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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읏 Jun 17. 2021

우리 다시 떠나볼까?

추억을 다시 돌아볼 여유도 없을 때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당시 타고 갔던 아시아나를 그려보았다. 여행 중 이 순간이 제일 떨리는 거 같다. 여행이 시작되기 직전의 순간 말이다.


 2주간 서유럽을 여행하며 여러 나라와 미술관을 거쳤지만 내셔널 갤러리에서 받은 충격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친구와 그때의  추억에 대해서 얘기를 하며 언젠가 우리에게 또 기회가 생긴다면, 이라는 것을 주제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곤 했다. 여행은 내게 도화선이 되어 더 많은 것들을 꿈꾸게 했고 가슴속에 불씨를 품고 여러 시도를 하게 했다. 하지만 꿈꾸는 대로만 풀리 않는 것이 인생이라 했던가. 더 큰 세계로 나가 경험을 하겠다고 하던 나는 인턴을 하다가 대학원에 들어가게 됐고 학업을 진행하던 중에 취직이 되었다. 물론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고 그건 친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바빠 가슴에 불씨가 있는지 잊고 살았는데 그때쯤 내게 큰 변화가 생겼다. 여러 가지 이유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생각지도 못한 시간이 엄청 생겨버렸다. 다시 여행을 갔던 그때와 비슷한 마음 상태가 되었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이 그만두게 된 것이라 홀가분하면서도 막연한 두려움에 이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두려웠다. 그때 함께한 친구, 그리고 다른 친구에게 넋두리 식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리 다시 떠나볼래?


라는 말이 나왔고 추진력 있는 친구들 덕에 런던으로 가는 티켓부터 덜컥 끊었다. 가슴에 있던 불씨가 꺼진 줄 알았던 그때, 그렇게 나의 두 번째 런던 여행은 시작되었다.


 이번 여행 역시 목표하는 바가 하나 있었다. 여행을 다녀왔을 때, 남는 아쉬움이 없으면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서 거의 말초적인 감각에만 의존해 충격을 흡수하는 것에만 급급한 여행이 아니라, 하고 싶은 체크리스트를 원하는 만큼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는 여행이 됐으면 했다. 언제 또 갈 수 있을지 모르니까!(코시국으로 인해 정말 그렇게 되어 버렸다..)


9와 4분의 3 승강장을 알려줘도 다른 곳을 찍고 봐도 별 감흥 없었는데 이번 여행엔 거의 해리포터만 찾아다니게 된다. 격세지감이다!


 이전의 여행에 비하여 영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기도 했다. 해리포터도 안 봐서 9와 4분의 3 승강장을 두고서도 뭔지 잘 모르던 내가 호그와트 익스프레스 맨투맨을 입고 퀸의 노래를 들으며(당시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이었다.) 런던에 가다니!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것도 많고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줄여야 아쉬움이 남지 않을지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남들 다 하는 것 중에 내가 못한 건 없었으면 좋겠는데 남들 다 하는 것만 하고 싶진 않은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변덕을 다스리고 최대한 이상적인 일정을 짜기 위해 유튜브와 블로그, 구글 지도를 켜 두고 동선과 이동 시간까지 체크하는 집요하고 집착스런 행위 역시 서슴지 않았다. 이동 반경과 동네 마트 위치까지 외우며 완벽히 준비했다고 생각해도 어디서든 의외의 상황은 생기기 마련이다. 여행을 한 달 앞두고 예약한 숙소가 취소되는 사건이 내게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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