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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청서 Aug 07. 2022

[크로아티아#3] 블루 라군의 악몽

좀비 떼가 몰려든다

블루 라군(Blue Lagoon) - 스플릿을 방문한다면, 추천 당일치기 보트 투어로 한 번쯤은 들어보는 곳이다. 옥빛으로 푸르게 빛나는 얕은 바다, 사진으로 보기만 해도 뛰어들고 싶은 바다.


우리가 배를 빌린 선주도 적극 추천하는 곳이어서, 우리의 마지막 날 일정은 자연스럽게 블루 라군으로 정해졌다. 마지막 세일링이니만큼 멋진 추억으로 끝내고 싶으니까.


이제는 닻을 내리는 데도 많이 익숙해져서, 블루 라군에 도착해 우리는 오래 지나지 않아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오후 2시 반 즈음 도착해, 약간의 수영 뒤 남은 재료로 토마토소스 파스타를 만들 계획까지 완벽했다. 


듣던 대로 얕은 바다는 밝은 푸른빛과 초록빛이 넘실대는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우리는 뱃머리에서 있는 힘껏 바다로 뛰어내렸다. 이렇게 우리는 블루 라군에서 그림과 같이 항해를 마무리할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저 멀리 무언가가 보였다.

아니, 사실 보이기보다 멀리서 반갑지 않은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뿜빠 뿜빠 쿵쿵


저 배에 저 많은 인원이 타는 게 과연 합법일까, 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항해 도중 먼발치에서 가끔 보았던

좀비 보트

무언가에 취한 무리가 엄청난 볼륨의 음악으로 소음공해를 끼치며 몸을 흔드는 파티 보트다.

좀비 떼가 따로 없다.

근데 왜 우리 쪽으로 오나.

안돼, 더 가까이 오지 마... 여기는 아니야....


.. 바로 옆으로 왔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너른 블루 라군에 딱 하나 떠 있던 주황색 부표가 있었는데, 우리는 웬 떡이냐며 얼른 부표에다 배를 묶었더랬다. 너무 좋은 뭔가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좀비 보트가 부표로 떡 하니 오더니 험상궂게 생긴 빡빡머리들이 우리 보트를 치우라며 소리 질렀다. 본인들 부표라고.


블루라군의 좀비 보트

동영상으로 보니 음악도 그다지 크게 들리지 않는데.. 조용한 바다에 저 좀비 보트 하나가 뜨면 온 만이 그냥 좀비 보트 세상이 되어 버린다.


아아아...

파스타를 막 만들어 조용하게 와인 한 잔과 함께 먹으려는 찰나 좀비 보트가 와버렸다.


하나로도 충분했는데, 5분이 채 지났나, 하나가 더 나타났다...

좀비 보트 추가요


옆에서 계속 귀를 틀어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우리는 수영으로 해변가로 가서 좀비 습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왠지 모르게 불안해서 중요 물품은 배 선실 안에 넣어놓고 문을 잠근 뒤, 우리는 해변으로 열심히 헤엄쳐 갔다.

해변에서 바라본 정중앙에 떠 있는 조그만 우리 돛단배. 왼쪽으로 좀비 보트 두 대.

해변에 도착해서 우리 돛단배 잘 있나, 돌아봤는데,

누군가가 우리 보트 위에 앉아있다. 두 명의 사내.

낯선 이들의(좀비들의) 침입을 목격하자마자 짝꿍은 바로 돛단배로 헤엄쳐 갔고, 수영이 느린 나는 짝꿍을 뒤따라갔다. 머릿속으로 퍼뜩 떠오른 생각은, 설마 우리에게 소리쳤던 험상궂은 빡빡머리들인가? 혹시 모를 소요사태에 마음 준비를 하고, 천천히 뒤따라 가는데.

짝꿍이 돛단배에 먼저 도착하자, 뒤따라가는 내가 보는 광경은 낯선 이들의 천연덕스러운 인사. 손을 흔들며 짝꿍을 아주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이건 대체 뭔가.

내가 도착할 무렵, 짝꿍은 이미 보트에서 다시 멀어져 나에게로 헤엄쳐 오고 있고 낯선 사내들은 다시 바다로 뛰어들고 있었다.


무슨 일인고 하니, 낯선 사내들은 본인들을 "살짝 취한 노르웨이인들"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좀비 보트에서 다이빙해서는, 노르웨이 국기가 걸려있는 우리 옆 요트도 구경할 겸 우리 보트에도 놀러 왔단다. 짝꿍이 숨차게 수영해서 우리 돛단배에 올라서자, 알딸딸한 노르웨이인들은 "오 어서 와! 너는 어디서 왔어?"라며 짝꿍을 반갑게 맞아했다는 후문. 짝꿍이 돛단배 주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던 듯하다.


그렇게 의도치 않은 왕복 수영 이후에 다시 해변으로 헤엄쳐 온 우리. 다행히도 우리가 해변으로 온 뒤 십여분이 지나자 좀비 보트들이 철수했다. 이 평화로움이란...

평화가 찾아온 블루 라군

블루 라군 - 작은 섬들 사이로 얕은 바다가 있어 명성대로 아름답기는 하지만, 사실 나에게는 스타리 스타니 만 같은 조그만 곳이 더 좋았다. 이름이 있는 곳은 그만큼 붐비니까.


그날 밤 폭풍이 예고되지만 않았어도 블루 라군에서 하룻밤을 보낼 계획이었는데, 스타리 그라드에서 들었던 바다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으니 우리는 안전히 스플릿으로 향했다. 스타리 그라드의 바다 전설은 다음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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