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9일(일) 20:00
단연 22년 부국제의 베스트 한 작품을 꼽자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일 것이다. 정말 시간이 맞아서, 표가 있어서 본 영화인데, 영화부터 GV까지 충만한 기분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청각장애인 여성 복서가 주인공인데, 막상 시간이 흐른 뒤 영화를 반추해보면 장애나 스포츠 등은 첫말에 떠오르지 않는 영화. 세월에 따라 사그라드는 체육관의 풍경과 나아가지도 멈추지도 못하는 주인공 내면의 풍경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관객의 마음에 쓸쓸한 심상을 남긴다. 그러나 복싱이라는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리듬감, 타격감을 소리를 통해 그대로 전달하며, 관객들이 그 호흡과 리듬을 온몸으로 체화하게 한다. 그래서 주인공, 관장님, (어쩌면) 체육관이 겪고 있는 시간의 흐름이 관객에게 그대로 스며드는 듯한 영화. 그리고 영화의 말미 라이벌 선수도 그저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일하는 여성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둑 밑에서의 스치는 만남이 전하는 담담한 위안까지. 지금의 내 자신이 지치는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
그리고 GV에서 주인공역을 맡은 배우 키시이 유키노의 당당한 스탠스. 감독의 예술이라는 영화를 다루는 감독임에도 영화의 공을 배우에게 돌리는 감독 미야케 쇼의 모습까지. 22년 베스트라 할만하다.
<노바디즈 히어로> 10일(월) 11:30 * P&I
일년이 지나 22년 영화제를 돌아보며, 이 영화를 봤었다는 것을 순간 잊었다. 영화의 문제였다기보다 아마도 영화 관람 환경이 문제였지 싶다. P&I 상영관에서 봤는데, 옆옆 자리에 앉은 외국인 기자 혹은 영화관계자가 영화 보는 내내 같은 줄 의자들이 다 들썩 거릴 정도로 자꾸 움직여대서(엉덩이를 뗐다 다시 붙였다가, 다리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꼬면서 덜컬덜컹한다던가 기타등등) 영화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다른 자리로 옮기자니 듬성듬성하게 비어있는 객석인데도 딱히 옮길만한 자리가 마땅찮았다는 거. 그래서 어영부영 정신산란한 와중에 영화관람을 마치다보니, 영화에 대해 뚜렷이 기억에 남는 게 없는 지경.(특히나 영화제에서의 영화 감상 행위는 체험에 가까운 영역이기에 해당 영화의 관람환경은 아쉽지 그지없다. 그래서 왠만하면 P&I 상영관은 피하려고 하는데, 회사가랴, 영화보랴, 리뷰쓰랴, 시간적 여건이 여의치 못하면 어쩔 수 없다.)
영화는 알랭 기로디 작품답게 발칙한데, 감독의 영화를 몇편 보다보니 이번 영화는 무난한 느낌? 테러, 종교, 인종차별, 동성애, 매춘 등등 자극적인 재료들을 몽땅 가져와 뒤섞고, 거기서 빚어지는, 꼬리를 물며 일어나는 상황들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게 하는 코미디 영화다.
<리틀 블루> 10일(월) 13:30 * P&I
이날은 거의 P&I 파티였던 날인데, 해당 영화도 P&I 상영관이었다. 영화의 전당 지하에 있는 인디플러스였는데, 워낙 상영관이 작고, 관객들도 많지 않아서, 관람환경은 나쁘지 않았다.
대만영화 한편쯤은 봐야지 하고 선택한 영화였는데, 영화는 무난한 느낌.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10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한 자아찾기랄까. 사실 자아찾기라는 말도 진부하긴한데, 10대 여성이 자신을 알아가는데 있어 섹슈얼리티를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가 드물기 때문에 가산점을 줬달까. 착취적이지 않은, 10대 여성을 주체로 두고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노력한 흔적은 느껴졌던 영화다. 거기에 주인공 엄마의 이야기가 같이 진행되서 결국 모녀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느낌이었는데, 소재나 주제의 무거움에 비해 등장인물을 극단으로 몰아가지 않는 영화라 뒷맛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22년 영화제의 얼굴을 한명 꼽아보라고 하면 본 영화의 주인공을 떠올릴 정도로, 뭔가 배우의 얼굴이 강렬히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말없는 소녀> 10일(월) 15:30
이 영화는 영화제 기간 중 평이 좋아서 선택한 영화인데, 개인적으로는 무난했던 영화. 영화제에서 시간 쪼개가며 볼만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일상에 찌든 어느 날, 일반상영관에서 늦은 저녁 홀로 봤다면 눈물 줄줄 흘리면서 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2년 영화제에서 감상 시에는 덤덤하게 봤다.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주인공 소녀가 먼 친척 집에 맡겨지며, 그곳에서 친척 부부와 특별한 유대를 쌓아가는 이야기다. 친척 부부의 인품과 사연, 그리고 그들로 인해 조금씩 변해가는 소녀의 모습 등이 관객의 마음을 따땃하게 데우며,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인데, 이게 다인 느낌? 뭔가 그 이상의 영화적인 감동은 없는 느낌? 그래도 영화의 엔딩은 기억에 남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