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과사자 Dec 07. 2021

누나는 대단해요

우연히 몸무게를 재보니 둘째 사자가 14.9kg이란다. 첫째 꽃의 몸무게는 14.3kg. 다시 한번 올라서게  봐도 숫자가 같다.


이런 날이 곧 오리란 건 알았지만 하루라도 늦길 바랬는데 깨닫지도 못한 사이 이미 이렇게 되었구나.


어련히 그러려니 했던 사실이라도 목도하게 되는 순간이 오니 기분이 야릇하다.


28개월 빠른 누나.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 그 정도 나이 차이라면 동생에게 누나는 늘 대단한 존재다.


단순히 키나 덩치만 말하는 게 아니다. 어린 나이에 누나란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 더 많고 동생이 못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존재다.


누나가 먼저 배운 숫자나 글자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자기는 이미 익숙한 신체 활동을 동생에게 전수하기도 한다. 동네 아이들과 놀다 문제가 길 때 동생을 보호해주는 것도 누나다.


누나인 꽃이  크고 누나답게 뭐든  잘하던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여러 감정이 몰려온다.


우선은 조금 씁쓸하다. 소견이 좁은 내 기준에 의하면 꽃과 사자는 이제부터 상식적인 남매 프레임에서 벗어난 채 자라야 한다.


작년부터 일 년 넘게 어디 가면 쌍둥이냐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내년이 되면 사람들은 더 헷갈리게 될 것이다


누나는 동생이 자기보다 말도 훨씬 잘하고 자전거도 먼저  보게  것이고 동생은 누나가 자기보다 작고 느리다는  점점 눈치채게  것이다.


누나 기를 살리면서 동생은 자만하지 않으면서도 자존감 있는 아이로 키워야 하는 퀘스트가 내게 주어졌다는 뜻도 된다.


한편으로는  유니크한 프레임 안에서 꽃은 사랑이 가득한 누나로 사자배려심 있는 동생으로 자랄 것이 기대된다. 


인간은 작은 결핍이 있을   성장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누나의 장애가 상처가 될 거라는 걱정보다는 장애아 비장애아 남매가 각자의 자리를 잘 찾아갈 것이라는 소망이 내겐 있다.


무엇보다 꽃의 입장에 한번 더 서본다. 다운증후군이란 용어는 정확히 몰라도 꽃은 자신의 다름을 알고 있다.


학교에 가면 자기보다 머리   개가  아이들이 있고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남다른 행동을 할 땐 또래가 의아한 눈빛으로 본다는 것을 꽃도 무의식 중에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꽃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행복하지 않다는 아니다.


꽃은 순서에 맞지 않는 숫자를 수시로 세며 웃고 철봉에 매달리며 즐거워한다.


누구 못지않게 책을 많이 들여다 보고 지하 놀이방에 갈지 거실에서 킥보드를 탈지 매트에 앉아 퍼즐을 할지 본인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


마당에 스스로 나가 모래 상자 뚜껑을 열어 놀다가 마커를 꺼내 색칠을 하고  다른 놀거리는 뭐가 있을까 곳곳을 탐험하는 꽃을 지켜보노라면 매번 감탄이 나온다.


그렇게 본인의 속도대로 본인의 방식으로 자라는 자식을 받아들이고 항상 그 자리에서 응원하는 엄마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보호자이기에 마음 아프거나 답답할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꽃을 유심히 보고 있노라면 결국 그 마음 자세로 돌아가게 된다.


남보다 몇 배가 느린 건지 혹은 몇 살의 발달에 준하는지조차 평가하기 어려운 아이가 주어진 삶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를 문득문득 깨달을 땐 소름이 돋는다.


장애로 인해 이미 동생보다 600g 가벼운 사자의 누나 꽃은 단순한 장애아가 아니라 장애가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라이프 스킬을 하나씩 배워가고 있는 대단한 누나이다.


작가의 이전글 딸이 변기에 빠진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