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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Jan 25. 2024

결국 해를 넘긴 부국제(BIFF) 리뷰(4)

영화리뷰


<노란문 :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8일(일) 20:30


전날 무리해서 4편을 봤더니, 다음날 뻗어서 오전, 오후 영화는 다 날렸다. 그래도 노란문은 보러 가야지...이럼서 저녁에 겨우 가서 본 작품. 먼저 본 지인들의 반응이 뭔가 몽글몽글해서 봐야겠더라고. 넷플릭스 공개 전 영화제에서 선공개하는 형식이었고, 영화제 첫 상영때는 노란문 멤버들도 GV에 참석했다고 한다.


대체 '노란문'이 무엇인고 하면, 90년대초 자발적으로 생성된 다수의 영화공동체 중 한곳으로, 청년시절 봉준호가 속해있던 곳이다. 지금의 스터디와는 다른, 동아리 특유의 문화가 살아있는, 자발적으로 모여 미친듯이 영화를 보고, 만들고, 공부했던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어려있는 작품이다.


멤버 모집 방식도 오며가며 알게된 건너건너 옆학교 선배, 알음알음 아는 후배 등등이 모이는 식이다. 영화에 대한 갈증은 있으나, 누구 하나 가르쳐줄 이 없고, 제목만 익숙한 예술영화를 볼 방도가 없는 이들이, 자구책으로 구한 늘어진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고, 숏 바이 숏으로 영화를 분석하던 시절. 당장 나부터도 경험해보지 못한 영화에 대한 열정과 낭만이 넘치던 시절.


그리고 떡밥 뿌려지듯이 슬금슬금 실체가 밝혀지는 봉준호의 단편 애니메이션 <루킹 포 파라다이스>. 당시 그 단편을 함께 본 노란문 멤버들이 영화에 대해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것도 재밌는데, 단편의 실제 스토리를 알려주면, 하나같이 '라쇼몽이야 뭐야.'라며 관용구쓰듯 표현하는 것도 재밌었달까.


영화 속에서 <루킹 포 파라다이스>가 떡밥이듯이, 크게 보면 이 다큐에서 봉준호가 떡밥인 셈. 실제 영화에서 봉준호는 노란문의 한 멤버로서 등장하는데, 비디오대여 대장을 만들고, 연체료를 관리하던 막내 포지션?(그리고 그 일을 본인도 좋아했다는 게 함정;;)


그 외에 지금은 영화와 관련없는 분야에 종사하거나 한때 영화의 꿈을 품었으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어느덧 중년도 훌쩍 넘어버린 노란문 멤버들을 전반적으로 다룬다. 그리고 사실 다수의 관객들에게 후자의 멤버들이 더 가깝게 느껴질터.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추억이나 회환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한때의 열정이 지금을 살게 한다는 느낌을 준다. 보라, 당장 라쇼몽을 관용구로 쓰는 사람들 아닌가.


그리고 신기하게도 GV 시간에 관객들이 자신의 덕후활동, 동아리 시절에 대해 언급하고, 감독도 한참 여러 질문에 답을 하다가, '여러분 혹시 알고 계셨나요? 봉감독 얘기는 답변하면서 제가 하고 있지, 관객분들 중에는 봉감독에 대한 언급이 없으시다는 거? 사실 이걸 의도했는데, 제 의도대로 영화를 감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이 그렇게 얘기하고나서야 나도 그 부분을 깨달았다.(해당 관람회차에는 감독만 GV에 왔었다.)


감독은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노란문 멤버 중 훈아누나를 주인공으로 삼고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한때는 노란문 멤버였으나 지금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후자에 속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고, 지금도 여전히 멋진 사람. 훈아누나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감독의 의도가 어떤 건지 너무 알겠어서 이상한 위로가 된 작품. 영화 자체도 재밌으니, 넷플에서 관람 가능하다면 추천!



<먼지가 되느니 재가 되리> 9일(월) 13:00


내부인의 시선으로 담은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기록. 저널리스트인 감독이 시위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겪고, 느낀 바를 기록한 다큐이다. 취재 대상을 도울 것인가, 취재 현장을 담을 것인가, 저널리스트로서의 윤리적 갈등과 상흔처럼 남아 있는 죄책감. 시대적 변화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그럼에도 다시 카메라를 들고 현장 가운데 서 있던 순간들. 회환과 상념이 묻은 1인칭 나레이션.


나래이션에 좀 더 깊이가 있다던가(약간 감독의 일기 같은 느낌), 혹은 나래이션을 조금 덜어내고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뒀다면 어땠을까. 자막으로 전달되는 정보, 나래이션으로 전달되는 감정적 해석,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위현장 장면들, 그러다보니 영화가 전체적으로 여백이나 여운이 없는 느낌? 그럼에도 영화적 성취보다 기록으로서의 가치에 손을 들어줘야 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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