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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넬리몰리 Aug 02. 2021

휴식기간의 목표 세우기

헐쭘할 수록 좋다


이번 주로 벌써 백수가 된 지 두 달 차가 된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지만 또 별일은 없었다. 사무실에 붙잡혀 있는 시간이 없어지면 평소에 하고 싶어도 못했던 것들을 할 것 같았는데, 놀랍게도 결과는 그 반대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더니 정말 그렇다. 어쩌면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엔 선택의 창구가 하나로 좁혀져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창구의 이름은 '주말' 혹은 '퇴근 후 시간'이다. 자유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보니 그 안에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일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선택 자체는 여러 번 이루어지지만, 그 창구는 늘 좁았다. 그런데 이제 여러 창구가 열리고 보니 나는 무얼 하고 싶은지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넓고 다양한 선택지 앞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내게 도움이  것이 하나 있다. 어찌 됐건 백수의 시간에도 한계가 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쉬는 사이에 이뤄두고 싶은 일이 3가지 있었다. 하나는 건강 관리, 둘째는 이사  환경정리, 셋째는 글쓰기였다. 구체적인 리스트도 여럿 세워봤지만  마지막까지 머릿속에 맴도는  막연하기만 했던  3가지였다.


 결국   달간 시간 관리에 절반 정도만 성공하고 나니 애초에 계획을 막연하게 세워야 효율적이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3가지에 필요한 것이 딱 맞춰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목표는 헐쭘하게 


1. 운동 규칙적으로 하기
2. 평일 아침에 등산하기
3. 요리하기
4. 이사하기
5. 신혼집 꾸미기
6. 위염 치료하기
7. 책 읽기
8. 브런치 시작하기
9. 소설 완결 내기
10. 스포츠 시작하기


 위의 목록은 퇴사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며 내가 적었던 리스트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리스트는 아래와 같이 바뀌었다.


1. 운동 규칙적으로 하기 > 필라테스 일단 결제! 일단 결제하고 !
2. 평일 아침에 등산하기 > 폭염기간 제외, 특별한 일이 없다면  1회로 노력하기
3. 요리하기 (x) : 이사하기 직전이라 집이 혼란스럽다!! // 다른 태스크에 비해 관심도와 흥미 현저히 으니 삭제
4. 이사하기 >  시기, 서울에서  의지대로 집을 구하는  어렵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임 // 하늘이 내리는대로 찾자
5. 신혼집 꾸미기 (x) : '오늘의 '  자주 들어가 원하는 스타일 스크랩하는 정도로 만족하자 // 4번이 완성되면 어떻게든 되겠지

6. 서울 운전 연습하기 > 오갈 때 되도록이면 차를 운전해보기 // 그러나 예감이 좋지 않은 날은 스킵한다!!

7. 책 읽기 (x) : 일단 처음 한 두 달은 놀아!

8. 브런치 시작하기 > 채널부터 열기 (complete), 일주일에 한 번 글쓰기

9. 스포츠 시작하기 > 뭘 하면 재미있을지 선택하기 (complete), 시작하기(on going)



 몇몇 태스크는 정말 현실적인 이유로 줄을 그었다. 아무리 하고 싶었던 일이라 해도 지금 당장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행동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과감히 투두 리스트에서 없애버린다. 게으른 탓이지만 그래도 뭐 어떤가? 시간이야 많은데. 이후에 리스트를 수정할 기회는 많다.


 이 리스트에서 시간을 정해놓고 운용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그렇게 했다. 최초에 필라테스를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막연히 '운동해야지'라는 생각으로 기웃거리다가 어쩌다 보니 수강권을 끊고, 옳지 이대로 가자 싶었던 것. 만약 내가 운동에 대한 계획을 세세하게 세웠더라면 이렇게 행동하기도 전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터다.


 등산도 마찬가지였다. 백수가 된 첫 달엔 일주일에 1회, 요일까지 정해놓고 등산을 했다. 한데 점점 정해진 요일을 의식하게 되고 당일 비라도 오면 낭패 섞인 심정이 되곤 했다. 지금은 잠들기 전, 다음 날의 날씨를 체크했을 때 해가 쨍쨍하다면 막연히 "내일 아침에 산에 갈까?" 생각한다. 물론 그러고 안 가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무언가를 계획해놓고서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다는 자괴감에서는 벗어났다.


 업무를 위한 리스트였다면 이런 태도는 정말 좋지 않다. 하지만 시간을 내 마음대로 운용하게 되고 나서야 생각한다. 본래 투두 리스트는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의 믹스 아니던가? 삶의 어느 구간에 직장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시기가 있다면, 적어도 나는 이 시기만큼은 한껏 여유로이 목표 설정을 즐기고 싶다.



1. 운동 규칙적으로 하기 : 필라테스나 등산이나 스포츠나 다 운동이지! // 하루 이틀 쉬어도 이어서 계속 하기

2. 이사하기 : 천지신명이시여...

3. 브런치 시작하기 : 주초마다 글쓰기 루틴 잡기



 평소 내 머릿속에 자리하는 휴식 기간의 목표는 결국 이렇게 더 작아졌다. 한데 그 외의 태스크들도 내 일상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어쩌면, 하나씩 성사된 목표들이 이제는 '일상'으로 자리하게 되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남아 있는 목표는 내가 '지금이 아니면 하기 어렵다'라고 인지한 것들이다. 마침 매일 시간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 지금, 이 휴식기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그런 목표.




 '목표'는 큰 단어다. 하지만 목표가 어떤 한 시기 전체를 커버해야 할 필요는 없다. 휴식기에는 휴식기에 걸맞은 목표가 있는 법. 나는 지금 이런저런 이유와 상황 속에서 줄어들고 작아진 내 투두 리스트를 보면 묘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우물쭈물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일단은 밀고 나가는 수밖에. 목표했던 세 달을 채우고 나면 또 나의 목표도 투두 리스트도 변해 있을 터다. 그때 또 나는 반쯤 남은 자신감, 반쯤 생겨난 망설임 속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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