무실 환경에서는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 꽤나 소소한 불이익을 초래한다. 때문에 내가 결국엔 코로나에 점령당하고(출근하자마자 걸렸다) 그 뒤에 식당 출입이 가능해지자 팀원들은 극 E인 나의 성격을 알고 놀랐다. 그들은 이전까지는 말 붙이기 힘든 분위기였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전까진 왜 백신을 맞지 않았느냐고.


 이 질문을 받으면 나는 주로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8할 정도는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이상한 눈초리가 싫어서이고 나머지 2할은 그저 하소연하고 싶어서였다. 그 시기 세상은 백신 접종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돌아갔다. 여행이나 모임 계획을 세울 때, 외근을 나가거나 업무 일정을 짤 때. "나는 미접종자라서 식당에 같이 못 들어가." 그런 말을 들으면 신기하다는 투로 되묻는 것이다. "왜 아직도 접종을 안 했어?"


 남들 다 하는 건데


 자가면역질환과 소염진통제(NSAIDs) 알러지를 갖고있는 나는 우리나라에서 살며 이런저런 서럽고 억울한 경험을 많이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인의 의학적 상태(medical condition)에 대한 존중이 많이 떨어진다. 삼겹살을 못 먹는다고 얘기하면 "에이, 안 먹어 버릇 해서 그래" 라고 격려하며 접시 위에 수북이 삼겹살을 놓아준다. 직원 중 한 사람에게 밀가루 알러지가 있어도 팀점심으로 피자 정도는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두통이 심하다고 하면 아무렇지 않게 본인이 쓰는 두통약을 준다. 여기에선 그걸 받아 든 사람도 문제다. 자신이 먹어본 적 있는 약인지, 부작용은 없을지 생각지도 않고 그냥 덥석 삼킨다.


 사실 저건 내 얘기다. 나는 대학생 때 후배가 무심코 건넨 아스피린을 처음 먹고 부작용을 겪었다. 이렇게 한 번 알러지가 발현하고 나니 이전엔 멀쩡하게 먹었던 타이레놀이나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감기약도 못 먹게 되었다. 나는 그 때의 아스피린을 잊지 못한다. 한 번쯤 내가 먹어도 되는 약인지 고민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 때의 트리거(trigger)가 없었더라면 나는 조금 더 안전한 방법으로 내 몸 속에 있던 알러지 인자를 먼저 발견하고 케어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내 증상이 '소염진통제 부작용'이라는 것을 찾아내기 전까지 약 10여년간 통증과 염증에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는 삶을 감내할 일도 없었으리라.


 내 부모님은 내게 약물에 대한 과민반응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여러 번 훈계를 했다. "평생 그런 특이 체질로 살 수는 없잖아. 자꾸 먹어봐야 몸이 적응을 하지." 그래서 눈이 붓고 열이 더 오를 것을 뻔히 짐작하면서도 감기에 걸리면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어보기도 했다. 남들 다 하는 건데 왜 못해? 너만 그렇게 몸이 예민해서 불편하게 어떻게 살래? 서른 중반쯤 되어서야 종합병원에서 이 증상이 소염진통제 부작용이라는 것, 그리고 이 세상에 이런 부작용을 겪는 사람이 꽤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조금 울었다. 내 빌어먹을 저주와도 같았던 증상들이 의학적으로 설명된다는 것을 알게 된 기쁨이었다.


 백신 맞으셔도 돼요


 "자가면역질환자들도 백신을 다들 맞나요?" 내가 물었을 때 담당 의사가 내게 해줬던 답변이다. 잔여 백신을 검색하던 그 즈음은 환절기였다. 나는 쌩쌩하다가 어느 하룻밤 사이 몸살같은 열을 얻곤 했다. 내 몸에는 아무 이유 없이 열이 자주 드나든다. 어쩌면 오래된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해 목에 염증이 생기고 열을 유발하는지도 모른다. 혹은 진짜로 내가 지닌 면역계 이상으로 인해 몸살 기운이  남들보다 더 오래 가는 것일수도 있다. 병원에 가도 의사가 열의 이유를 확실히 진단해주진 못한다. 사람들이 "열이 왜 나?"라고 물었을 때엔 대답할 거리가 궁색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직장 스트레스가 심하던 시절 위 경련을 겪으며 위 건강도 헐쭘해졌다. 감기에 걸리면 체하기 일쑤였다. 나는 급작스러운 열을 한 달 이상 미지근하게 앓으며 식욕도 잃었다. 흐릿한 시선으로 잔여 백신을 바라보다 문득 어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내 삶에선 대학생 때의 그 아스피린처럼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불길한 트리거로 보이는 때가 있다. 물론 내가 어디가 아플지 미리 예상하고 막진 못하지만, 어느 정도 예방하는 노하우를 익혔다. 조금이라도 피곤하면 만사 제쳐두고 쉬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과식하지 않는 것. 먹어보지 않은 음식과 건강 기능 식품, 경험해보지 않은 시술과 영양제는 되도록 피하는 것.


 2021년 여름, 대중 속에 포함될 수 없어 우울해하던 내게 의사는 백신을 맞아도 된다고 했다. 일단 의학적 소견으로는 백신을 맞아도 된다고, 그것이 지침이라고도 설명했다. "제가 맞아도 확실히 아무 일도 없겠죠?"라고 물으니 대답이 애매하게 돌아왔다. 확언해주지 않는 것도 지침인가 싶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나는 두려워졌다. 내 몸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면역질환을 앓기 시작한지 약 5년, 그간 내 건강은 착실하게도 내 의지를 배반하고 이전 30여년간 '나'로서 살아오며 축적했던 내 몸에 대한 예측을 모조리 빗겨갔다. 몇년간 쌓인 이 공포를 나는 도무지 극복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극복하고 싶지도 않다. 어느 정도는 이 두려움이 원동력이 되니까. 내가 먹고 싶은 것도, 놀고 싶은 것도 참으며 현재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약 이 주사가 또 다른 아스피린이 되어 내 미래를 고통스럽게 만들기라도 한다면, 나의 이 선택을 누가 보상해 줄 건가. 결국 백신을 선택하는 건 나 스스로인데 말이다.




 코로나 블루에서 해방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를 겪은 후였다. 한 차례 된통 앓고 난 후, 나는 비로소 대중 속에 평범한 한 사람이 될 자유를 얻었다. 식당에도 들어갈 수 있었고 전보다 거리낄 것이 없었다. 허나 코로나를 앓고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다시 깨닫건대 이 자유에는 대가가 있었다. 증명된 사실은 아니지만, 나는 그 이후에 폐 기능이 조금 약해진 걸 느낀다. 이전에 잘 하던 스트레칭 동작도 호흡이 달려 기침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것은 심리적인 후유증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 앞에 내던져진 이런 상황이 오면, 결국 내 몸에 공생하는 이 의학적 결손을 스스로 해명하고 이해시켜야만 한다는 것. 점점 미쳐 돌아가기 시작할 이 지구 환경에서 그 어떤 위급 상황이 발생한다면 나는 결코 다수의 그룹 속에 들어가지 못하며, 최초로 희생당하거나 사회적 관계망에서 낙오되는 무리에 속할 것이라는 점을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다. 마치 아포칼립스 드라마에서 1화에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할 엑스트라A 같은 느낌이랄까.


 카페 바깥을 걸어다니는 사람들, 카페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며 오늘날에서야 생각한다. 나는 그래도 어찌저찌 살아남았구나. 운이 좋았네. 나는 고통을 야기하는 내 몸뚱이의 결함을 스스로 컨트롤하고 있다고 믿었던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기저질환자가 겪은 코로나 블루는 어쩌면 한 번 알아버린 후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코로나가 아직 지나가지 않은, 많은 것이 희석되어 버린 오늘도 나는 아득바득 약을 챙기고 알러지를 확인하며 스스로를 챙기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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