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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소 Oct 14. 2022

화북댁 이야기 #2

태풍 속에서 평온을 유지하는 법

힌남노가 찾아왔다. 제주에서 처음으로 맞는 태풍, 그것도 슈퍼태풍이다. 한반도에 상륙하기 일주일 전부터 언론에서는 힌남노의 소식을 이어갔다. ‘경쟁자를 잡아먹은 포식자’란 수식어에 걸맞게 레이더 화면으로 마주한 힌남노는 한반도를 전부 덮을만큼 거대했다. 제주에서의 태풍은 어떨지, 거기다 슈퍼 태풍이라니. 호기심이 먼저 들었다.

오키나와를 휩쓰는 힌남노의 강풍을 보니, 아 이게 호기심이 들 게 아니구나.하고 두려움이 스믈스믈 올라왔다. 유투브에서 알려주는 방법대로 종이 박스 조각을 베란다 창틀 사이로 끼워넣었다. 창문을 꽁꽁 닫아 습할 대로 습해진 베란다에서 의자 위에 올라가 땀을 뻘뻘 흘리며 종이 박스 조각을 끼우는데, 아 나 정말 제주도민이 되었구나. 실감이 났다.

문제는 집 안보다는 복도였다. 베란다 방향은 건너에 다른 아파트 건물이 있어 바람을 막아줄텐데, 복도쪽 창문은 앞이 뻥 뚫려 있어 강풍을 직격으로 맞을 터였다. 거기다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라, 벽면에 아주 미세하게 금이 가 비가 올 때마다 물이 새는데, 이번엔 복도가 물바다가 되면 어쩌나 싶었다.

복도로 나가니 출입문을 열어놓은 옆집에서 나오는 티비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대비해야하는지, 옆집 주민들은 아시려나. 하고, 쭈뼛쭈뼛 열어두신 문 앞으로 걸어갔다.

머쓱해서 ‘아유 인사가 늦었어요. 옆집에 새로 이사왔어요.’ 했다. 힌남노 덕에 여기서 산 지 3개월만에 옆집 이웃 주민과 인사를 나눴네.

‘이사 간 지도 몰랐네, 이사 온 지도 몰랐네'라며 아주머니는 호탕하게 말씀하셨다. 여기는 워낙 오래된 아파트라 비가 올 때마다 물이 샌다며, 실리콘을 발라놔도 다시 그런다고. 하셨다. 아 쩝. 그러쿤요. ㅎㅎ 감사합니다. 하고 종이 박스를 창문의 세로 방향 틈 사이로 끼워넣기 시작했다. 그 때 옆집 아저씨가 오셨다. ‘옆집에 새로 이사왔대.’ 하는 아주머니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셨다. 인사하는 나를 본체 만체 하셨지만.



아저씨는 코팅이 된 것 같은 단호박 포장 박스를 들고 나오시더니, 당신의 집 앞 복도를 너머 우리집 앞까지, 그리고 복도 제일 끝 호실 앞까지 종이박스 조각을 끼워넣으셨다. 창문 세로 방향의 틈 사이로 박스를 넣고 있는 나에게, ‘거 말고 여기 아래에다 끼워넣어야 해요. 그 박스는 또 너무 흐물흐물 해서 안돼요' 하고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을 건네신다. 아핳 네..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인사를 하는데 여전히 눈은 한번도 마주치지 않고 성큼성큼 댁으로 들어가신다. 그래도 마냥 쌀쌀맞아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온기가 느껴지는 뒷모습.

베란다와 복도에 덕지덕지 종이를 끼워넣은 걸 찍은 사진을 가족에게 보내주고, 태풍 맞이 준비완료 라고 했다. 아빠는 유비무환. 이 네글자로 안심시켰다. 육지 친구들이 제주에 태풍 온다며, 걱정이 되어서 연락했다는 따듯한 마음들을 온몸으로 받고. 몇 안되지만 소중한, 섬 친구들에게 태풍 대비 유투브 영상을 공유하면서. 그렇게 태풍을 맞이하고 있었다.

새벽에 부는 힌남노의 바람 소리가 조금은 무서웠지만,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을 청할 옆집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다행히 화북댁 근처에는 큰 피해 없이 힌남노가 지나갔다. 아침엔 마치 어제의 일이 거짓말이란듯 파랗게 펼쳐진 하늘과 바다를 보며 또 사진을 찍었다. 이젠 제주 하면 미소 생각이 난다는 육지 친구들에겐 이젠 괜찮다는 안부를, 제주 친구들에게는 무탈했는지, 안녕한지 안부를 물어보는 새 아침.

아 나 제주에 살고 있구나. 정말로 나는 제주에 살고 있다.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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