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Grand Lake
지하에서 놀고 있던 꽃이 자꾸만 “사뜨 사뜨”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뜨가 뭐지? 내려오라는 건가? “엄마 down?” 물으니 꽃은 그저 사뜨를 반복하며 급기야 계단을 올라왔다. 사로 시작하는 게 뭐가 있을까 둘러보니 사과가 보인다. 사자가 사과 한 조각을 손에 쥐고 지하로 내려간 직후니 맞는듯하다. “엄마 사과?” 내 말에 이제야 알아 들었냐는 듯 활짝 웃으며 꽃은 또 사뜨라고 했다. “아 우리 꽃 사과 달라고?” “사.가.” 한 음절씩 힘주면 더 정확하게 나온다. “꽃 애플 줄까?” 사과를 깎으면서 연습 삼아 다시 물으니 꽃이 “엄마 애. 플.” 말하며 손을 내민다. “우리 꽃 사과도 잘하고 애플도 잘하네. 최고! 아빠, 꽃이 말로 애플 달라고 했어!” 일부러 큰 소리로 남편한테 알렸더니 멀리 있던 남편도 잘했다고 소리친다. 꽃은 한번 더 애. 플.이라고 하고는 사과를 베어 물었다.
저녁 식사 후 사자가 샤워를 하고 나오자 꽃이 달려왔다. 옷 입기 전 스킨 투 스킨을 몇 번 해봤다고 진작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새가 웃긴다. 덩치만 컸지 아직 아기 같은 사자는 누나 품에 쏙 안긴다. 내가 “스킨 투 스킨?”이라고 하니 꽃이 스킨이라고 따라 한다. 그리고 허그는 허스가 되고 “사자 큐트?”는 큐가 되어 나온다. “사자도 누나가 귀여워?” 내 물음에 사자도 큐트라고 한다. 소리나 문장이 완전하지 않으면 어때. 두 아이는 부둥켜안은 채 뽀뽀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잠시 후 꽃이 거듭 허스라며 팔을 벌리고 사자를 껴안으면서 큐라고 했다. 세 번을 하고 나서야 기저귀를 입는 꽃과 사자 덕분에 한참을 웃었다.
꽃을 재울 때는 교회 찬양을 같이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은 한 오래된 노래가 선택되었다.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라는 구절이 마음에 울린다. 힘들었던 지난날의 몇 장면이 스쳐 지나가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은 꽃이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내겐 그에 못지않게 힘든 시기가 있었다. 남편은 그걸 (부분적으로) 알고 나와 결혼했다. 남편한테 말한 것보다 그 상처는 더 깊어서 지금의 감정에도 영향을 미칠 때가 있다. 꽃이 어둠 속에서 내 눈을 만져 보더니 어 어 라고 했다. 꽃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엄마 왜 울어? 울지 마.”라고 했을 것이다. 나는 “꽃 때문에 우는 게 아니라 그냥 엄마가 슬퍼서 우는 거야.”라고 설명했다. 꽃은 “사랑(해).”라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장애아의 부모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에세이가 있다. 바로 웰컴 투 홀랜드, 네덜란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글이다. 장애아가 태어난 일을 겨우 이탈리아로 가려다 홀랜드에 떨어진 여행에 비교한다고? 그따위 여행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고 몇 번이고 되뇌며 나는 그 글을 싫어했다. 예정대로 이탈리아에 도착한 사람들이 하는 말은 아무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힘들고 분하고 눈물 흘린 날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아직도 나는 느려도 괜찮다는 말을 감히 입 밖으로 내지 못한다. 다만 내가 인정하게 된 건 홀랜드에서의 삶이 이탈리아에서의 그것과 다를지언정 다운증후군 딸 때문에 인생이 끝장난 건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옛날 상처를 다 지우지 못 한 이유는 상황 자체보다 사람들의 눈빛과 말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내가 내 자신에게 쏜 화살도 있었다. 다섯 살 꽃은 또래처럼 말을 하지 못 한다. 우리에겐 정말 쉬운 단어도 꽃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소리가 되어 나오기도 한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해야 할 때도 있다. 아무리 기대하고 노력해도 일반인처럼 말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걸 달리 표현하면 꽃은 남을 혹은 자신을 깍아내리는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비수가 되는 눈길을 주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엄마에겐 뼈아픈 현실이 분명하지만)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여름에 두 아이와 갔던 한 캠핑 여행이 떠오른다. (우리가 대체로 그렇듯) 별로 알아보지 않고 떠난 로키산 국립공원 저 너머의 강촌, 그랜드 레이크. 로키산을 말할 때 사람들이 흔히 언급하는 에스테스 파크는 아니지만 산의 이쪽에서 보는 것과 다른 멋진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하는 곳에만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홀랜드에서 걷는 길은 가시밭길이 아니라 그저 이름 모를 꽃으로 가득한 꽃길임을 배워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집에서 그랜드 레이크까지는 약 190km. 지도에서 2시간 40분이라니 최소 네 시간을 예상했다.(결국 다섯 시간 걸렸지만) US-70를 한 시간 넘게 타고 가다가 아이다호 스프링스 놀이터에서 쉬기로 했다. 2000km에 달하는 거리를 2박 3일에 완주한 젊은 날은 저리 가라. 요즘은 중간중간 들리는 놀이터가 목표일 정도이다. 아이다호 스프링스는 19세기 골드 러시 역사의 중심지로 협곡을 따라 길게 늘어선 형태를 하고 있다. 붉은색 채굴 박물관 건너편 놀이터에는 의외로 다양한 놀이 기구가 있었다. 꽃과 사자는 아쉬워하며 다시 차에 앉았다.
유명한 휴양지라는 건 알아도 위치는 몰랐는데 가는 길에 있었다. 타운 중심에 있는 놀이터에서 점심 먹으며 쉴 계획이었으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무슨 (흑인이 대다수인) 축제를 하고 있었다. 흑인 인구가 많지 않은 콜로라도에서 여길 봐도 흑인 저길 봐도 흑인인 현실은 비현실적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외국에서 외국인을 구경하는 거고 그들에겐 웬 외국인이 자기 나라에 살면서 신기해하는 거겠지. 우리는 빅맥을 사들고 프레이저로 갔다. 북적북적 윈터 파크와 달리 심하게 평화로운 그 동네에는 끝내주는 놀이터가 있었다. 저 멀리 산이 보이는 초원에 원주민을 테마로 지어진 곳으로 꽃과 사자가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랜비 호수가 나타나면서부터 우리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호수 곳곳에 있는 해변에 사람이 띄엄띄엄 보였다. 그린 리지 캠핑장이 있는 지역으로 들어서자 아기자기 예쁜 풍경으로 바뀌었다. 주말인데도 사회적 거리는 자동이라니. 사람보다 모기가 많은 게 문제였다. 특히 어린 사자의 피를 알아본 걸까. 까까머리와 이마에 집중적으로 공격당했다.
저녁에는 부둣가를 산책했다. 쉐도우라는 이름에 걸맞게 해가 일찌감치 산 뒤로 넘어가 버렸어도 강가를 떠도는 오렌지 햇살만큼은 운치 있었다. 뱃놀이를 즐기는 가족이 몇 있어서 꽃과 사자는 보트 구경을 실컷 했다. 그러다 갑자기 배가 아파졌다. (보트가 부러워서 그랬나?) 푸세식 화장실이라 캠핑할 때마다 최대한 참는데 이건 그럴 수 없는 종류였다. 급할 땐 푸세식이고 뭐고 화장실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아이들은 엄마가 큰 볼일 보고 왔다고 그렇게 여러 번 poo-poo라고 말해 주었다.
5월부터 캠핑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데다(그것도 벨 텐트로) 다섯 시간 걸려 와서인지 텐트를 치고 걷는데 유난히 오래 걸렸다. 이튿날 겨우겨우 짐을 싸서 그랜드 레이크로 갔다. 여행 책자에 나오는 여행지를 펼친 것 같은 곳인데 날씨마저 도와주었다. 로키산이 보이는 부두에 매어있는 각종 보트며 호수 주변에 들어선 식당에 넘쳐나는 (외국) 사람들. 조용한 동네에서 온 우리에겐 사뭇 색달랐다.
비싼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난 후 호수 전망을 가진 집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타운을 벗어나니 바로 차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비포장 도로. 나뭇가지가 자꾸 창문에 긁혔고 개인 소유의 땅을 빌리고 나서야 차를 돌릴 수 있었다. (그것도 너무 좁아서 쩔쩔매고 있으니 주인이 나와 친절하게 가이드를 해주었다.) 이런데 오면 남편은 늘 물어본다. “여기 살고 싶어?” 지리산 중턱 거주 경험자로서 눈 올 땐 꼼짝도 못 할 걱정이 앞서는 나의 대답은 글쎄올시다. 대신 다시 여행 가서 목조 건물에 묵으며 푹 쉬고 싶다.
귀갓길은 로키산 국립공원으로 정했다. 매표소를 지나니 산불로 인해 시커멓게 변한 산림이 10분 넘게 이어졌다. 미국은 광대한 땅덩어리만큼 거대 규모의 산불에 매년 시달린다. 작년 콜로라도에서는 역대급 산불이 두 개나 있었고 이곳저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을 몇 개월 동안 끄지 못한 기록이 있다. 이례적으로 9월 중순에 상당한 양의 눈이 내렸는데도 불이란 그렇게 쉽게 잡히는 게 아니었다.
산 밑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아찔한 도로를 타고 알파인 비지터 센터에 도착했다. 콜로라도에서 가장 높은 포장도로인 트레일 리지 로드 중간 즈음에 있는 그곳은 계절이 무색할 만큼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트레일 따라 몇 발자국 떼다가 꽃과 사자가 날려 갈 정도의 바람에 벌벌 떨면서 차로 후퇴했다. 아쉬운 마음에 툰드라에 내려 사진만 잠깐 찍었다. 이곳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몇 번이나 와 봤던 곳. 옛 추억을 이야기하며 에스테스 파크까지 내려왔다. 그랜드 레이크가 엄청 근사했지만 에스테스 파크라고 별다를 건 없었다. 로키산 국립공원은 정말 놀라운 곳이고 우리는 그 가까이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