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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읏 Feb 03. 2022

틱틱붐, 이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당신에게 예술이 뭐냐고 물으면 저는 이 영화로 답하겠어요.

  ※본 게시물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조금 포함하고 있습니다.


조나단 라슨과 영화 틱틱붐에 대한 나의 존경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의 후기이다. 영상은 내 유튜브에 있다.



나에겐 트라우마와 같은 영화가 두 편 있다.

하나는 타이타닉(1997)고 다른 하나는 페임(2009)이다. 타이타닉은 모든 게임의 닉네임으로 정하고 피아노로 연주할 만큼 좋아한 영화지만 대형 재난영화기도 해서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던, 말 그대로 트라우마인 영화다. 특집 영화로 틀어줘도 다시 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인 페임은 예술하는 작가를 꿈꾸던 당시의 내게 제일 피하고 싶어 하는 주제들과 미래들만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줘서 트라우마를 안겨줬다. 그렇다, 페임은 예측하기 힘든 미래를 향해 자신을 던지는 예술가(혹은 지망생)들의 얘기이다.


페임에 대해서 짧은 설명을 하자면 뮤지컬 영화고 예술학교에 진학한 저마다의 꿈을 가진 청춘들이 나온다.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모르던 사람도 있고, 확실히 알지만 길을 모르는 사람도 있고, 재능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 의외의 길을 찾은 사람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보여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11UPOQaBTBc

Fame - This is my ife


이 영상을 보고 끌려서 영화를 보러 간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가 못 만든 영화다, 참 별로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를 목표로 뒀던, 예술계에 나름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것만큼 있는 그대로 그려낸 작품이 있었나 싶다.(물론 화려한 볼거리와 멋진 노래는 계속 나온다.) 일부의 성공한 예술가들을 제외하고 많은 예술가(지망생)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이 꿈꾸는 미래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 영화처럼 혹은 과거의 나처럼 말이다. 페임을 자학용으로 계속 봤을 때 나는 내가 가진 재능에 대해서 한창 고민을 하고 있었다. 꿈만 가득하고 그걸 이룰 방법도 현실적인 계획도 없던 내게 영화가 묻는 거 같았다. '너는 이들만큼 도전하고 있니? 혹은 재능을 가지고 있니? 네가 이루고 싶어 하는 꿈은 정말 네게 맞는 거니?' 어떤 영화는 위험요소 하나 없이 깊은 내상을 남기기도 한다.


이쯤에서 틱틱붐의 이야기를 해보자. 틱틱붐은 브로드웨이에 새로운 획을 그었던 조나단 라슨(렌트 원작자)의 자전적인 뮤지컬이며 8년 동안 제작을 감행해온 뮤지컬 슈퍼비아의 워크숍을 앞두고 있다. 수많은 거절에도 불구하고 열정 하나로 열악한 환경에서 꿈을 향해 달려가지만 여전히 점칠 수 없는 성공과 이젠 자신과 다른 길로 가기로 한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초조함에 시달린다. 그 나름의 큰 장애물을 미뤄두고 워크숍을 성공리에 끝냈지만 페임처럼 슈퍼비아는 제작되지 못하는 좌절을 또 겪게 된다. 나는 이곳에서 또 다른 나를, 그리고 트라우마를 발견했다. 마치 페임을 보며 꿈이란 것에 대해서 고민하던 그때처럼 말이다.(물론 조나단은 이 실패를 딛고 일어서 틱틱붐을 성공시키고 렌트라는 큰 성공을 얻게 된다.)


그와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같은 상황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 초반에서부터 조나단에게서 여러 순간의 나를 봤다. 보장되지 않은 미래를 꿈꾸는 나, 어설픈 재능을 응원받던 나, 이젠 그만 포기하란 소리를 듣던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못했던 나. 페임보다 더 디테일하게 비슷한 형태의 트라우마가 나를 짓눌러서 Johnny can't decide까지 보고 내 마음을 추스르느라 한 달 동안은 영화를 이어 보지 못했다. 아물어가는 줄 알았던 흉터가 다시 덧났고 온 몸이 찔린듯한 고통에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없을 거 같았다. 영화는 비교적 나의 삶과 분리해서 쉽게 즐기던 취미 중 하나였는데 이런 식으로 불시에 깊게 찔릴 일인가? 내 몸의 반쪽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애써 저버렸던 모든 것들이 마술처럼 다시 살아났다. 틱틱붐을 마치지 않고 외면해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영화를 다시 재생시켰다. 그것은 훌륭한 선택이었고 Louder than words에서 나의 행동에 확신이 섰다.


Louder than words란 노래는 영화가 끝나면서 나오는 넘버이다. 이 곡의 전주가 나올 때 틱틱붐의 성공 후, 렌트의 성공을 보지도 못하고 죽었다는 내레이션이 나와서 마치 이 노래가 조나단의 유언처럼 들릴 수 있을 만큼 감정이 고조된다. 하지만 내가 감동받은 것은 그 점이 아니다. 이 노래의 가사를 보자마자 뭐에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미안하지만 가사는 직접 찾아보길 바란다.) 작가를 하고 싶어 하던 어린 내가 떠올리고 노트에 빼곡하게 적었던 생각들, 결국 사장된 아이디어들이 이 가사에 나오고 있어서 영상을 보는 내내 깜짝 놀랐다. 남의 입을 통해 들은 말 중에 이렇게 내 말 같은 노래를 들은 건 이게 처음이었다. 답도 하지 못할 어리석은 질문이라며 책장 어디에 끼워놓고 잊고 지냈던 것들을 조나단은 이 노래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답까지 한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조나단의 언어로 말이다. 포기하면 빠른 걸, 다른 쉬운 길도 많은데 예술이 왜 필요해? 왜 그걸 놓지 않아?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을 내놓은 것이다. 예술은 세상에 생기는 수많은 질문들이 의미 없지 않음을, 그것에 답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끊임없이 사유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수단임을 다시금 일깨워 줬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지금까지도 그때 느낌 여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게 됐던 아주 최초의 감정이 다시 생각났다. "가슴에 뜨거운 불씨 하나를 들인 느낌" 이걸 하지 않고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그가 했던, 그리고 나도 해본 적 있는 고뇌가 영화의 곳곳에 서려있는 것이 보여서 말 그래도 미칠 거 같았다. 이 영화가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조나단 라슨이건 틱틱붐 크루건 누구든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영화를 보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는 경험이 근 몇 년간 없었는데 틱틱붐이 내게 그런 경험을 준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더 쉽게 빠져들 수 있는 비극이란 감정에 매몰되지 않길 바란다. 비극에 집중하는 것은 또 다른 비극을 초래한다. 그것은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지, 그가 이룬 것들의 가치를 변색되게 한다. 조나단이 시작한 불꽃이, 그가 일궈놓은 꿈과 이상이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 같은 사람에게 (고통을 동반한)좋은 자극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영화가 이런 경험으로 다가왔으면 하는 소망이다.


지금도 나는 나의 트라우마나 좌절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틱틱붐에서도, 페임의 실패한 예술가들조차 자신만의 길을 찾아 계속 정진한다. 나도 그 길을 따라 걷게 될 것이란 막연한 확신이 들었다. 예술을 왜 사랑하지? 나는 왜 포기하지 못하지? 당신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야?라고 묻는다면 나는 틱틱붐으로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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