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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넬리몰리 Aug 10. 2021

'업무 센스'에 대한 고찰

저는 이렇게 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어때요?

 현대인들은 쉬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을 못 견딘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퇴사 후 처음 2주간 느꼈던 그 박탈감, 기회를 잃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어느 땅과 바다에서나 일을 찾고 노동을 할 수 있었던 옛 사회와는 달리, 지금은 이 '쉬는 시간'이 일과 일 사이의 작은 콤마라는 것을 확신하기 어려워서다. 이후에 다음 업이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 내가 다시금 취업에 성공해 저 바쁘고 무정한 사회의 일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


 어떤 분야에서건 진정으로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이 그 일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어떤 한 업에 뛰어난 인재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나 험난한 이 시대에, 일과 그 사이의 쉬는 시간을 진정으로 즐기려면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나보다. 그렇기에 커리어 개발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한데 내가 중소기업에서 약 7여 년간 일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문지식과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이다.



 업무 센스의 유전자


 세상엔 본질적으로 일머리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다. 일머리, 그것은  업무 센스라고 한다. 이는 부장이  성질나 있는지 이유를 유추해낼  있는 눈치와, 그로부터 내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를 추론해내는 능력 등등을 버무린 종합적 생존능력을 말한다.


 30대에 들어서면서는 퇴사하는 친구들이 자신을 다독이는 모습을 많이 본다. "괜찮아, 세상에 회사는 많고 나는 어딜 가든 일은 잘할 거야." 그건 본질적으로 자신에게 업무 센스가 있다는 것을  직장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내가 일할 곳은 많다. 다만 해당 업종, 해당 사무실에서 특화되어 있는 것들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 그걸 확인하기 위해 여러 직장에 다녀봐야  필요도 없다. 아침에  부담 없이 사무실에 출근할  있는 상태가 되면, 그리고 조금씩 하루하루의 일과가 똑같아지고 더디게 느껴질 때쯤이면 더욱 확실해진다.


 업무 센스라는  업종별로 조금씩  모양이나 느낌이 다를 터다. 애초부터 '역량'이나 '능력' 아닌, '센스'라던가 '일머리' 같은 단어로 불린다는 점에서 굉장히 무형하고 주관적인 영역이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혼자서는 일하기 어려운 현대 사회에서  미신적인 역량은 점점 부피를 불려 왔고 지금은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사회 초년생이 커리어에 발을 디딜  가장 고전하는 전장도 전문지식보다는 이쪽이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이유는 스스로 업무 센스를 발전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 아닐까.


 혹자는 업무 센스란 선천적인 것이고 후천적으로 개발할  있는  한계가 있다 말한다. 나도 어느 정도 그에 동의한다. 업무 센스란 마치 운전 실력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어느 정도 운전을   있게  후에도 딱히 운전을 즐기진 않았는데, 이를 두고  동생은 내게 '언니한테는 드라이버의 DNA 없어"라고 했다. 나는 그게 어떤 것인지 단박에 이해했다. 이는 내가 '  있는 ' 다르다. 내가 교통 표지를 읽고 올바른 차선을 타는 것은 역량의 영역이지만, 운전 자체를 즐기거나 남들보다  효율적인 주행을 하는  센스의 영역이라고나 할까.


 업무 센스도 이와 마찬가지다. A라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은 A 관한 역량뿐일까? 일을 건네주는 사수와의 커뮤니케이션, 최종 결정권자의 취향에 대한 눈치, 산재한 많은 업무들 틈바구니에서 A 처리하기 위해 시간을 내고 집중하는 시간 관리 능력 등등.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많은 부수적인 능력이  업무의 처리과정에 동행한다. 그들 대부분이 내게 어떻게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를 법한 애매한 능력들이다.



 센스도 갈고닦을 수 있다!


 나는 팀원과 팀장을 거치면서 '3인분 딜레마'  오래 고민했다. 이는 중소기업에서 흔히 맞닥뜨리는 난제인데, 흔히들 ' 사람이 3인분을 해줘야 업무가 돌아가는 상황' 말한다. 그러려면 능력 좋은 팀원들과 협업한다 하더라도 굉장히 힘들다. 업무 하나하나에서 발휘되는 역량은 차치하고, 먼저 업무는 많은데 시간과 사람이라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본질적인 제약이 문제다. 사실 이는 '업무 센스'라는 영역이 가지고 있는 최대 봉착점이다. 어찌 됐건 시간(자원) 절약하면서 업무의 질을 높이는  개인 역량의 목표지점이니까.


 팀원들 가운데엔 이 이야기를 단번에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전혀 와닿지 않는다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다양한 팀원들과 이야기하다가 하나의 그래프를 만들 수 있었다.


넬리몰리가 주관적으로 생각한 '업무센스'의 그래프


 가장 근원적인 해결책은 역시 업무량을 줄이거나, 혹은 그에 상응하는 업무 시간을 확보하는 물리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는 대개의 사무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다. 때문에 나는 나의 업무 역량과 센스로 무장하고  무서운 그래프에서 우상향을 목표로 전진하게 된다. 물론 최종 목표는 적은 인풋과 최대 아웃풋,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센스가 발휘되는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시간 절약이다. 위의 그래프에 그려둔 내가 즐겨 쓰는 기술(!)들을 몇 개만 소개해 본다.


 '던지기'는 내가 지금 당장 이 태스크를 받지 않도록 다른 이에게 사전 업무를 맡기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는 "아, 여기 ***이 빠졌거나 빈약하네요. 조금 더 채워서 다시 주시겠어요?"라던가, 조금 더 심술궂게 나가자면 다른 이에게 내 업무를 적절한 이유와 함께 토스하는 것도 있다. 물론, 누울 자리를 보며 자리를 뻗는 센스가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당장 실제 시간이 줄어들진 않더라도 다른 우선순위 업무를 먼저 처리하고 이 업무를 이후에 받을 수 있다.


 함께 처리해야 내가 편한 업무들이 있다. 이는 내게 있는 많은 업무들 가운데 비슷한 것들을 그룹핑하여 함께 처리하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미 완료해둔 업무 내용이나 현재 진행 중인 태스크 중에서도 내 것과 그룹핑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는 센스를 뜻하기도 한다. 나는 업무 내용이 아니라 처리 형태에 따라 그룹핑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전혀 다른 두 프로젝트에서 무언가를 리서치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리서치 시간을 함께 잡아 그 두 개를 동시에 진행했다. 그룹핑의 가장 큰 장점은 업무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두면 나중에 비슷한 업무를 할 때마다 누적되어 편해진다는 것이다.


 업무의 질을 높이기 위한 센스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수완이 좋은 방법은 당연히 이 업무를 도와줄 자원, 즉 서포트를 끌어오는 것이다. 자원이 사람이건, 기존 정보건, 쪽집게건 말이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사수 혹은 선배가 되겠다. 하지만 남발해선 나의 역량이 의심받기 때문에 업무별로 어떤 것에 SOS를 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센스를 발휘해야 한다.


 흔히들 업무 센스라 말할 때 떠올리는 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 스킬인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능력이지만 이 또한 능력 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센스 반이 아닐까 싶다. '눈치'라는 것도 있고 말이다. 눈치야말로 내 마음대로 강화하고 말고 할 수가 없다. 노력해 본다면, 이 사무실에서 통용되는 용어들을 열심히 쫓아가는 것 정도일까. 훌륭한 소통 능력은 없던 시간도 만들고 있던 장애물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특히 대화 상대가 상사이거나 고객이라면 말해 뭐하나. 그리고 팀 내에서 의견이나 진척 상황을 공유할 때에도 이런 센스는 매우 중요해진다.


 의외로 또 중요한 것이 스트레스를 줄이는 나만의 루틴을 찾는 것이다. 나는 이 또한 개인의 업무 센스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과부하를 마주했을 때 다른 이들보다 내가 조금 더 고통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건 내 손해니까. 어떤 방법이건 업무로 인해 겪는 불편, 피로, 혹은 고통을 완화하고 견디는 방법이 필요하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활동은 별개의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센스는 '루틴'에 더 가깝다. 예를 들어 하루 종일 내 기분을 망칠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 고객과의 통화가 있다면 일과 중 마지막 순서로 진행한다거나, 혹은 미리 사수에게 "이 통화는 전쟁일 것이다"는 떡밥을 풀고 그에 대한 서포트를 받는다거나 하는 센스 말이다.





 나는 스스로 업무 센스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센스 또한 상대적인 것이니, 다음 사무실에서 내 센스가 어떤 식으로 먹혀 들어갈지 확신할 수 없다. 막연한 영역이다 보니 불안감 또한 막연하다.


 비록 센스 자체는 타고난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성장시킬 방법은 있을 터. 다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는 팀원들에게 자주 물어보고 다녔다. 시간 관리 어떻게 해요? 이럴 때 당신이라면 뭘 먼저 처리할 것 같아요? 아까 회의에서 이거 어떻게 한 번에 이해했어요? 같은 것들. 주변과 많은 대화를 하고 많은 것을 공유받기를 추천한다. 경험 또한 분명 센스에 일조하는 자원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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