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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소 Oct 14. 2022

제주 중산간에서 출퇴근합니다 #1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 말고


제주 중산간은 하루에도 날씨가 오락가락이다. 금방 전까지 비가 내리다가도 그치면, 하늘에서 바람이 후 하고 구름을 밀어낸다. 아주 가끔씩 비가 그치고 햇빛이 쨍하고 나타날 때면 무지개가 뜨는데, 오늘은 쌍무지개가 떴다. 퇴근을 하고 하늘 위로 나타난 이 무지개를 꼭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서, 홀리듯 운전을 했다. 


내비게이션은 좌회전을 하라고 했지만, 그 내비게이션을 따라 가면 무지개를 온전히 볼 수 없었다. 생각보다 무지개는 빨리 사라지기 때문에 반원 형태의 무지개를 잘 볼 수 있는 방향을 따라 속도를 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방향은 무시한채. 창 밖의 하늘을 두리번거리며, 처음 가보는 길을 따라 굽이 굽이 흘러갔다. 왼편에 반원의 무지개가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무지개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서 쪼그려 앉아 사진을 찍었다. 프레임 안에 십자가를 사이에 두고 무지개 한 쌍이 하늘 위로 쭉 뻗어 올라간 모습이 들어왔다. 이 장면에 홀리듯 발걸음을 옮겼는데, 그러자 

고고한 모습의 얼룩말이 우아하게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나에게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며, 나도 이 친구를 향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며. 이상하리만치 동화같은 순간. 생경한 풍경에 놀란 마음을 숨기고, 숨을 죽이며 영상을 찍었다. 그러자 이 얼룩말의 짝인지, 늠름한 말이 내 카메라 아주 가까이 찾아왔다. 

이 둘은 나를 한참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다가 그들의 거처를 향해 붙어 걸어갔다.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고마웠다. 지금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동화같은 장면을 만들어주는구나.


금방 사라져가는 무지개.� 


언젠가 또 이런 동화같은 장면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그 주변 상호들을 저장해뒀다. 혹시 또 이렇게 무지개가 뜰 때, 다시 이곳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풍경을 보러 갈 수 있겠지.
집으로 가는 길을 검색해보니 그리 멀리 오지도 않았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만을 택하지 않고, 조금은 다른 길을 택해 내 앞에 내어진 길을 따라가는 것. 조금은 모험을 해보는 것. 우연히 마주한 아름다움이 눈 앞에 있을 수 있다.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와- 하는, 직함을 버리고 제주를 향한 것도.

어쩌면 정해진 길, 세상의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 대신에

홀리듯, 내가 좋아하는 길을 향해서 한발 한발 내딛는 삶. 


어떤 길을 택하든, 그 모든 길의 끝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있기를. 


오늘의 드라이브 음악. 다린의 '갈래'

https://youtu.be/QwdAC4wdK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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