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자전거를 탄다. 세발도 네발도 아닌 두 발 자전거를 말이다. 온전히 본인의 상체 힘으로 균형을 잡고 두 다리로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방향 전환을 하다 몇 번 고꾸라지기도 했고, 아무리 내가 사방을 살피고 있다 할지라도 “Stop first!”라는 내 말을 무시한 채 길을 건너 버리기도 하지만 요즘 같은 여름 저녁, 아이는 매일같이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간다.
물론 아이의 목적은 자전거 연습이 아니라 놀이터에 가는 것이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놀이터까지 걸리는 10분여의 시간은 늘 꿈처럼 아름답다.
아이는 그 작은 발을 쉬지 않고 굴리면서 “I did it”을 수시로 외친다. “I’m doing so good.” 이라든지 “나 잘해.”같은 다른 말은 하지 못하니 웬만한 상황에선 “I did it”으로 통한다.
자전거에 집중하기에도 바쁠 텐데 지나가는 모든 이에게 “Hi!” 크게 인사한다. 그런 어린아이를 보고 미소 짓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설사 어떤 사람이 대꾸 없이 굳은 표정으로 지나간다 해도 딸아이는 개의치 않는다. 한 번 더 “Hi!”하고 자기 갈 길을 갈 뿐이다.
놀이터에 도착하기 직전에 짧은 오르막이 있다. 딸아이는 그곳에서 “I’m sacry!”라며 꼭 멈춰 선다. 처음에는 속상한 건지 힘든 건지 짜증을 많이 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잠깐 서 있다가 ”Walking walking.” 중얼거리며 최선을 다해 자전거를 끌고 걸어 올라간다.
어떤 날엔 딱 한 바퀴만 남겨 놓고 타고 오르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만하면 되겠다 싶을 때쯤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서 잔디밭에 자전거를 세우면서 또 “I did it!”을 외치는 딸의 헬멧을 벗겨주며 “You did it!”이라고 맞장구치는 건 가장 즐거운 일과 중 하나이다.
놀이터에서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나의 흐뭇함은 감출 수가 없다. 작은 공간을 통과해야 하는 곳도 조금 더 힘주고 페달을 굴려야 하는 곳도 아이는 척척이다.
집으로 가는 마지막 남은 도로에서 아이를 뒤에서 자세히 살펴본다. 참 부지런히 굴러가는 아이의 발. 핸들을 꼭 잡은 두 손. 바람 사이로 간간이 들리는 “Almost there.” 보이진 않아도 웃고 있을 아이의 얼굴.
그럴 때면 딸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하던 날이 떠오른다. 저 멀리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뛰 다니는 모습이 어찌나 딴 나라 풍경처럼 느껴지던지.
내 아이는 저렇게 자유롭게 뛰 다닐 수 없겠지.. 저렇게 평범하게 학교 다니지 못할 수도 있겠지 등등 온갖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바라봤던 그 학교를 이젠 딸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니게 되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날들이 함께 타고 있는 자전거에 담겨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무사히 집에 도착한 아이는 본인이 자랑스러워서 또 한 번 “I did it!”을 외치고 집에 뛰어 들어가 아빠와 동생한테 자랑을 한다. ”I did it ride a b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