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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Jan 24. 2024

결국 해를 넘긴 부국제(BIFF) 리뷰(2)

영화리뷰 

<도이 보이> 7일(토) 16:00


나름 올해의 기대작 중 하나였는데... 시평단 지인분이 감독의 전작 #BKKY를 호평하셨기에, 나도 드디어 이 감독 영화 보는구나, 싶었는데... 태국 드라마 꾸준히 보면서 의리상 태국 영화도 좀 보자 싶어서 골랐는데... 주말 황금타임에 나 왜 이 영화를 선택한 걸까...


 영화 <도이보이>(논타왓 눔벤차폰, 2023)는 월드프리미어 상영이었다. 영화 상영 전 감독과 훤칠한 배우들의 무대인사가 있었는데, 배우들은 자신도 이 자리에서 완성된 영화를 처음 본다며 흥분된 소감을 전했고, 관객들도 덩달아 기대치가 올라갔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고...진행되고...진행되다, 마지막 스크롤이 올라갔을 땐, GV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난감해졌다.


 게이 업소 마사지사인 불법 체류자 쏜, 부패한 카르텔과 결탁한 경찰간부 지, 학생운동 동지인 동성연인을 잃은 웃,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어디서 봄직한 클리셰의 향취가 그득 느껴지지 않는가. 그래, 좋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없으니 저 캐릭터들로 이야기만 잘 엮으면 되지 싶었는데, 그 역시도 실패한다.


 주인공인 쏜은 태국과 미얀마 국경지대에 살던 샨족이다. 샨족은 미얀마, 태국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국적이 불분명하다. 극중 쏜은 당장 미얀마 여권을 갖기도 어려운 상황으로 나온다. 영화 상 샨족은 미얀마로부터 자치권을 얻기 위해 군사투쟁 중으로 나오는데, 막상 쏜은 거기에 관심이 없다. 다만, 태국 치앙마이에서 살아가기 위해 직업으로 마사지사를 택했고, 여권이 생기면 여자친구와 여행을 가는 게 꿈인 청년이다. 그런 쏜에게 단골손님인 지가 위험한 부탁을 하면서 웃과 엮이게 되고, 이후 펼쳐지는 일들을 보여준다. 


 주인공 쏜이 생계를 위해 게이 업소를 택한 것이기에 LGBTQ+ 장르라 하기도 애매하다. 그리고 차라리 그냥 직업, 그렇게 건조하게 다뤘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동성연인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는 웃 캐릭터를 넣음으로써 애매한 포지션을 취한다. 쏜-웃-지 사이에 흐르는 저 묘한 감정선은 뭐란 말인가. 굳이 해석을 해보자면, 웃은 곧 고국을 떠나야 하고, 쏜은 고국이라 할 만한 곳조차 없는 상황이기에 둘 사이에 연대감이 생겼을 수 있겠다. 지 역시 붐에 대한 죄책감, 자신의 죄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웃에게 특별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것은 관객의 머릿속에서의 이해일뿐, 영화 속 그들은 기묘한 동행을 하고, 감정선도 어색하다.


 이와 같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소재가 설정으로서만 작동할 뿐, 캐릭터나 이야기 속에 스며들지 못한다. 샨족이라는 쏜의 신분,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경계인의 삶, 태국과 미얀마의 정치적 문제, 태국 내부의 부정부패 카르텔, 그에 저항하는 학생운동, (타의에 의해서긴 하다만) 종교에의 귀의 등 여러 소재가 등장하지만, 그것들을 흥미로운 플롯으로 엮어내지 못한 느낌이다.


 남은 건 자극적인 소재에 클리셰의 향연이지만, 결국 재료의 나열에 그쳐 밍밍함만 남긴다. 그럼에도 화면은 매끈하게 빠졌고, 편집도 나쁘지 않으며, 사운드 믹싱도 좋은 편이라 안타까움을 남긴 작품이다. 오히려 본 영화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감독의 다큐멘터리 전작 <소년병 : 영토없는 국가>에 호기심이 생겼달까. 플롯에 얽매이지 않은 채 같은 소재를 어떻게 다뤘을지 사뭇 궁금하기 때문이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7일(토) 19:00


굳이 비전 섹션이 아니더라도 올해 화제작 중 한편이 아닐까 싶은 작품. 시평단끼리 만나면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이야기는 하고 지나갔던, 본 사람들은 넌 어떻게 봤냐, 안 본 사람은 대체 어떤 작품이냐, 설왕설래가 오갔던 작품. 개인적으로는 귀엽게 봤고, 엔딩이 아쉽긴 했지만, 시평단들 사이에 화두가 됐던 이유로 아쉬웠던 건 아니었던, 스포가 될 수 있기에 관련 내용은 맨 마지막으로...


 막걸리가 우주의 진실을 들려준다니, 이 어찌 구미가 당기지 아니한가. 유튜브 ‘더 친절한 프로그래머'의 소개를 보고 비전 중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김다민, 2023) 작품을 픽하였다. 뚜껑을 열어본 영화는 판타지 모험극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결국 맥거핀을 동력으로 삼은 사회풍자극이었다. 그런데 저 맥거핀이 너무 귀엽고 재밌다는 게 문제다.


 아빠, 대머리가 영어로 뭐야? 선생님, 이거(아마도 영어말하기 대회) 왜 해야 해요? 유치원생 동춘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공부의 필요성을 납득시켜주는 이가 없자, 동춘은 스스로 공부 친구들을 만들어냈다. 털복, 숭이. 동춘의 상상 속 친구 털복, 숭이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빙봉'과 같은 존재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미국 어린이는 놀이친구를 만들었고, 한국 어린이는 공부친구를 만들어낸 정도랄까.


 세월이 흘러 과학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동춘은 수학반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영어, 일어, 러시아어 등을 섭렵하며, 미술, 태권도, 코딩 등도 겸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동춘의 대학입시 시기에는 페르시아어 전형이 생긴다는 엄마의 발 빠른 정보 수집에 따라, 태권도를 중단하고 페르시아어 학원을 다니게 된다.


 이 시기쯤 동춘은 수학여행에서 우연히 습득한 막걸리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는데, 조기하원을 위해 익힌 모스부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는 페르시아어를 거쳐 막걸리가 보내는 신호를 해석하게 된다. 저리 어거지로 간 페르시아어가 이리 연결될 줄이야. 막걸리-모스부호-페르시아어, 편의점-자연인-(잣막걸리)-유모차, 이와 같이 영화는 언뜻 연결되지 않는 것들을 연결 짓는 재주가 있다.


 그러면서 동춘에 의해 해석되는 막걸리의 언어, 모스부호 → 페르시아어 → 한글로 표기되는 자막을 관객들도 점점 기대하며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동춘의 막걸리에 대한 애착이 커갈수록, 관객들도 동춘과 막걸리의 사랑(?)을 응원하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사실 생수통으로 대변되는 막걸리는 사물일 뿐인데, 동춘과 관객에게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생수통을 발견한 엄마가 막걸리를 싱크대에 버릴 때는 마음속으로 ‘비룡대로 125번지~~~~~’를 외치며 눈물을 머금었달까.


 사실 저런 감정이입이 가능한 것은 동춘을 둘러싼 환경 때문이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된 엄마의 기대를 온몸으로 받고 있는 동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지만 자연인으로 살고 있는 파마머리 아저씨, 아기 때부터 엄마들끼리 짝지어진 친구 지영, 성장판 검사, 조기유학 등 영화는 동춘-막걸리의 관계를 통해 실은 한국 교육의 현실, 그 풍경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관객들이 동춘과 함께 쌓아온 막걸리와의 애착의 시간들을 통해, 어쩌면 동춘의 마지막 선택을 이해하게 한다. 그럼에도 영화의 엔딩은 조금 아쉽다. 참고로 영화의 마지막에 짧은 쿠키가 있으니 놓치지 마시길.


P.S. 개인적으로 엔딩이 아쉬웠던 이유는 동춘이가 스페셜 원이 아니었고, 수많은 다른 동춘이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실망감? 동춘이와 막걸리의 그 특별한 유대감이 알고보면 대량생산 가능했던 거였다고? 이런 배신감이었달까. 마지막에 동춘이가 웜홀로 폴짝 뛰어드는 뉘앙스로 끝나기는 하는데, 나는 그걸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다. 그저 여느 독립영화들처럼 모호하게 끝을 맺는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수의 시평단들이 그 엔딩을 자살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여, 시민평론단 수상작에서 일찌감치 제외됐다고 하니, 되려 놀라웠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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