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다운증후군 소녀와 함께하는 뜨거운 여름
5년 만에 방문한 한국. 우리의 입국은 정말 요란했다. 5월 21일 LA에서 하루 자고 22일 밤 11시에 출발해서 24일 새벽에 도착하는 일정에 꽃과 사자는 평소보다 각성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꽃과 사자는 비행기를 나서자마자 카시트를 두고 옥신각신했다. 작은 캐리어에 카시트를 달아 쓰는 유모차 대용. 평소 꽃이 쓰던 카시트를 사자가 고집했기 때문이다.
꽃이 한 번 양보하면 되겠거니 했는데 사자의 반응이 점점 더 심해졌다. 꽃이 카시트에 손을 대기만 해도 자기가 앉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장시간 비행 동안 TV에 중독되어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한 탓도 있는 듯했다.
입국 절차를 밟기 위해 길에 늘어선 사람들의 시선이 다 우리에게 쏠렸다. 어떤 어르신은 한국식으로 “이놈 한다!”며 장난스럽게 도와주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자가 앉으면 꽃이 슬퍼서 울었고 꽃이 앉으면 사자가 괴성을 질렀다. 아이를 꼭 껴안고 진정시키려고 해도 아예 손에 잡혀주지 않아서 어찌할 도리가 없다.
재밌는 드라마 보듯 쳐다보던 사람들도 우리가 민망할까 봐 고개를 돌리는 게 느껴졌고 다른 또래 아이들은 얌전하게 사자의 난동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부모들 얼굴에는 “지금 저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어서 참 다행이다.”라고 적혀 있는 듯했다.
설상가상으로 나와 아이 둘만 입국이 허가되고 남편은 오피스로 불려 갔다. 인도네시아 국적을 가진 남편의 한국 영주권이 만료되어 따로 비자 신청을 해야 하는 걸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사자는 격리된 아빠를 찾는 동시에 자기가 원하는 카시트 달라고 방방 뛰어다니며 울다가 결국 그 카시트를 차지하고 앉아 잠이 들었다.
나는 꽃의 기분이 괜찮아서 나를 잘 따라와 주기만을 바랐는데 꽃은 카시트 소동 이후로 아주 차분해져서 나와 실랑이 없이 화장실도 가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빠를 기다렸다.
한 시간이 걸려 남편은 벌금 5만 원을 내고 한국에 입국했고 우리는 이보다 더 힘든 경우는 이제 없을 거라며 서로 위로했다.
우리가 인도네시아에서 한 달을 보내고 7월 9일 그곳을 떠날 때 시동생의 집 냉장고에는 초콜릿 한 통이 남겨져 있었다.
그들이 흔하게 먹는 브랜드도 아니요 시동생 식구들은 출처를 모르는 초콜릿. 바로 6월 10일 자카르타 공항에서 치열했던 입국의 흔적이다.
한국에서 인도네시아까지는 7시간 남짓 걸리고 시차는 두 시간이다. 미국에서 올 때처럼 밤낮이 바뀌지도 않고 12시간에 비하면 할만한 비행시간. 이번엔 승산(?)이 있을 줄 알았으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이번에도 우리 두 아이들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천공항을 교훈 삼아 카시트는 아예 짐으로 보내 버렸기에 카시트가 아니라 꽃과 사자 둘 다 내게 안기고 싶어 하는 게 문제였다.
처음에는 그래 그럴 수 있지 하고 평소처럼 꽃을 내가 안고 남편이 사자를 맡으려고 했는데 사자가 절대 그럴 수 없다며 눈물을 뚝뚝 흘린다.
(아직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사자를 안으려니 꽃이 그렇게 서럽게 울어댄다.
어이없는 웃음이 피식 난다. “너희들이 언제 엄마를 그렇게 찾았다고!” 가벼운 타박을 하며 둘 다 내가 안기로 했다. 나라고 체력이 남아도는 건 아니지만 자식이니까, 순조롭게 입국만 할 수 있다면 이 정도는 해주지.
그런데 웬걸, 둘 다 내 허리에 매달려서 발로 서로를 밀어내며 공항이 떠나가라 울부짖는 게 아닌가? 남편과 내가 어르고 달래며 한 명씩 시도해봐도 효과가 없다.
꽃이 내 다리에 매달리거나 주저앉으면서 엄마를 찾던가 사자가 내 다리에 매달리거나 주저앉으며 오로지 엄마만 찾는다. 모든 가방을 남편에게 주고 두 명을 동시에 업고 안으려고 해도 안 된단다.
우리처럼 도착 비자를 받기 위해 서 있는 모든 한국인들이 또 우리를 쳐다본다. 인천 공항에서처럼 어떤 어르신이 “엄마 힘들다.”며 도우려고 했으나 씨도 안 먹힌다. 지나가던 인도네시아 경비가 “끄나빠? 왜 그래?” 달래주려 해도 꽃과 사자는 알 수 없는 고집을 부릴 뿐이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를 안은 건지 끄는 건지 알 수 없는 자세로 입국하고 짐을 찾으러 가는데 아까부터 보고 있던 한 한국인 아저씨가 그만 울라며 초콜릿을 내밀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저씨의 의도는 상자에서 하나 꺼내가서 먹고 울음 그치라는 거였는데 웬일인지 꽃과 사자는 한 번 더 자지러지게 울었고 아저씨는 정신없다는 듯 그냥 아이들에게 통째 안겨주고 떠나가셨다.
남편은 미안해서 아니라고 반복했고 초콜릿 상자를 손에 쥔 아이들이 조용해지자 나는 연신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미국과 한국에서 국내선을 한 번씩,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 탔다. 국제선 비행이 너무 힘들었기에 그것만 기억나는데 사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국내선도 만만찮았다.
꽃은 화장실 가자는 나의 사려 깊은 조언을 무시하다가 덴버 상공에서 팬티에 똥을 쌌고, 실컷 자다가 제주 공항에 내린 사자는 왜 비행을 안 한 건지 납득을 못 해서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발리 공항에서는 직원용 복도로 사라진 꽃을 겨우 찾아내기도 했고 꽃과 사자가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자 내가 너무 분노한 나머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장난감 차를 쓰레기 통에 던져 버린 적도 있다.
세계 곳곳에서 꽃과 사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심심하거나 피곤할 때 바닥에 눕는 건 기본이고 무빙 워크웨이 속도가 만만했는지 거기를 역방향으로 걷고 싶어 했다. 심지어 꽃은 생각보다 달리기가 빨라서 그 긴 무빙 워크웨이 끝까지 도망갔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남편과 나 중 한 명이 화장실을 가면 다른 한 명과 밖에서 지긋이 기다리지를 못 하고 꼭 반대 성별의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서 카트를 놓고 쫓아간 것도 여러 번이요 그러다 싱가포르 공항에서는 남편 위치를 놓쳐서 서로를 찾아 한참 헤매기도 했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엔 그저 시간 맞춰 가기만 하면 되었던 공항. 어쩔 땐 시간이 남아돌아 지루하기조차 했던 대기 시간. 시키는 곳에 서서 검사받고 간판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던 그곳. 꽃과 사자와 함께해보니 그런 쉬움 그런 평화로움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