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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Jan 31. 2024

결국 해를 넘긴 부국제(BIFF) 리뷰(5)

영화리뷰

<인샬라 어 보이> 9일(월) 16:30


이 영화, 큰 기대 없이 봤는데 의외로 재밌게 봤다. 일단 배경설명부터 잠깐 하자면, 주인공은 최근 남편이 죽고 홀로 딸을 키우고 있다. 요르단 법상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아들이 없을 경우 부부가 같이 형성한 재산이라도 시댁에 뺏기고, 주인공이 딸을 양육할 재산이나 소득이 없으면 딸도 뺏긴다.(이 무슨, 재산 뺏아놓고, 재산 없다고 양육권도 뺏는;;) 그래서 일단 주인공은 아들을 임신했다고 덜컥 거짓말을 하는데...


주인공이 처한 상황도 참으로 진퇴양난이고, 주인공의 대책없는 모습에 한숨이 나오기도 하는데(보다보면 어쩌려고 저래 싶은 순간들도 종종 나온다), 희한하게 주인공이 밉지 않은 느낌? 이게 왜 그런고 생각을 해보니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너무도 익숙한 문법이라서 그러했다.


요르단이라는 낯선 배경, 주인공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간과하고 있었을 뿐, 주인공의 대책없는 행동, 그럼에도 얼렁뚱땅 해결되는 문제들, 이거 왠지 로여주의 행동패턴과 비슷하다. 물론 주인공은 신경쇠약 직전의 모습이고, 주인공과 로맨틱한 순간을 주고받을 남주도 없으며, 더구나 장르적 문법에 이 영화를 끼워맞출 필요도 없다.(무엇보다 이 영화는 로맨틱하지도 코믹하지도 않다;;)


그러나 중동, 그 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삼은 영화에서 장르적 문법대로 행동하는 여주를 보고 있자니, 뭔가 이상한 쾌감? 저 엇나감이 주는 묘한 재미?가 있더란 말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희한한 방식으로 (그리고 다분히 종교적으로) 한방에 문제가 해결되는데, 그 또한 신박했달까. 그리고 주인공이 운전면허도 없으면서 고집스럽게 지켜낸 남편의 지프차를 요리조리 주차하며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데, 그 또한 자체 쿠키같은 느낌이었달까.



<바튼 아카데미> 9일(월) 19:00


위의 <인샬라 어 보이>와 달리 미국감독(무려 알렉산더 페인이다)전형적인 미국영화? 문법으로 만든 영화임에도 묵묵하게 재밌었던 작품. 외골수인 중년 남성, 아마도 은따인 듯한 10대 소년, 얼마전 아들을 잃은 중년 여성. 이들이 크리스마스 연휴, 학교 기숙사에 남아 서로를 치유하고 그로 인해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는 잔잔+감동+따스한 이야기다. 외톨이 특유의 행동특성으로 인해 주는 웃음도 있고, 누구에게도 꺼내보일 수 없는 슬픔이 드러나는 순간도 있고, 굉장히 뻔한 멘트임에도 폴 선생님이 해주니 뭔가 특별하게 위로가 되는 순간도 있다. 삶에 지친 어느날, 다시 한번 꺼내보면 좋을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 12일(목) 19:30


일반 상영작 중 마지막으로 본 영화다. 프로그램 노트를 읽었음에도 나는 이 영화가 다큐인줄 알았다. 그러나 영화 속에 영화가 등장하는 극영화였다. 한때 촉망받던 작가이자 감독이었던 미겔은 33년 전 영화 촬영 중 사라진 친구이자 배우인 훌리오를 찾아나선다. 물론 자의로 찾는다기보다 훌리오의 행방을 찾는 TV쇼에 출연하면서부터다. 그럼에도 그는 이미 훌리오가 죽었을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훌리오의 행방을 쫓으면서 점점 미겔의 마음과 삶에서 잊혀졌던 어떤 열정이 떠오르는데...


이 작품은 다분히 의도적인 은유로 가득하다. 오랜 기간 행방불명된 훌리오, 이미 그가 죽었다 여기는 미겔은 영화와 관객, 혹은 시네마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OTT의 시대로 넘어왔다 여기는 현시대를 의미하는 듯하다. 미겔이 훌리오를 찾으며 잊혀진 필름, 낡은 극장을 마주하고, 감독(빅토르 에리세)의 전작에 출연했던 아나 토렌트가 '아나'라는 캐릭터로 등장하며, 어른이 된 그녀의 얼굴을 카메라가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한참 들여다보기도 한다.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던 무언가를 공들여보는 느낌으로.


거기에 훌리오가 완전히 다르지만 여전한 모습으로 살아있다는 것, 미겔이 그러한 훌리오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스크린을 통해 훌리오를 일깨우려는 것 등이 던지는 질문은 묵직하다.


작품 전반적으로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것에 대한 쓸쓸함이 짙게 베어있고, 낡은 것들 사이에서 길어올린 시네마의 영혼이 머무는 듯한 작품이다.



<영화의 황제> 13(금) 20:00


매년 그러하듯 폐막작은 아쉽지만 보게 된다. 거기다 유덕화 오라버니가 주인공인데 봐야하지 않겠나. 한물 갈까말까 아슬아슬한 중년의 탑스타가 대배우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토리인데, 풍자적이지만 그닥 유쾌하지 않고, 비호감인 주인공을 신경쇠약 상태로 몰아가기에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그저 아시아권 감독 중 포스트 봉준호를 꿈꾸는 이가 많구나 새삼 깨달은 정도?



※ 2023년 결산


<블랙버드 블랙버드 블랙베리> 야근하느라 못봐서 아쉬운 작품

조지아나 우리나라나 기혼자 커뮤니티가 보는 미혼자는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가운데 주인공의 삶의 태도가 궁금했는데 못봄;;


<엘레지> 조퇴를 못해서 못본 작품

<먼지가 되느니 재가 되리>를 보고나니, 비슷한 소재를 다른 결로 다룬 작품을 보고 싶었다. 저널리스트가 기록&일기의 느낌으로 홍콩 민주화 운동을 담은 작품이 전자라면, 허안화 감독이 시(詩)덕후이자 감독의 시선으로 홍콩의 변화를 담은 작품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못봐서 아쉽다.


<내 사랑 샐리> 영화제 끝나고나니 궁금한 작품

프로그램 노트상 시놉이 재밌어보이긴 했다. 그러나 굳이 볼 마음은 안 들었는데, 막상 보고온 시평단 지인이 너무 감질나게 얘기해서 궁금한 작품. 대만작품이라 괜시리 더 아쉽다.


<추락의 해부, 가여운 것들, 프렌치 수프> 당연히 개봉하겠지 싶은 작품

<추락의 해부>는 곧 개봉하고, <가여운 것들>은 조만간 개봉하고, <프렌치 수프>는 언젠가 개봉하겠지. 대체적으로 <프렌치 수프>를 본 지인들의 호평이 이어져 궁금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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