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비례 그리고 조화
디자인에서 중요하게 보는 조형요소 중 균형(Balance)이란 것이 있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으로 조화(Harmony)와 비례(Proportion)와도 관련이 있다. 그렇다고 이것은 기계적인 중립이나 중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보기에 따라 균형은 상대적 개념으로 사용된다. 대부분 극단에 있는 두 개의 개념이나 상태를 의미하는데, 일상 삶에서도 흔히 사용된다. 일과 휴식의 균형은 많이 들었을 것이다. 양 극단에 있는 일과 휴식의 어디쯤인가 나를 위치하면 적정한 균형일까.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표현이 이 균형점을 표시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과 휴식 사이에는 또 여러 중간지점이 존재한다.
직장인이라면 회사까지 이동하는 것, 동료 간 인간관계, 업무로 인해 만나게 되는 다양한 상황 등이 있다. 자영업자라면 다양한 거래처와 관계들, 손님이나 고객과의 만남 등 사실 일과 휴식은 서로 극단적으로 나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은 과연 어디일까. 저녁시간이 되어도 온전히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때 말하는 저녁은 일을 마친 후 직장이나 일터가 아닌 집에서, 직장동료나 업무관계가 아닌 내 가족과, 회식이나 접대가 아닌 단란한 저녁식사와 이후 이어지는 편안한 휴식일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개념이다.
우리 삶의 관계는 항상 사람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게 되더라도 어려운 일이나 불편한 상황은 생기기 마련이다. 만약, 일과 휴식을 완전히 구분할 정도 수준의 직업이라면 어찌 보면 불행한 삶이라 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일(직업)은 또 다른 하나의 삶이다. 순수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개념은 이제 자동화된 기계나 인공지능의 몫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은 곧 나를 상징한다. 내가 곧 일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가까이 존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돌아보기도 싫은 직장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 힘들고 고된 일을 뒤로하고, 얼른 서둘러 집에 가서 먹는 저녁식사와 휴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일의 해가 뜨면 또다시 하루가 반복되는데..
이제 기준을 좀 다르게 생각해 보자.
누구나 저녁을 맞이한다. 물론, 이상적인(?) 저녁식사 장면이 일상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매일 돌아오는 그 저녁을 조금은 다른 얼굴로 맞이해 보는 것은 어떨까. 짧은 그 시간은 나에게 잠시 하루를 마감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그 시간 자체가 소중한 것이다. 내가 하루를 충실히 살았든, 허투루 보냈던 지구는 돌아간다. 저녁이 있는 삶이 일과 휴식의 균형을 상징하는가 물어보면 그렇다고 하겠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떠냐에 따라 의미는 천차만별이 될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도,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도, 매일 최선을 다하는 자영업자도,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준비 중인 사람들 모두의 저녁은 존재한다. 매번 오는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은 호스트의 몫이다.
내 삶의 균형점은 딱 중간이 아니다.
쉼표로 이어지는 긴 호흡에서 순간을 즐긴다면 어디일지 모르는 마지막 지점에서 돌아보는 길은 충분히 균형(Balance)과 비례(Proportion)와 조화(Harmony)가 아름다울 것이다. 오늘부터 나도 다시 저녁이 있는 삶을 즐겨야겠다.