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우지우 Dec 12. 2022

[몽화록] 장사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1)

중드리뷰

몽화록


몽화록의 경우 본지 꽤 되었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겠습니다.

우선 유역비 배우의 오랜만에 드라마 복귀작이라 보기 시작했는데, 재밌어서 계속 봤어요.(물론 후반부로 갈수록 아쉽긴 했는데, 초중반 이야기를 빌드업해가는 과정이 재밌더라구요.)


주인공 조반아는 시골에서 찻집을 운영 중입니다. 본디 관리의 딸이었는데, 부친이 역적으로 몰려 기적에 속해있다가 탈적한 양민입니다.(양민 혹은 천민인데 알고보면 귀한 집안 핏줄이었다는 익숙한 설정ㅋ) 동네친구 손삼랑은 과자를 만들고, 조반아는 차와 기예를 팔아 나름 동네에서 한가락하고 있어요. 기적에서 만난 송인장과도 여태껏 언니동생하며 지내고 있죠.


어느날 송인장이 영 미덥지 않은 남자를 데려와 혼인을 하겠다고 하는데, 조반아는 이를 반대합니다. 왜냐 반아에게는 그녀가 먹이고 입혀 출세까지 시킨 약혼자가 있거든요. 자신의 약혼자처럼 믿을만한 남자를 만나라는 거죠. 그런데 입신양명한 약혼자가 다른 여자랑 혼인한다는 날벼락같은 소식이 전해지고, 반아는 이를 믿을 수 없어 상경을 강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황성사 지휘사인 고천범과 인연을 맺고, 생사고락을 함께하게 되죠.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게 조반아 캐릭터기도 하고, 극 초반 유역비의 매력이 정말 어마어마하더라구요. (지금도 대스타지만) 왕년의 송혜교+전지현을 합친 듯한, 타고난 아름다움과 끼를 겸비한 예인을 보는 듯한 느낌? 그냥 저 사람의 눈짓, 몸짓, 표정 하나하나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들더라구요. 정말 초반에는 조반아(=유역비)한테 홀려서 본 것 같아요. 게다가 캐릭터 자체도 당차고, 소신있고, 똑똑한 편이라 캐릭터로 인한 고구마는 없었던 것 같아요.


조반아와 고천범의 로맨스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드라마기는 한데, 시청자가 고천범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다 헤어나지 못할 즈음, 극중 고천범의 비중이 현저히 줄어요.(이쯤 되면 조반아의 매력에는 웬만큼 면역이 되고, 고천범한테 빠져들고 있을 타이밍이거든요.) 스토리상 고천범이 진짜 사경을 헤매기 때문에 등장을 못하는데, 이 치고빠지는 타이밍이 아쉽더라구요.


그럼 나머지를 차지하는 스토리는 뭐냐 하면, 조반아의 장사 성공기 & (전)약혼자 구양욱 복수기입니다. 시골에서 찻집 장사하던 그녀는, 상경 후 찻집→술집으로 점점 장사를 키워가고, 이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구양욱에 대한 복수의 과정이 드라마의 주스토리예요. 그래서 이 과정이 재밌냐하면, 재밌습니다. 물론 구양욱 캐릭터가 증말 발암 캐릭터긴 한데, 이상하게 쟤는 권선징악 결국 처벌받을 것 같더라구요.


구양욱의 온갖 진상짓보다 오히려 극중 가장 심각한 고구마 구간은 술집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자금이 융통 안 되던 시점이었던 것 같아요. 고천범이 집안 기둥뿌리 뽑아서 증서(?)를 놓고 갔건만, 그걸 발견 못한 조반아가 자금적으로 코너에 몰리는 그 시점이 진짜 숨막히더라구요. (물론 고천범이 사경을 헤매고 있어서긴 한데) 돈이 나올 곳도, 도움을 청할 곳도 없는, 사면초가의 조반아 상황이 현실적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비호외전을 보면서도 그랬지만, 저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실생활에서 겪을 법한 고난에 약한가 봅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큰 특징은 조반아-손삼랑-송인장, 세 여인의 관계를 심도있게 다룬다는 거예요. 단순히 여인들 간의 우정, 연대를 다루는 여성극이라기보다, 그들 사이의 미묘한 질투와 와해, 그럼에도 이해하고 협력하는 관계 자체에 집중한다고 할까요. 그리고 세 여인 모두 각자의 장기가 있어요. 조반아는 장사수완, 손삼랑은 음식솜씨, 송인장은 비파연주. 각자의 장기가 있는 세 여인이, 친구이자 동업자로서 함께하는 과정에서 있을 법한 감정적 부침과 결별-재결합 등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저는 이 부분이 꽤 현실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혹은 동료)라고 하더라도, 그이가 잘되는 걸 보면서, (질투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왜 이럴까, 왜 이렇게밖에 못살까 하는 한탄은 하게 되곤 하잖아요. 그리고 극중 조반아도 자신의 잘난 (전)약혼자, (현)약혼자로 인해 묘한 우월감을 지닌 뉘앙스가 있습니다. 송인장처럼 극중에서 대놓고 질투심이나 우월감이 표현되어 있지 않을뿐.(주인공이니까;;) 손삼랑도 행복한 조반아를 보며, 친구가 잘되서 뿌듯하다+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이 섞인 표정을 짓곤 하죠.


장사하는 여인을 다룬 비교적 현실적인 고장극임에도 불구하고, 조반아와 고천범의 로맨스는 드라마스럽습니다. 고천범은 여전히 자신의 목숨 & 집안 곳간 열쇠까지 조반아한테 다 바치는, 희생남주거든요. 거기다 두 사람은 출생의 비밀 & 선대의 악연까지 품고 있는 전형적인 고장극 속 비운의 연인입니다.(다만 캐릭터나 스토리가 이렇게 흘러가지 않을뿐)


여러 중드들이 그러하듯, 후반부는 아쉬웠습니다. 사건해결과 스토리 진행을 대사로 다 때워서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어요. 이게 회차를 40부작으로 줄이려다보니 이렇게 된 건지 원인은 모르겠습니다.


풍취반하까지 쓰려니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이만 줄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호외전] 정치판 무협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