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그늘이 다가오면 크루즈 여행을 떠나라고 했다. 적어도 그 여행 동안은 크루즈의 매력에 빠져 삶의 애착이 깊어진다. 바다에 떠가는 크루즈에서 보는 세상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처럼 자유로움을 느낄 것이다.
아침에는 피곤해진 몸을 배에 맡긴 채 긴 의자에 누워서 책을 보거나 맛있는 오수(午睡)를 즐긴다. 선글라스 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행복한 색깔로 치장이 되어 있다. 또 다른 일행은 분주한 뭍 여행으로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면서 크루즈의 일정은 다른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해가 저물면 멋있는 음악이 흐르고, 화려하고 맛있는 진수성찬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뇌는자유로운 상태가 된다. 누군가 다가와 춤을 제안한다면 그 날밤은 '블랙잭'이 터진 날이다. 그래서 인생은 즐거운 것이리라. 쾌락은 즐거움을 노예로 만들어 병 들어가던 육신은 잠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되는 착각에 빠진다.
찌들었던 삶에서 탈출을 위해 '라스베이거스'로 간다. 황량한 도로를 따라 끝없는 지평선을 달리다 보면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기루를 보면서 쾌락의 바다로 빠져든다.
석양이 먼 산을 불태우면서 길은 거대한 악마 소굴로 변해간다. 네바다주 경계선이 보이면서 저 멀리 불빛들이 점점 다가온다. 마음은 이미 라스베이거스의 품속으로 들어가 있다.
화장을 한 많은 여인네들이 내게로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다. 두리번거리는 시선을 감추고, 어느덧 한 여인의 품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수많은 슬러트머신들이 화려하게 불을 뿜고, 룰렛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테이블 주변에 뒷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가끔씩 '블랙잭'의 환호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오늘 밤은 내 것 인양 두 팔을 높게 벌린다.
창문도 시계도 없는 세상에서는 24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 영혼이 죽지 않고 영원할 것 같은 착각 속에서, 화려한 불빛에 취해 눈과 손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느려지는 눈동자는 하나씩 비어 가는 의자를 보며, 망각했던 현실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가득했던 칩은 반대편으로 이동해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아쉬운 이별을 고하고 있다. '혹시'라는 단어는 이미 멀어져 가고, 현실만 테이블 바닥에서 굴러 다닌다.
쾌락에 지친 심신은 피폐해져서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모습으로 황량한 사막을 달리고 있다. 저물어 가는 해를 보면서 지난밤의 즐거움도 이제는 무거워진 어깨만큼이나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찬란했던 야경이 어두움으로 변해가면서,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로 변신했다. 라스베이거스 문에는 천당과 지옥의 문고리를 가지고 있어서, 들어갈 때는 천당이었지만 나오는 순간 지옥으로 떨어진다.
라스베이거스는 말한다. 세상에 고통보다 더 좋은 즐거움은 없다고, 그리고 삶에서 허상이라는 공짜는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