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내 끊이질 않던 웃음소리와 노랫소리 가득한 현장 속으로
처음 예림 님을 알게 된 건 코케 팔로우 알림 때문이었다. 팔로워 신청을 한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따라가보니 '현생은 작사가'로 소개한 문구 아래 집과 커피 사진이 가득했다. 문득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이 궁금해졌다. 서서히 맺게 된 인연으로 코케 팔로워 중에서 최초로 홈카페 인터뷰이 섭외를 제안했다. K-POP 작사가이자 음악을 듣고 감정을 기록하는 리추얼을 진행하는 뮤직 큐레이터. 집과 커피, 그리고 <음악>, <창작>, <오브제>에 관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녕하세요, 예림 님. 집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코케! (웃음) 인터뷰 제안 주셔서 감사해요.
마침 잘 오셨어요. 내년쯤 이사 계획이 있어서 이 집에서의 마지막 인터뷰가 될 것 같거든요.
그렇군요. 잘 찾아왔네요. (웃음) 집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주방이 굉장히 아늑해요.
이사올 때 주방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 특히 <선반>과 <타일>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여행다니면서 조금씩 사들였던 도구들이 집에 있는 동안 잘 보였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게 '선반'의 역할이었어요. 제가 서양의 부엌 문화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거기서 착안한 게 '타일'이에요. 그리고 서랍별로 용도를 확실하게 주고 싶어서 서랍도 다 짰구요.
'ㄱ자'로 되어 있는 주방 구조도 특이한 것 같아요.
면적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게 'ㄱ자'였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주방과 거실 사이에 '단'을 만들어서 공간 분리를 했어요. 이 단 만으로도 경계가 구별이 되더라고요. 손님들 오시면 자연스럽게 거실에서 주방을 바라보며 서세요. 제가 여기서 커피를 내려 드리고, 맞은 편에 서서 이야기도 나누고. 손님을 맞이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 되더라고요. 덩달아 무대적인 효과도 있고.(웃음) 제가 요리 되게 좋아해서 케이터링도 했었는데. 쇼룸의 역할을 이 주방이 톡톡히 해주더라고요.
이 집은 어떻게 찾으신 걸까요? 예림 님이랑 너무 잘 어울리는데.
집 찾을 때 가장 중요한건 예산이잖아요. 가지고 있는 예산에선 이 구역이 처음엔 안 떴어요. 어느날 갑자기 뜨길래 와서 봤더니 30년 전 인테리어 그대로의 허름한 집인거에요. 그때 제가 제일 원했던 건 <채광>. 그리고 집 주변에 <나무>가 보였음 좋겠다였거든요. 이게 서울에선 힘들잖아요. 제 예산으로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연립빌라가 적당하긴 했는데 그 구조는 최대한 피하고 싶었거든요. 그때 마침 이 집을 보고 너무 허름했지만 맘에 들어서 바로 계약한다고 했어요. 부동산 아저씨가 되게 놀랐어요. 신혼부부가 오자마자 낡아서 도망가는 곳인데 바로 계약한다고 하니까.(웃음)
허름한 집이었다고는 상상이 안 갈 정도로 인테리어를 굉장히 잘 하신 것 같아요.
제 친구 중에 인테리어 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리모델링 돈 조금 들게 하려면 '반드시 부엌과 화장실이 잘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럼 예산을 확 줄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 말을 반대로 들었죠! (하하) 부엌을 다 뒤엎고 화장실도 싹 수리했어요. 여기가 옛날 집이다 보니까 수도 시설이라던지 다락 구조라던지, 천장이 되게 낮았는데 이런걸 싹 고쳤어요. 대신 최대한 돈이 안 드는 쪽으로 색감 있는 가구들로 포인트를 줬어요. 이케아 많이 활용하고.(하하) 저희가 신혼 부부로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1차 목표가 '집을 예쁘게 꾸며서 매거진 촬영을 했으면 좋겠다' 였어요. 집을 꾸미면서 '나는 이걸로 인테리어 블로그를 한 번 써봐야지' 같은 로드맵이 있었는데 실제로 매거진 쪽에서 진짜 연락이 와서 기뻤어요. 그때 또 부랴부랴 집을 꾸미고 채우는 작업도 재미있더라구요.
집이라는 공간을 홈피스(Home-Peace)라고 이야기해주셨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집은 제가 작업을 하는 공간 (Home-Office)이자 저에게 평화로움을 주는 공간(Home-Peace)이란 의미에서 홈피스라고 이야기해요. 집에서 영화 한 편 보더라도 안락한 둥지 안에서 느끼는 안정감을 좋아해요. 손님을 초대하고 함께 대화 나눌 때 또 다른 집의 매력을 느끼기도 하고요.
그럼 나에게 영감을 주는 홈피스 리추얼이 있을까요?
저는 주로 디깅(digging)해요. 의외의 검색어, 생각지도 못한 검색어를 찾는 것에서 출발하는데요. 새로운 홈페이지를 보게 되거나, 알지 못했던 사람의 글을 보게 되거나.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에 영감을 얻기도 하고요. 온라인 세상에서 발견한 조각들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여행 가면 그 공간을 꼭 방문해봐요. 강렬한 인상을 주는 미국이나 호주 같은 대도시의 서점이나 호텔 같은 공간들. 거기서 소장하고 싶은 오브제(objet)를 고이 모셔와서 집으로 들이고.(웃음) 저는 여행을 다녀오면 한 달 정도 물건들을 모아두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거든요. 제게는 충만한 영혼의 힐링이 되어주는 시간이에요.
집은 저에게 평화로움을 주는 공간, 홈피스(Home-Peace)예요.
기억에 남는 커피 한 잔이 있을까요? (꼭 집에서 내려 마신 커피가 아니어도 좋아요.)
여행 갔을 때 그 여행지 숙소 조식에서 마셨던 커피 한 잔이요. 굉장히 맛이 있진 않은데, '낯선 여행지에서 커피가 주는 비일상성'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되게 새벽에 마시잖아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생소한 자리에 앉아, 뜨거운 주전자에서 호스트가 따라주는 커피 한 잔의 풍경이 제 인생에서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때 느끼는 평온함, 자유로움, 해방된 느낌. 너무 삶이 지치거나 일 때문에 힘들 때 커피 한 잔을 스스로에게 따라주다 보면 여행지에서 커피를 마시던 그 장면이 자꾸 오버랩 되는 거에요. 내가 그곳에서 해방감을 느끼던 시간과 집에서 커피를 따르는 모습이 매칭되면서 순간적으로 리프레시를 시켜주더라고요.
제가 늘 좋아하는 커피는 여행지 조식에서 나올법한 굉장히 묵직하고 긴 여운의 루트를 가지고 있는 커피거든요. 여행의 긴 여운과 일직선상에 있는 기억과도 같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가 결국 늘 집에서 커피를 마시려고 하는 이유와도 같고요. 집을 이렇게 꾸민 이유와도 어찌보면 비슷하고요. 치열하게 일에 몰두한 후 폭풍을 다스리는 방법, 제가 집에서 커피 내리는 시간을 사랑하는 이유에요.
그래서 그런지 집에서 커피를 내려주실 때 여행지에서 먹는 느낌이 났거든요.
제가 이 집에서 에어비앤비를 했을 때 항상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커피를 내려드렸어요. 내가 누군가에게 대접하는 로망이 실현될 때 즐겁더라고요. 게스트에게 항상 아침에 몇 시 나가시냐고 물어보고, 아침 드실거냐고 물어보고. 정말 BnB 형식으로 했던 것 같아요. 아침엔 커피랑 과일, 시리얼, 간단한 토스트. 이런 메뉴로 항상 드렸어요. 이 공간과 잘 어울리는 음악 틀어드리고 '보면서 편히 드세요.' 이러고.(웃음) 그러면 항상 손편지 남겨주고 가시더라고요. 저는 그런거 또 모아두고.(하하) 에어비앤비를 한 경험도 저에겐 이 집에서의 든든한 한 페이지에요. 커피라는 것도 어떤 환경에서, 어떤 시간에, 어떤 감정으로 마시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거든요. 원두 가는 소리 부터 집 안을 가득 채우는 커피 향까지.
그러면 보통 커피를 마실 때 어떤 음식이랑 같이 드시나요?
단연 <사과>였던 것 같아요. 사과는 1년 내내 공급 받을 수 있는 좋은 과일이잖아요. 어릴 때부터 아침에 사과 먹는 습관이 있어서 항상 사과를 먹었어요. 예전에는 사과를 너무 좋아해서 빨리 자고 싶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사과 먹으려고.(웃음) 페어링 디저트는 아닌데, <파스타>랑 커피가 진짜 잘 어울려요. 서촌에 두오모라는 식당에서 먹었는데요. 거기는 메인 메뉴를 주문하면 커피를 드실 거냐고 물어봐요. (식후가 아니라요?) 네. 요리랑 커피 같이 드릴까요?를 물어보시거든요. 제 친구들이 거기 가면 커피랑 파스타를 꼭 같이 먹어야된다고 추천해줘서 저도 먹어봤는데 진짜 잘 어울렸어요. 바질 페스토, 고등어 파스타 등 파스타 종류가 되게 다양한데 그 파스타들이 기본적으로 간이 굉장히 세지 않은 편이에요. 원재료의 맛을 많이 느끼게 해주는 자연주의 파스타거든요. 예를 들어서 바질이라 하더라도 자극적인 바질이 아니라. 그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게끔 향이 응축된 파스타. 거기에 묵직하고 진한 맛의 커피를 곁들이니 너무 잘 어울리는거에요. 그때 음식이랑 같이 먹는 커피라는 새로운 페어링을 배웠어요. 제가 추천하는 또 하나의 꿀팁은 <피자>랑 커피 조합이에요. 남편이랑 가끔 아침에 피자 시켜먹는데 커피 꼭 내려 마시거든요. (씬피자? 도우피자?) 씬 피자요. 페퍼로니든 치즈 피자든 마가리타든. 그 토마토 소스랑 진한 맛의 커피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레드와인이 육식과 잘 어울리듯이, 다크한 커피가 요리에 들어간 토마토의 신맛을 많이 눌러주더라고요. 서로 확실히 상승시켜주는 조합인 것 같아요.
집에서 커피를 마실 때 즐겨듣는 플레이리스트가 있나요? 어떤 가수의, 어떤 분위기일까요?
제가 가을을 시작하는 계기로 <캐롤>을 되게 많이 들어요. 가을부터 캐롤을 크리스마스 전까지 계속 틀어놓는 편이거든요. 그리고 커피 내리면서 듣기엔 instrument(악기)가 가미된 재즈풍, Lo-fi (로우파이), 어쿠스틱의 음악을 자주 듣는 것 같아요. 어쿠스틱 기타 선율이 쌀쌀해진 공기랑 잘 어울리거든요. 그리고 더 잘 들리는 것 같아요. 문을 꽉꽉 닫고 살았을 때 보다는 밖의 소음과 적절히 섞였을 때 악기소리가 주는 안정감이 크더라고요.
보통 크리스마스 때 듣는 캐롤을 가을에 듣는다는게 특이하네요. 가을에 듣는 캐롤은 어떤 느낌인가요?
저 여름에도 듣거든요. (웃음) 근데 진짜 365일 듣는데 캐롤을 들으면 일관된 감정을 느껴요. 약간 리추얼이랑도 비슷한데 저에게 리추얼은 <캐롤>인 것 같아요. '아 나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 나야.' 똑같은 곡을 들었을 때 변함 없는 내 상태, 회귀성. 저는 이걸 음악으로 확인하는 것 같아요. 이런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음악들이 각자 있을 수 있어요.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음악이 있다면 오랜만에 들어 보는건 어떨까요?)
치열하게 일에 몰두한 후 폭풍을 다스리는 방법, 제가 집에서 커피 내리는 시간을 사랑하는 이유에요.
집에서 주로 어떤 음향기기로 음악을 들으세요?
저 Boss 미니 블루투스 스피커로 많이 들어요. 저 작은 스피커를 일부러 선반 맨 위에 올려둔 이유가 있어요. 카페에서 듣는 노래 같은 음향 효과가 있거든요. 소리가 튀면서 주는 공감각이 커져요. 음이 퍼지는 걸 앰비언스(ambience)라고 하는데요. 일부러 천장과 맞닿게 올려 놓고 소리가 웅웅 퍼질 수 있도록 해요. 집에 손님들 왔을 때 저렇게 틀어주면 오히려 서로 편해하는 분위기가 되더라고요. 너무 조용하면 손님이 낯선 집에 왔을 때 불편해하거나 어색해질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카페처럼 쉬실 수 있게끔 틀어놓는 것 같아요.
선반 보니까 LP도 많이 모으시던데.
맞아요. 바이닐이 액자 같은 효과가 있어서 전시해두었어요. 자기 전에 안방에서 남편이랑 같이 LP 듣는 걸 좋아해요. LP는 사실 부지런해야 되거든요. 재생시간이 짧기 때문에 계속 바꿔줘야 해요. 좀 섬세한 도구예요, LP는. 신경을 계속 써야되고. 그래서 흐름이 끊기지 않아야 할 때는 무제한 재생이 가능한 다른 음향 기기(보스 스피커, TV)를 사용하고. 그게 아닌 이상 저랑 남편 둘이서 음악을 좀 더 청취하고 싶을 때는 오히려 LP를 많이 듣는 것 같아요. 공들여서 집중하고 경청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어떻게 보면 커피 내리는 것과 비슷하네요. 캡슐커피는 좀 더 쉽게 먹을 수 있는데 드립커피를 손수 내려 마신다는 것은) 맞아요. 사람이 푹 빠져서 아무 생각 없이 기구를 다루고 싶은 시간이 있잖아요. 그 불편함을 굳이 해보고 싶은. 그 행위 자체가 주는 재미있는 시간. 그럴 때는 LP를 꺼내서 듣고 드립 커피를 내려서 마시죠. 굳이 빼서 넣고 또 올리고. 이런 비생산적인 행위가 주는 즐거움이 있는 것 같아요.
음악을 통해 세밀한 감정을 표현하는 작사가. 이 직업을 선택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이게 정말,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직업 전환이었어요. 제가 오랫동안 강의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정말 치열한 전투 현장인 대치동에서 8년 동안 <입시 영어강사>를 했어요. 그러다 결혼 1년 차에 퇴사를 했죠. 강의도 재미있긴 했지만 점점 평생 이 직업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남편이랑 굉장히 오래 연애를 했거든요. 한 10년 연애를 했는데. 이 친구는 계속 작곡가였어요. 원래 음악을 하던 친구였고, 저희의 관계를 지속시켜준 코어는 음악이었더라고요. 연애를 하는 동안 음악을 계속 하는 이 사람이 좋았고, 음악 이야기를 할 수 있는게 즐거웠어요. 이 친구가 계속 커리어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제가 음악적인 힌트를 전달하면서 영감을 받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저 역시 본업인 영어 강의를 하면서도 항상 음악을 모니터링 했던 것 같아요. 계속 관심을 갖고 디깅하고. 이런 삶은 늘 유효했더라고요.
퇴사를 한 후에 사실은 저는 케이터링도 해보고 싶었고 브랜딩에 관련된 일도 해보고 싶었거든요. 제 주변에 놓인 친구들의 직업이 저에게 다 영향을 주더라고요. 저에게 권해보기도 하고. 그런 직업 탐색 기간을 1년에서 2년 정도 가졌던 것 같아요. 그 모태가 이 집이었던거죠. 이 집에서 저만의 컨텐츠가 필요했고, 연습해볼만한 게 이 집에서의 이야기였어요. 그렇게 시작한 것들이 처음엔 <뮤직 큐레이터>였어요. 제가 디깅을 좋아하다보니 누군가에게 음악을 선물하고 알려주는걸 굉장히 좋아했었거든요. 또 강의하던 사람이다보니까 그걸 소개하고 설명해줄 수 있는 부분에 너무 희열을 느끼는 사람인거에요. 저라는 사람이. 그래서 이 음악을 그냥 알려주는게 아니라, 사실 이 가수는 이런 비하인드를 가지고 있어. 이런 스토리텔링을 하는걸 되게 좋아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죠.
계속 저만의 스토리텔링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남편이 저보고 어느날인가 작사를 해보지않겠냐고 권하는거에요. 원래도 하긴 했었거든요. 남편이 습작처럼 자기 음악을 할 때 제가 작사를 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작사가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처음에는 제가 글쓰는 걸 좋아하니까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쉬워보였는데요. 작사라는 영역은 훈련이 필요한 작업이더라고요.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프로작사가>에 굉장히 많이 투영되어있었어요. 첫째는 전략적인 스킬과 시장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 둘째는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와 스토리텔링을 원없이 해볼 수 있겠다는 점에서요. 프로작사가는 클라이언트가 있고 가수에게 딱 맞는 가사를 전달하는 역할이라서 전략적인 스킬과 시장분석이 필요한 직업이거든요. 또, 내가 이야기해보지 못한 톤앤매너로 다양하게 써볼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서 작사가가 정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사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때부터 많은 데모를 받았는데 사실 처음에는 다 안팔렸죠. 안 팔리는게 사실 더 많아요.(웃음) 그러다 1년 정도 지나니까 서서히 팔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처음 데뷔를 한게 아이돌 곡인 <여자친구의 'Truly Love'>였어요. 그렇게 쭉 지금까지 열 몇 곡 정도 저작권이 쌓였고 그 후부터 '나는 작사가에요.' 라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 시점이 사실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어요. 세밀한 감정을 표현하는 작사가라고 표현해주셨는데 진짜 맞아요. 그리고 세밀함 밑에는 치열한 전략 분석과 리서치가 동반된, 어떻게 보면 <하나의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하고 유사한 것이 프로 작사의 개념이거든요. 아티스트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아티스트는 자신의 이야기, 내면의 이야기를 오롯이 투영하고 그 모습을 계속 대중들에게 보여나가는 과정에서 명성과 사랑을 받는다면 저희는 좀 더 뒤에서 분석하고 서칭해서 이 가수에게 최적화된 워드를 찾아주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게 되게 재미있더라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작사를 하는 과정이 브랜딩과도 비슷하다고 하셨는데요. 작사가이면서 동시에 브랜딩 작업(브랜드 네이밍 짓기)을 하시는 것도 저는 되게 신기했거든요.
그런 브랜드 네이밍 같은 작업들이 곡의 제목을 짓는 것과 비슷해요. 음악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결국 마지막의 한 끗을 만드는 것은 <제목>, 또는 그 노래의 가사 중에서도 어떤 <특정한 멜로디에 들리는 특정한 가사>거든요. 그 한 두 구절의 가사가 사실은 대중을 굉장히 움직이게 하는 포인트죠. 흔히 <펀치라인>이라고 하는 것들. 이 펀치라인 하나가 결국은 이 가수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동일할 때 '이 곡이 정말 좋다.', 혹은 '이 브랜드가 정말 괜찮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부러 의미심장한 제목을 쓸 때도 있거든요. 하지만 그 의미심장 역시, 곡을 들어봤을 때 '아 이래서 이러한 가사를 쓰고 이 제목을 썼구나' 느껴질 수 있도록 일관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남들에게는 없는 차별성, 의외성을 만들려고도 노력하는 것 같고. 데뷔곡인 <여자친구의 Truly Love>의 경우에도, 원래는 그게 제목이 아니었어요. 원래는 '내 이야기'라는 제목이었는데 이걸 바꿨어요. 알고 보니 다른 걸그룹이 그 제목을 했었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피해가야 되는 거죠. 가사 안에 'Truly Love'가 굉장히 잘 들리길래 그게 저절로 제목이 되었어요.
제가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결국 제가 좋아하는 코어 가치와 저에게 주어진 기회에서 찾았던 것 같아요. 그게 딱 맞는 직업이 작사가였던 것 같고. 제게 주어진 기회 속에서 기회를 잡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근데 좋아하시는 일을 보면 케이터링, 지금 하시는 작사, 브랜딩도 그렇고.
공통점은 '클라이언트가 존재하고 맞춤형 창작을 한다'는 점인 것 같아요.
그게 저는 굉장히 재미있더라고요. 클라이언트 의도 파악 되게 좋아하고. 거기에 맞춰서 내가 갖고 있는 정보의 pool 안에서 끄집어내는 작업이 주는 희열이 큰 것 같아요. 뮤직 큐레이션도 물론 그 안에 제 취향도 들어가 있지만 그걸 설득하는 과정도 즐거워요. 그 설득이 나름 논리적인, 완전 내 자아의 취향은 아니라 누구나 '아~'하고 납득할 수 있게끔 만드는 과정. (이전에 하셨던 입시 영어 강사와도 비슷한 일인 것 같네요. 학생과 학부모의 반응을 계속 봐야 하니까) 맞아요. 제가 작사를 하면서 K-POP이란 시장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아요. 어떻게보면 또 다른 정글을 선택한 거거든요. K-POP은 가장 큰 음악산업이고 가장 대중적인 타겟을 찾고 있는 곳이죠. 이전에 영어 강사를 했던 대치동이란 교육 현장도 K-POP과 비슷한 환경이고요. (완전 대중교육시장) 맞아요. 그게 그 당시의 저에게도 잘 맞았고. 이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엑기스를 찾아내지 않았나 싶어요. 저도 처음에 '너무 다른 직업 (입시 영어 강사에서 작사가로)을 선택한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는데, 일을 해나가는 결을 봤을 때 총체적인 레이어는 비슷하더라고요.
작사가는 클라이언트의 선택을 받아야만 하는 직업인데요. 그 과정에서 공백기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때 생기는 불안감이나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시나요?
해외도피여행.(하하) 근데 사실 반작용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8년 동안 대치동에 있을 때에는 거의 쉬는 날이 없었거든요. 매년 학생들이 학교를 안 가는 명절, 방학이 제일 바쁠 때라서. 그래서 일하는 8년 동안 거의 휴가가 없었고 해외를 안나갔어요. 그 사이에 쌓인 결핍과 갈망이 너무 커진거에요. 그래서 퇴사하는 동시에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죠. 정말 한 몇 달씩 해외에 나가있고 남편하고도 시간을 많이 보내고. 그렇게 여행으로 저희의 불안과 긴장을 풀면서 밖을 쳐다 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생각보다 작은 세계 안에서 너무 아둥바둥 경쟁하려고 했구나. 계속 밖으로 나가면서 더 넓게 보려고 노력하고요. '아 이게 답은 아니야. 여기서 우리가 만일 한 번은 실패했어도 결국은 또 이런 큰 세계가 있으니까. 우리는 또 다른 삶을 꿈꿀 수 있어.' 이렇게 계속 위로했던 것 같아요. 여행, 그리고 이 집이 저에게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장치였죠. 홈피스(Home-Peace)가 주는 안정감과 평화로움이요.
제가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결국 제가 좋아하는 코어 가치와 저에게 주어진 기회에서 찾았던 것 같아요.
사이드 커뮤니티인 초안클럽 에서 어느 카페 브랜드의 플레이리스트를 기획 중이신데요.
커피, 카페, 음악이 주는 연결고리와 이 브랜딩에서 중요다고 생각하는 예림 님만의 포인트가 있을까요?
저는 <청각을 시각화>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카페라는 공간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을 기록하고 소장할 수 있어야 한다.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경험하는 것도 중요한데, 그 경험을 남겨두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제가 진행하는 리추얼에서는 음악 글쓰기 후 음악 영수증(Ritual Music Blend)를 드리거든요.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것을 반드시 시각적으로 소장할 수 있는 단서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게 커피, 카페, 음악이 주는 포인트인 것 같아요.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누군가에게 이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구전되어야 될 것 같거든요. 지금 시대에 가장 강력한건 시각이라고 생각해요.
카페 맞춤형 플레이리스트를 기획하실 때 어떻게 테마를 정하고 어떤 과정으로 리스트를 짜시나요?
일단 그 공간의 무드를 되게 많이 봐요. 진행한 카페 중에 로우키 같은 경우는 내부 인테리어가 굉장히 무겁고 묵직한 소재로 되어 있거든요. 전체적으로 나무를 많이 활용해서 어둡고 약간은 중후한 느낌이 드는 곳이에요. 저는 여기에 주로 베이스라인 음악을 틀었어요. 너무 날라다니거나 튀는 음악은 안 틀고요. R&B라던가 Alternative라던가. 너무 시끄럽거나 노이즈가 강한 메탈 음악도 피하고요. 낮게 깔리는 베이스가 충실한 음악들을 많이 넣었죠.
반대로 공간이 환하고 밝거나 쾌활한 분위기라면 저는 EDM이나 좀 더 가벼운 느낌의 DJ 음악들을 더 많이 넣었을 것 같아요. 보이싱도 훨씬 가볍고 young한 보컬들 많이 넣었을 것 같고요. 플레이리스트 장르를 고민하는건 결국 공간이 주는 인테리어들에 많은 영향을 받아요. 사람들이 받는 인상을 똑같이 생각하고 그걸 음악 장르로 구현하는 것 같고.
혹은 계절성. 겨울에는 재즈를 많이 튼다거나. 그런 클래식한 불문율은 어느정도 지키는 것 같아요. 정통적이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노래들을 한 50% 넣는다면, 나머지 50%는 공간이 주는 무드에 충실한 노래들. 가끔 제가 생각하기에 이건 귀에 확 튀었으면 좋겠다 싶은 노래들을 1~2곡 정도 섞어두기도 하고요. 그렇게 100을 나눈다면 기본에 충실한, 이 공간에 충실한, 그리고 가끔 제가 소개하고 싶은 의외성 있는 음악. 이런 기준으로 플레이리스트 40곡 정도 짜는 것 같아요.
그럼, 코케 구독자 분들을 위한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너무 많은데... (웃음)
(그녀가 코케를 위해 고른 플레이리스트는 스포티파이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
이외에도 [존 메이어의 Why You No Love Me] 추천해요. 화려한 도시의 밤을 느끼게 해주는 시티팝이 유행했다면, 요즘엔 수면위로 올라오는 장르 '요트록(yacht rock)'이 있거든요. 더 한껏 게을러질 수 있게 요트 위에서 바람을 느끼며 항해하는 기분이에요. 휴양지 리조트에서 느낄 법한 릴렉스한 느낌. 차분해지면서 살짝 들뜬 기분도 섞여있고요. 이 기타 사운드가 지금 가을과 굉장히 잘 어울려요. 아, 가을 하니까 생각나는데 [아이유의 가을아침]. 그게 지금 이 계절이랑 참 잘 어울리더라고요. 변함없이.
커피 한 잔처럼 단순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즐거움과 낭만,
그리고 휴식의 기분을 선사할 곡들로 채웠습니다.
가사를 통해 사물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작사가>와 <오브제>가 지닌 의미는 꽤 밀접한 것 같아요.
예림 님의 집에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오브제 (=소품, 물건)가 있을까요?
집 전체가 무채톤에 가까워서 곳곳에 색감 있는 오브제를 배치하는 편인데요.
첫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오브제는 Wine Decander.
와인 디캔더인데 저는 사실 손님용으로 커피를 내리거나 아이스 티를 만들 때, 혹은 화병으로 써요.
제가 좋아하는 포틀랜드 블로거가 있는데요. 그 블로거의 아이템이었어요.
사진으로 봤을 때 너무 예뻐서 디깅에 디깅에 디깅을 통해 이베이에서 찾아내자마자 당장 구매했죠.
두 번째는 Tea Pot.
커피 마실 때 좋아하는 아이템 중 하나인데, 제가 25살 때 스리랑카 여행에서 사온 2만원짜리 주전자예요.
스리랑카가 차로 굉장히 유명해서 이런 주전자가 많거든요. 저는 주로 커피 주전자로 많이 써요. 서버에서 바로 따르지 않고 주전자로 굳이 옮겨서 커피를 따라요.(웃음) 커피를 따르는 행위가 사치로우면서도 수고로운 느낌을 들게끔 하거든요. 손님이 오셨을 때도 주전자를 골라 따라 드리면 대접하는 느낌도 들고요.
마지막으로 Incense item.
포틀랜드 직구로 산 건데 향을 피우면 여기 파이프에서 향이 나와요. 커피 마시면서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음악과 인센스 향으로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죠.
마지막으로, 지금의 예림 님을 잘 나타내는 노래 구절이나 단어가 있을까요?
백예린이 부른 <We are all Muse> 라는 노래를 꼽고 싶어요. 사실 백예린의 노래는 아니고 The BLANK shop의 'WE are all muse'라는 노래가 있거든요. 그걸 백예린이 불렀어요. The BLANK shop을 잠깐 이야기해드릴게요. 재즈 피아니스트로 되게 유명한 '윤석철트리오'의 윤석철 님이 프로듀싱도 되게 잘하시거든요. 그분이 'Tailor'라는 앨범을 냈는데, 테일러가 옷을 맞춤 제작해주는 재단사를 의미하듯이, 각 트랙을 다른 아티스들과 콜라보하고 그 아티스트들에게 맞춤 음악들을 한 땀 한 땀 장인정신으로 만든 앨범이에요.
여기서 백예린이 부른 노래, We are all Muse 중에 이런 가사가 있어요. 이제는 알고 있잖아. <작지만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저는 이 부분 되게 좋아해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은 다 별거 아닌 사소한 것들이거든요. 근데 그게 저에게는 되게 중요한 힘이에요. 제가 일을 하기 위해서 휴식할 수 있는 작은 요소들. 그 중엔 커피도 있고, 요리도 있고, 음악도 있고. 그 작은 일상을 충분히 즐기다 보면 다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다시 일하러 가고 싶고. 그런 평온함과 열정을 번갈아 지속할 수 있는 힘들이라고 생각해요. 이 부분의 가사를 들었을 때 이 노래 제목처럼 <결국 나의 뮤즈는 내가 아닐까?> 나의 영감은 나에게서 오는 거고 내 삶의 뮤즈는 결국 나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하는게 맞는지, 스스로 확신을 갖기 위한 답은 결국 제 안에서 찾게 되거든요.
치열한 경쟁 구조에서 있다 보니 항상 비교하는게 버릇이 되기도 했었어요. '내가 모자른 점은 무엇일까. 얼른 분석해보자.' 이런 과정에서 불안이 쌓이고, 긴장이 높아지고, 결국 번아웃도 왔었죠. 이런 불안들을 잠재울 수 있는 시간들이 제겐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기 위해 지금 제 삶에서는 <작지만 큰 힘이 되는 것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찻 잔을 고르고, 원두를 갈고, 포트로 커피를 내려 마시는게 사실은 별거 아니거든요. 돈을 버는 생산적인 삶에서는. 돈을 버는 것은 중요하지만,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 없이 돈만 많이 벌다 보면 너무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일부러 집에서는 비생산적인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뮤직 큐레이터도 당장 내 자산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꾸준히 시간이 지나고보면, 이러한 시간, 경험들이 중요한 자산이 되더라고요. 앞으로도 저는 계속 이런 일을 할 것 같아요.
진짜 진짜 마지막. 내 삶이라는 곡에 5년 뒤 어떤 가사를 적어내려가고 싶으신가요?
이 질문을 보는데 굉장히 설레면서 고민되더라고요. 제가 직접 적어서 나중에 메일로 보내드려도 될까요?
(그녀가 한 자 한 자 진심을 다해 적은 가사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커피를 내리는 시간은 제게 해방감을 느끼게 해요. 일에 몰두한 후 폭풍을 다스리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코케가 예림 님에게 추천한 원두 : HAUS BLEND (by 베르크 로스터스)
묵직하고 긴 여운의 커피를 좋아해요. 여행지 조식에서 나올 법한 굉장히 진한 맛.
이 패키징을 보자마자 마치 베를린에 온 것 같이 설레더라고요.
본 인터뷰는 <집으로 카페를 들인 Cafe-in 이야기>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Original Content by ko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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