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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Jun 14. 2021

Since 1977, 고기 인심 좋은 설렁탕 노포

서울시 중구 을지로 2가 이남장

조선시대에는 변변한 도로 정비가 되지 않았던 진흙길이었던지라 멀리서 보면 구릿빛이라 하여 <구리개>라 불렸던 곳이 바로 중구 소공동으로부터 신당동까지 이어지는 현재의 <을지로>이다.


당시 황금정통 거리 (출처 : 역사문제연구소)

일제 강점기 당시 덕수궁 대한문 광장부터 구리개를 지나 광희문에 이르는 신작로를 만들고 황금정통으로 이름 붙였다. 길이 좋아지면 사람의 왕래가 늘어나고, 사람의 왕래가 늘어나면 상권이 발달하기 마련이다. 이 당시 사대문 안 종로에 몰려있던 상점들이 을지로로 이전하며 지금의 명동까지 이어지는 상권 형성의 초석이 되었다.


을지문덕 장군 표준영정

해방 이후 일본식 동명 정리 사업에 따라 고구려 명장인 <을지문덕>의 성을 따와 을지로가 되었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한국 화교는 1882년 임오군란을 진압하기 위해 조선에 들어온 청나라 군인들과 상인을 시작으로 본다. 당시 청나라 장수 오장경의 군대가 주둔한 곳 중 하나가 바로 지금의 명동 중국 대사관 자리이다.


향후 중화제국 황제에 오른 원세개(위안스카이)

또한 후에 중화제국의 황제까지 오르는 원세개가 십여 년간 머물며 조선의 국사를 쥐락펴락했던 곳 역시 이 곳이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향 사람끼리 뭉쳐 산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황금정통 인근 지역은 중국인 집단 거주촌이 되었는데, 이들의 기를 누르고자 수나라 양제의 백만 대군을 물리친 고구려 살수대첩의 영웅, 을지문덕의 성을 따온 것이다.


1970년대 세운상가 모습

거리의 이름을 잘 지은 덕분인지 을지로는 대한민국 경제 개발 시기에  각종 기계공구, 건축 자재, 인쇄와 제지 등 제조업의 중심지로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특히나 을지로 세운상가는 한때 이 건물을 털면 탱크와 인공위성까지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개발시대 최고로 돈이 넘쳐흘렀다던 을지로 안쪽 골목에 자리한 이남장은 1977년 개업하여 어언 40년이 훌쩍 넘은 노포이다. 워낙 이 거리에 치이는 것이 노포라 그런지 깨끗하게 잘 정돈된 업장을 보노라면 팔순 노인분들 자리한 양로원에 앉아있는 젊은 칠순의 중년 느낌이다.


한우 양지, 우설, 도가니와 사골을 넣어 꼬박 이틀을 끓여낸  집의 설렁탕은 "진하다"라고 표현하면 왠지 죄짓는 기분이 들만큼 "찐하다". 특히나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가을께  집의 설렁탕  그릇을 들이켜면 독감 예방주사를 맞는 기분까지 든다.


가벼운 점심으로 방문했다면 보통으로 충분하지만, 반주 한잔 겸한 방문이라면 꼭 설렁탕(특)을 추천한다. 다른 국밥 식당처럼 고기가 좀 더 들어간 정도가 아니라 고기가 통째로 들어가 있어 고기 자르는 용도의 가위와 집게를 따로 주신다. 이 한 그릇이면 아무리 고단했던 하루도 사르르 녹아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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