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구 인사동12길 1, 「심우방」
우리 속담에 '못 생긴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라는 말이 있다. 곧게 자란 나무는 집의 서까래가 되기 위해 베여 나가는데 구부러진 나무는 쓰임새가 없어 거목이 될 때까지 끝까지 살아남아 선산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대부분의 노포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식당일이란 것이 본디 「남의 밥」을 차려주는 일인 데다 새벽에 일어나 장을 보고 저녁 늦게까지 고된 육체노동을 해야 하니 불과 이삼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식당으로 먹고살만해지면 가게를 넘기고, 부동산 개발로 보상을 받으면 가게를 접었더랬지 그 당시 '좋은 목에 자리한 장사 잘 되는 식당'이 대를 이어서까지 단일 혈통으로 노포로 남은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1990년대 초반 무렵 개업해서 어언 30여 년의 시간을 꽉 채운 인사동의 「심우방(尋牛房)」이란 전통 찻집에 대한 감상이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기발한 상호도 아니요, 2층에 자리하고 있는 데다 간판도 보잘것 없이 소박할 따름이니 우연찮게 지나가다 들릴 이도 그다지 없는 이 작은 찻집이 문득 인사동의 「못 생긴 소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우방(尋牛房)」이라는 상호 역시 멋들어졌다.
독립선언을 발기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이시자 우리에게는 「님의 침묵」이란 항일시로 유명한 만해 한용운 선생님께서 기거하다 돌아가신 성북동의 북향 한옥집의 사저명도 바로 「심우장(尋牛莊」이다. '심우장'이란 명칭은 선종(禪宗)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다.
심우방 역시 주인장이 '잃어버린 나를 찾는 수행의 과정'으로 차를 끓여 파는 곳이란 의미를 담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인사동은 조선시대 그림을 그리는 화공을 관리하던 관청인 「도화서」가 소재했던 곳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고서화과 고가구, 필방 등을 판매하는 가게와 예술인들이 술과 인생을 노래하던 음식점과 찻집, 미술 작품들을 전시하던 갤러리로 가득했던 공간이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인사동의 가게 상호조차 「머시 꺽정인가」,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 「싸립문을 밀고 들어서니」등 예술이 넘쳐났고, 양키 문화의 아이콘인 「스타벅스」가 전통 찻집 즐비한 인사동 거리에 들어선다는 것만으로도 경을 칠 일이라고 뉴스거리가 되었던 시절이다. 결국 영문이 아닌 한글 간판을 달고 입점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긴 했지만..
전통과 예술이 넘쳐났던 인사동이 어느 순간 '복합 문화 거리'라는 미명으로 개발되기 시작하더니 문방사우와 예술인이 가득했던 이곳은 Made In China 공장제 저가 제품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했던 자리에 전통이 빠지니 국적불명의 거리가 되어버렸고, 문화가 채웠던 공간을 상업이 메꾸기 시작하니 비(非)문화 거리로 전락하며 앙화(殃禍)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찬 바람이 불어 모기도 입이 돌아간다는 처서가 지난지 한참이나 여적 무더위가 가시지 않아 청해 마신 것이 바로 「수정과」이다. 식혜와 더불어 우리네 대표적인 전통 음료이긴 하나 대부분 대중이 선호하는 맛을 내기 위해 계피와 시나몬 가루를 섞고, 설탕을 많이 사용하여 과한 단맛을 내는데, 이 집은 그 옛날 방식대로 계피나무 껍질과 생강을 직접 끓여 자연적인 맛을 낸다.
개인적으로 인사동은 마음의 빚이 있는 공간이다.
시골 농촌 마을에서 올라온 촌놈이 서울 생활을 시작하며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리다 95년 어느 비 오는 날, 인사동 거리에서 올라오는 흙냄새에 지극한 안도감과 행복을 느꼈더랬다.
이 거리에 그 당시 영업을 했던 찻집이 건재한 것만으로도, 그 시절을 기억하는 1세대 주인장이 30여 년이라는 세월을 머금고 자리를 지켜주시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더랬다.
언제고 다시 이 찻집에 들리게 되면 주인장 여사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다.
"그래서 이젠 잃어버린 소를 찾으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