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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콩 Aug 15. 2021

밝게 다시 태어날 고양이

明. 고양이를 키우게 된다면 해사라고 부르겠노라 다짐했건만 이 검은 고양이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올여름 태어난 명은 묘생의 절반을 아픈 채로 보냈다. 당장 오늘 죽어도 삶에 미련 없어 보이는 녀석은 이틀째 먹지도 않고 내리 잠만 잤다. 명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처럼 느껴지던 밤. 네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기왕이면 밝게 다시 태어나라고, 죽을지도 모르는 녀석을 향해 말했다.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 明은 지금 내 옆에 누워 잠을 잔다. 700g의 작은 몸으로 숨을 쉰다. 배가 위로 솟았다가 아래로 꺼지는 움직임은 이상하리만큼 위안을 준다. 규칙적인 호흡을 보면서 어쩐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명을 만나기 전에는 동물이 미동도 없이 잔다고 생각했다. 명의 꿈속은 알 길이 없지만, 자는 동안에도 꼭 무언가를 듣고 달리는 것처럼 귀를 움직이고 앞발을 찬다. 그러면 나는 명이 넓은 들판을 딛고 지평선을 향해 도약하는 상상을 한다.     


그렇다면 나의 잠. 잠에서 깬 나는 이따금 처량하다. 아침은 내가 나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다. 완전하지 않은 나로 예측불허의 세상을 살기란 어딘가 불안하다. 하지만 요즘 아침엔 천장을 보지 않는다. 그저 바닥을 밟고 문고리를 당긴다. 나를 보는 명이 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명은 이쪽으로 다가온다. 한 뼘 남짓한 몸이 다리 사이를 천천히 스치고 지나간다. 발끝에 머리를 비비고는 그대로 배를 보이며 눕는다. 주저 없이 애정을 표현하는 순수한 몸짓은 내게 용기를 준다. 내 손에 제 몸을 온전히 맡긴 채 골골 소리를 내는 고양이. 명의 믿음은 나 자체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명을 품에 안으면 심장 하나를 손에 쥔 것처럼 따뜻하다. 빠르고 세차게 뛰는 심장으로 자기 몸의 모든 부분을 조율해가는 새끼고양이. 나는 경이로운 박동을, 정직하게 살아가는 한 생명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와 한여름을 지낸 이 고양이에게 더 이상의 고단함은 없기를. 명은 평생 가족을 찾아 새 이름으로 살아가겠지만, 특유의 명랑함은 간직하리라.          



밝은 나의 친구, 명을 떠나보내며.

2021. 08. 15.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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